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신필영 칼럼니스트
어제 영화 ‘그물’을 보고 밤잠을 설치고 말았습니다
오랜 친구가 어디 여행이나 한번 가자면서, 내일 아침 양재역으로 8시까지 나오라고 하기에
어떤 사람과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하고 되물었습니다.
1박2일(토.일)일정으로 전남 보성 영광 정씨 고택으로 간다고만 하고, 편안 마음으로 가자
하기에 나섰습니다. <역사기행>이라는 매력에 끌려 나섰습니다
일행이 어떤 사람인지 몇사람들이나 가는지 모르는체 신바람이 나서 서둘렀습니다
"역사의 죄인이 되 말자" -- 독립.통일 운동의정점,보성 영광 정씨 고택을 찾아서 --
<민가협양심수후원회와 옴시롱 감시롱이 함께하는 2016년 역사기행>
이라고 하는 여행일정표를 받았습니다. (옴시롱, 감시롱의 뜻은 오고 가고라는 진도의 사투리)
앞좌석에서 부터 자게 소게와 인사와 함께 이어 아침 김밥과 음료가 공급되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터널을 뚫고, 없었던 길을 뚫고, 기둥을 세워 다리를 놓고 하여 만든 거의가 고가(高架) 고속 도로여서 차창(車窓)의 모든 산야(山野)가 눈아래로 내려다 보였습니다
보성읍으로 진입하여 청마루 식당에서 ‘꼬막 비빔밥’으로 점심을 하였는데, 지금까지
먹어 봤던 비빔밥 중에 이 이상의 맛을 본적이 없습니다. 역시 꼬막의 명산지 였습니다
이어서 다향각에서 내려다 보는 녹차 밭(사진)을 보면서 역시 보성차의 자랑을 알 수 있습니다
드디어 화천면 봉강리 정길상님의 고택에 도착을 했습니다.
가는 동안에는 보이는 것마다 모두가 쪽파밭이었습니다.
이 쪽파와 녹차와 꼬막의 특산지임을 한눈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녹자는 주로 중국이 최고의 주산지라고 생각을했는데 인도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보성(寶城)의 군목(郡木)은 차(茶)나무이고 군화(郡花)는 철쭉이며 군조(郡鳥)는 비둘기라는군요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의 생가가 있고, 이 마을의 고유의 역사가 있는 ‘기록사랑마을’을 지나쳤습니다
내가 졸업한 용산고(龍山高)와 고려대(高麗大)의 교화(校花)가 같은 철쭉인데, 무슨 뜻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정길상님의 고택에 대한 설명과 집안 내력에 대한 예기를 경청 했습니다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의 명가로서 전쟁 후에 닥친 비운의 가족사를 들으면서 민족의 비극이 가슴을 에립니다
영성 정씨 정경달의 후손인 정해두는 광주학생 사건에 투옥되고 증손 정해룡은 양정원을 설립합니다
이 정해룡의 동생 정해진은 일본 유학중에 사회운동을 하다가 6.26때 월북하고 두차례나 고향에
내려와서 형인 정해룡을 만난 것이 문제되어 고초를 받고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정초산은 <가족간첩사건>으로 전두환시절 사형을 당합니다
그 정초산의 동생이 곧 정길상으로 7년인가를 감옥 생활을 한바 있습니다
그 정길산님이 우리 일행들을 반기며 고택에 얼킨 비극의 가정사를 들려 줍니다
세상에 넓고도 좁다더니, 정길산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의 매부(미국거주)와 나와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커피 한잔을 나누는 친구였습니다.
양심수후원회 회원들의 많은 분들이 전쟁으로 인한 온갖 고초(苦楚)를 겪었던 슬픈 가족사와
혹은 그로 인한 오랜동안 감옥살이 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비극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통일 밖게 없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비극은 계속해서 발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행은 이 고택에서 민박을 하고 아침은 바다가 보이는 흑산도 횟집에서 했습니다
그리고 보성군 부춘 마을에사는 고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에 참석을 했습니다
로제(路祭)를 지내고 나서 고 백남기 농부의 집으로 올라 갔습니다(붉은 지붕의 집}
이어서 태백산맥문학관(사진)으로 가면서 마침 벌교 장날이었는데 아쉽게 지나쳤습니다
문학관은 북향인데 통일을 념원(念願)하는 상징성이랍니다
천연색 돌로 모자익 벽확 역시 통일을 상징 한다고 합니다
/육필원고가 16000개로 사람의 키를 넘는 원고를 사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우리 는 <선암사>로 향했습니다
이 역씨 임진난때 불타 없어진것을 다시 재건한것인데 그 규모가 엄청 납니다
상경해야 할 시간으로 대충 보고 내려 왔습니다
상경하는 차안에서 여행소감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일반적으로 관광 차내에서 불으는 그런 노래나 오락이 아니였습니다
그들이 겪어야했던 모진세월의 한(恨)을, 피를 토해내듯 쏟아 내는 처절한 부르짖음이였습니다
그것은 분단 민족의 아픈 상처투성이의 외침이였습니다
그들이 겪은 모진 세월들을 하나로 이으면 억겁인들 헤아릴 수 있겠나 싶습니다
이러한 비극은 민족통일이 없이는 계속 될것임을 다시한번 다지게 합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10년을 넘게 반공법에 의해 허우적되었던일 뿐아니라
그의 ‘한강’ 또한 유일민 이라는 주인공을 통한 월북 가족의 비운을 다시 보게됩니다
차제에 ‘한강’을 꼭 구독(購讀) 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감의 고장인 성주의 감을 나누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칫솧 하나를 주머니에 꽂고 다녀 온 “옴시롱 감시롱”의 여행은 오래 남을 것입니다
무릇 여행은 즐거움이 어야 하듯 또 다른 즐거움을 여기 담기가 버겁습니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옴시롱 감시롱" 우리가 함께 합니다
*차(茶)의 고장에서 차한잔 못하고 돌아 온 여행 이였군요
그 못다한 차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오려나 모르겠습니다
2016.11.8.
서울에서 신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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