12일 민중총궐기에 모입시다
뉴스로=노창현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길은 어디일까요. 광화문에서 시청방향으로 쭉 뻗어있는 세종대로가 바로 그 길입니다. 폭이 100m나 되는 이 대로는 서울은 물론이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상징하는 중심도로입니다.
제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세종대로엔 지금의 교보빌딩은 물론, 세종문화회관도 없었습니다. 광화문도 일제때 철거(撤去)돼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이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었지요..1968년 광화문은 복원됐지만 철근콘크리트 기단이었고 한동안 중앙청과 기이한 동거를 하는 구슬픈 식민역사의 자화상(自畵像)이었습니다. 당시는 주변에 큰 건물이라곤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 시민회관(77년 완공)이 있었지만 장방형의 6층 높이여서 이순신장군 동상도 꽤 커보였습니다.
무지막지한 높이의 교보빌딩은 박정희 정권때인 1977년 허가를 받아 짓기 시작해 1980년 12월 완공됐습니다. 이 건물은 미국의 건축가 시저 펠리가 설계한 것인데 흥미롭게도 일본 도쿄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흉내낸 것이었습니다. 교보생명 창업주가 이 건물에 매료돼 똑같이 설계해 달라고 했다는데 서울의 최중심이요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대로에 일본풍과 미국풍이 짬뽕된 건물의 짝퉁을 지어달라고 한 것도 의문입니다.
더 재밌는 것은 미국의 건축가가 바로 앞에 있는 비각 등 세종로의 역사성을 담고 주변과 조화로운 부채꼴 모양의 멋진 건물을 제안했는데 굳이 일본의 미대사관 건물 형태로 해달라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애당초 이곳에 초대형 건물을 짓게 허가한 박정희정권의 천박한 역사의식을 새삼 나무랄 것은 없습니다. 광화문 코 앞에서 경복궁을 안마당처럼 굽어보는 19층짜리 정부종합청사 건물도 1970년 지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교보빌딩은 22층을 거의 다 지어놓은 어느날 청와대 경호실에서 찾아와 대통령 경호에 문제가 있으니 5개층을 잘라서 17층으로 하라고 으름짱을 넣었다고 합니다. 창업주가 구구절절 읍소(泣訴)하는 편지를 박정희에게 넣기도 했지만 거의 다 지어놓은 22층을 어떻게 두부자르듯 5층을 싹둑 자르겠습니까. 그야말로 그시절의 ‘웃픈’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교보빌딩 오른쪽 길건너엔 동아일보가, 또 동아일보 정면엔 지금은 없어졌지만 국제극장이 있었습니다. 70년대까지 광화문과 종로로 연결되는 세종로 사거리엔 거대한 초대형 아치가 있어서 국경일이나 시가행진 등 큰 일들이 있을 때 기념문구나 구호 등으로 장식됐습니다. 박정희 시해후 국장이 치러질때도 ‘근조(謹弔) 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 국장’이라는 한자문구와 대문짝만한 영정이 붙어있었던게 기억납니다.
이 아치 또한 흉물이었습니다. 워낙에 대한민국이 구호와 캠페인 슬로건으로 떡칠하는 나라다보니 대국민 선전과 계몽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뭐가 붙어있지 않을 때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니 정말 흉물스러웠죠. 이 커다란 길을 건너기 위해선 지하도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광화문 지하도는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 시절에 만들어졌는데 지하도 완공후 아치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김현옥 시절에 서울시가 많은 공사를 벌이고 밀어붙이기도 잘해 불도저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부실아파트의 대명사였던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참사도 김현옥 시절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4대강으로 국토를 말아먹은 이명박도 불도저라는 별명이 있었으니 두사람 ‘불도저 클럽’ 가입을 시켜야겠습니다.
지하도는 입구가 거의 120도로 넓었고 코끼리 귀처럼 넓은 지붕이 달려 있었지요. 박정희가 세종로 지하도를 만든 것은 일견 시민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했겠지만 사실은 보행자 위주가 아니라 차량 위주의 비인간적 관료적 사고에서 비롯된 겁니다. 왜겠습니까. 지금 광화문 나가보세요. 지하도는 지하도대로, 횡단보도는 횡단보도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이용객외엔 모든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이용합니다. 예전엔 길을 건너려면 무조건 지하보도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이 넓은 대로를 무단횡단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보행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들은 이동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세종로는 오직 차량을 위한 큰길이었을뿐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17년 철권통치가 끝났지만 전두환소장이 12.12로 권력을 찬탈(簒奪)했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불었을 때 저는 대학 신입생으로 서울역 시위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치던 수많은 시민들은 최루탄과 페퍼포그를 eMFGRH 서울역에서 광화문 세종로로 향했지만 수만명의 전투경찰이 겹겹이 숭례문을 둘러싼 채 더 이상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광주에선 전두환정권이 수많은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참살하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1987년 6.29선언으로 민주주의의 단초가 마련되고니서 광화문과 세종로에도 조금씩 변화의 물결이 찾아왔습니다.
1993년 8월 김영삼 정부 들어 옛 조선총독부였던 중앙청을 철거하고 경복궁의 원형을 회복시켰습니다. 당시 보수 일부에선 조선총독부 건물도 역사이기 때문에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애당초 조선총독부 건물은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抹殺)하기 위해 궁궐 건축물 일부를 허물고 경복궁 자리에 만든 것이기 때문에 철거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후 다른 곳에 그대로 다시 지어 역사교훈의 생생한 현장으로 삼아야 했다는 것이지요.
김영삼 정부는 청와대는 물론, 인근 인왕산 길 개방 등 많은 것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3당 야합’이라는 비난속에 대통령이 된 그였지만 오히려 여당을 장악했기에 전두환 노태우를 감방에 보내고 군부의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와 같은 혁신적인 정책을 실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일종의 '트로이의 목마' 전술처럼 말입니다.
오랜 세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멀었던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가 시민의 품에 돌아온 것은 광화문 광장이 완공된 2009년부터입니다. 세종로 사거리와 청계광장에 이르는 폭 34m, 길이 740m의 광장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랜 세월 시민들과 단절됐던 곳이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2003년 모국을 떠난 후로 이곳을 찾을 때마다 가슴이 뜁니다. 광화문 주변을 걸으며 해태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광화문 분수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도 보기좋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정의와 진실을 위하여 촛불을 든 곳이기도 합니다. 박근혜정부가 약속한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에 항의하는 70대 농민이 최루액이 함유된 직사포를 맞고 쓰러진 곳입니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아픔들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이제 광화문은 아직도 미궁(迷宮)에 빠져있는 수많은 사건들의 진실들을 찾는 출발점이 되야 합니다. 탐욕과 부도덕, 협잡과 몰이해로 뭉친 권력자들과 부역자들을 일소(一掃)하고 정의롭고 양심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시민민주주의의 성지가 되야 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건국이래 초유의 참담한 국격추락의 대참사입니다. 현대국가는 물론, 과거 봉건주의에서도 찾을 수 없는 국정농단의 대참사입니다. 7천만 한민족을 세계인들 앞에서 부끄럽게 만든 희대의 엽기적인 범죄입니다. 박근혜에겐 하야와 탄핵이라는 단어조차 아깝습니다. 지금 당장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함에도 여전히 꼼수로 국정을 틀어쥐려고 하는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내쫒아야 합니다. 박근혜가 트럼프와 12분간 전화통화를 했다구요? 정말 전화통화를 했다면 초인간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트럼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이비 무당도 못되는 최순실의 조종을 받으며 아바타 노릇을 하던 박근혜와 전화통화를 해야하다니 트럼프 자신도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최순실 대역처럼 트럼프 대역이 박근혜와 통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권력과 금력의 단물을 빨아먹은 청와대와 여권 세력들, 새누리 2중대로 야합의 길을 걸어온 가짜 야당들, 정권의 나팔수로 양심을 저버린채 진실은폐에 일조한 사이비 언론들, 빠짐없이 단죄(斷罪)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당리당략의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맡길 필요가 없습니다. 시민들이 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명령해야 합니다. 즉각 박근혜 특검을 구성하여 모든 범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라고 말입니다. 뉴욕에 있던 저도 12일 광화문에 갑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참아서도 안됩니다. 지난 5일 광화문 집회엔 20만명이 모였습니다. 두 살짜리 아기부터 80대 노인까지, 생전 시위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대거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투표에서 무조건 신한국-한나라-새누리만 찍고, 선거때 박근혜 포스터를 쓰다듬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여 12일엔 50만명, 아니 100만명이 모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분이라도 더 광화문에 나와서 외쳐야 합니다. 박근혜를 비롯하여 대한민국을 농단한 모든 세력들이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치고 싶도록 천둥 벽력(霹靂)같은 함성을 질러야 합니다. 성난 파도와도 같은 촛불의 힘을 보여야 합니다.
해외에서도 광화문 민중총궐기에 맞춰 연대하는 시위가 벌어집니다. 10개국 36개 도시에서 재외동포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암스테르담), 독일(뮌스터 & 오스나브뤼크, 뮌헨,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 미국 (노쓰 및 싸우쓰캐롤라이나, 뉴욕, 뉴저지, 댈러스, 로스앤젤레스, 매릴랜드, 북가주, 샌디에고, 시애틀, 시카고, 애틀란타, 워싱턴 디씨, 필라델피아), 아일랜드 (더블린), 영국 (런던, 맨체스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일본 (도쿄, 오사카), 캐나다 (몬트리올, 밴쿠버, 오타와, 토론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파리), 호주( 멜번, 브리스번, 시드니, 퍼스)에서 ‘박근혜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재외동포행동’ 에 참여합니다.
11일 프랑스-독일 국경 지역인 스크라스부르 클레베르 광장에서 연대집회를 여는 재외동포들은 성명서를 통해 “대한민국주권자로서 프랑스에서 고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일이지만, 민주주의를 위한 정의를 외면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 더욱 부끄러운 일임을 자각하고 거리로 나선다!”고 외쳤습니다
박근혜는 부정당선의혹속에 지난 4년간 민주와 정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역사를 역행하며, 민생을 파탄내고, 한반도를 신냉전의 위기로 내몰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박근혜와 정부의 뜻이었는지 사이비 교주딸의 장난질이었는지 알 수 없는 기막힌 현실에 우리는 놓여 있습니다. 박근혜가 그 자리에 버틸수록 국정혼란은 가중됩니다. 국정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빨리 신속하게 그만둬야 합니다. 미국의 새대통령이 트럼프라 불확실성이 높아져서 박근혜가 필요하다는 헛소리를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트럼프가 최순실아바타와 대화하고 싶을까요? 더이상 대한민국 시민들을 망신스럽게 하지 마십시요. 우리에겐 트럼프를 잘 요리할 수 있는 진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12일 오후 4시에 광화문에서 모입시다. 이렇게 외칩시다. “박근혜는 더 이상 조국과 민족앞에 죄를 범하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내려가라!”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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