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덕 교수팀 사용중지 요청
뉴스로=정현숙기자 newsroh@gmail.com
전 세계인들이 애용하는 무료 메신저 프로그램 ‘텔레그램’에서 일본제국주의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神風)’를 활용한 모바일 스티커(이모티콘)가 사용되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팀이 24일 공개해 알려졌다. 한 네티즌의 제보로 알게 됐다는 서 교수는 "텔레그램에 직접 확인해 본 결과 'Kamikaze Cat'이라는 스티커가 존재했고 가미카제의 뜻을 제대로 모른채 많은 외국인들이 사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0
서경덕 교수는 "텔레그램의 잘못이라기보다 텔레그램 특성상 사용자들이 이모티콘을 스스로 개발해서 올리고 다운받는 시스템이라 생긴 문제“라면서 ”텔레그램측에 가미카제의 정확한 설명과 사용중지를 메일로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영어와 스페인어, 독일어, 한국어 등 8개 국어로 서비스가 되고 있는 텔레그램은 월 활성 사용자가 1억명 이상이고 하루 전달 메시지는 150억개가 넘는 세계적인 메신저 프로그램이다.
서경덕 교수는 "가미카제를 활용한 의류, 모자 등 다양한 상품이 아직 세계 곳곳에서 판매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잘 몰라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가미카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2개월 전 도쿄 야스쿠니신사 전시관에 들렀을때도 가미카제에 관련하여 미화한 도서와 비디오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일본의 가미카제에 관한 역사왜곡(歷史歪曲)에 대해서도 세계인들에게 지속적으로 널리 알릴 예정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이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의 유서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것을 포기했지만 가미카제를 영웅으로 미화한 '영원의 제로'라는 책이 300만부나 팔렸고 이 소설이 방송 및 영화로도 제작하여 주변국에 큰 논란이 됐었다.
한편 가미카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이르러 군비의 부족으로 미군의 상륙을 막을 힘이 없던 일본이 마지막 수단으로 택한 자살특공대다. 이들은 이륙시 목적지까지 편도의 연료만을 지급받아 미군의 군함으로 돌진하는 등 약 3천여명의 전사자를 초래(招來)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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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애국으로 포장된 자폭 ‘가미카제’
"카미"는 일본어로 '신(神)'이라는 뜻이고 "카제"는 '바람[風]'이라는 뜻으로서 "카미카제(神風)"는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의미이다. "가미카제"는 13세기 여몽연합군이 일본으로 침입할 때 그 함대를 침몰되게 한 자연현상인 태풍의 이름을 따라서 한 명명이다. 다이아타리는 일본어로 몸통박치기 라는 뜻을 가지고있으며 주로 기체에 폭탄을 싣고 돌진을 행했기 때문에 이 표현을 사용한다.
자폭공격하는 부대가 편성된건 전쟁 말기이다. 전쟁중에도 자폭공격을 하는 부대가 검토되었지만, 일본도 처음에는 자폭부대 편성을 꺼려했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편성하기 전부터 자발적으로 자폭공격이 행해진 경우도 있었다. 1944년4월14일 안다만제도로 향하는 육군수송선을 호위하던 비행기가 미국 해군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3기를 발견,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어뢰에 돌진하여 전사하고 어뢰파괴에 성공했다. 1944년 8월20일 미육군항공군인 B-29폭격기에 의한 야하타(八幡)공습에서는 요격하러 나온 비행기가 폭격기에 몸통박치기를 하여 공중폭발 추락시켰다. 또 파편으로 인해 타격을 받은 폭격기도 함께 추락하여 B-29 2기를 격추하였다.
1943년 6월29일 적함선에 대해 특공(특수공격 준말)을 행하는 ‘특수항공대’ 편성의 구상이 본부에 제출되었지만,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이를 거부했다. 후에 마리아나해전이 패배로 끝나자 다시 특공대 편성의견이 나왔다.
마리아나해전후 “더이상 다이아타리(体当たり)”밖에 방법이 없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일본 해군에서는 특공병기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는 가미카제특공대와는 관계가 없다.
1944년 10월5일, 결국 필리핀에 특공을 가하기로 결정을 하고 필리핀에 자폭공격을 행했다.
일본이 특공을 행했던 이유는 앞으로 반년이면 연료가 전부 떨어질 것을 알고 어서 전쟁을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필리핀 공격을 최후의 공격으로하고 7:3으로 강화조약을 맺어서 만주사변때 일본으로 되돌리는것이 목적이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가미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당시 황태자였던 아키히토는 가미카제에 대한 장교의 설명을 듣자 그럼 병력을 소모하는 것뿐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가미카제는 비행기 부대였지만, 해상에서도 이러한 것들이 있었다. 일본에서 개발한 소형잠수함 갑표적(甲標的)이라는 적에게 다가가 어뢰를 발사하는 병기가 개발되었는데, 실제 진주만공격때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갑표적은 어뢰발사후 다시 모함으로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했으면 처음에는 자폭공격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갑표적은 자력으로 모함까지 귀환하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실제로 작전 수행후 돌아온 갑표적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상 일회용 병기에 지나지않았던 것이다. 나중에는 이것을 토대로 인간어뢰가 구상되어 특공에 사용된다.(자료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