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강명구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아침부터 거친 바람이 억새풀을 마구 흔들어댄다. 억새는 몸을 흔들어대면서 가을을 노래 부르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힘든 행군을 계속한다. 그래도 가을엔 바람이 불어야 제격이다. 거친 바람 맞지 않은 멋진 여행이 어디 있을까? 힘든 날갯짓 하지 않고 나는 새가 있을까. 제 몸 흔들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물고기가 있을까. 바람이 분다. 대나무 울타리 사이로 바람이 분다.
우리나라는 가는 도시마다 마을마다 다 예사롭지 않다. 예사롭지 않은 도시와 마을이 모여서 이룬 우리나라가 결코 예사롭지 않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차의 수도 보성을 지나서 장흥으로 가는 길목의 휴게소로 들어서니 관광버스 옆에 테이블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나는 커피를 마시나 싶어 다가가서 ‘한잔 얻어먹어도 되요?’하고 묻고 보니 아침부터 순대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덕분에 나는 아침부터 막걸리를 한잔 얻어 마셨다. 어디를 가시냐고 물으니 천관산으로 등산을 간다고 한다. 나보고 천관산에 올라봤냐고 묻는다. 옥으로 만든 면류관 (冕旒冠)같다고 해서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산에 오르면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지금은 한눈에 들어오는 다도해를 눈을 감고 상상해볼 뿐이다.
서울에서 자란 나는 남도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가장 부러운 것이 몇 가지 있다. 그들은 뭔가 특별한 그들만의 맛을 즐길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 몇이 모이면 알 수 없는 끈끈한 인간관계를 가지는 것 같았고 또 하나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묻어나는 문학적 소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의 프리미엄이아고 생각했다.
남도를 달리다 보니 이곳이 산세나 바다의 들어오고 나가는 오묘한 자연경관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예술적인 상상력을 가져다주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속의 주인공을 언제라도 만날 것 같고 어디선가 서편제의 가락 한 곡절 들려올 것만 같다. 나는 이청준이 그려내는 문자의 산수화에 빠져들곤 했었고 그가 들려주는 문자의 구성진 가락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문자의 감칠맛에 입맛을 다시곤 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청준의 생가라도 꼭 들르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가장 느린 여행을 하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바쁘다. 가장 자유로운 여행을 한다고 길을 나섰으면서도 일정이라는 오랏줄로부터 완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언제면 더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가 있을까? 한승원의 바닷물고기 같은 싱싱한 언어는 또 어떤가. 고향으로 낙향해 스스로를 유배시켜 자기집을 토굴이라 이름하여 절대고독 속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친 바람을 뚫고 장흥을 달리는 내 발자국도 오늘은 문학적인 리듬을 타는 것 같다. 장흥은 광화문에서 일직선으로 선을 그으면 정남쪽에 있다고 해서 정남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드디어 달리는 발길은 국토의 최남단 해남 땅에 들어섰다.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 같은 강진의 하늘을 바라보며 달리는 기쁨은 최고이다. 읍내로 들어서는 로터리에는 영랑동상이 서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진의 가을바람 속에서 흐드러지게 만발한 오월의 모란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영랑의 시 몇 구절을 웅얼거리며 강진으로 들어서니 강진은 내게 섬세한 슬픔과 기다림의 희망으로 나를 맞는다.
강진은 다산 정약용이 18년간 유배(流配) 생활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는 여기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목민심서를 비롯한 방대한 저술활동을 했으니 강진은 그에게 연구소 역할을 한 것이다. 정약용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하고 고단한 삶 속에 이렇게 빛나는 커다란 역사적 연구의 업적이 있다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자진하여 유배가 되었든 어쩔 수없이 유배가 되었든 그것을 이겨냈고 극복했을 때 절대고독이 만들어내는 창조력과 생산성을 생각해본다. 그는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한, 자기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한 인물이었다.
유배는 당시 형을 받은 당사자들에게는 가혹하고 처절한 형벌이었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여유가 있고 생산적이기까지 했던 것 같다. 유배를 떠나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게 했고 ‘멈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정치인들과 학자에게 유배와 유랑으로 이어진 고난의 기간은 오히려 욕망과 허세를 다 내려놓고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스리면 농촌현실을 직접체험하고 하층 민중들과 마주하면서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나는 말처럼 장대한 골격과 근육을 갖추지도 못하고 말처럼 저 멀리 풀냄새를 맡을 후각과 멀리 내다보는 커다란 눈망울을 갖지 못했지만 그 어떤 말보다 멀리 달려왔다. 달리는 것을 즐기며 은근과 끈기로 스스로를 절대 고독 속에 던져 ‘멈춤’의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대게의 유배자들이 세상 너머의 일을 꿈꾸다 반역죄를 뒤집어 쓴 것처럼 저 멀리 보이는 새 세상을 꿈꾸며 달린다.
오늘도 거의 45 km를 거침없이 달려왔다. 하루의 일과를 마칠 시간이다. 이제 방을 구하고 식사를 하고 오늘의 여정을 정리하고 쉬면된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숙박비는 제일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들어가는 곳마다 가격을 흥정해본다. 오늘도 늘 하던 대로 가격을 흥정하는데 성질 급한 아주머니가 막 욕을 해댄다. 처음으로 당해보는 봉변이었다. “아줌마 아니면 말지 왜 욕을 하세요?” 나도 굼시렁거리며 다시 나오는데 아주머니의 아들이 부른다. 뒤돌아보니 사내의 인상이 험악해서 긴장을 했는데 “죄송합니다. 조금 싸게 주무세요!”한다.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는데 일요일이라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았다. 식당을 찾는데 한참을 애먹어야했다. 항상 하루의 일과를 끝마친 이 시간이 제일 힘든 시간이다. 어렵사리 식당을 찾았는데 고기집이라 일인분을 안판다고 하면서 국밥집을 가리켜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또 국밥집을 찾았는데 국밥집에도 역시 일인분은 안판다고 한다. 피곤하고 배가 고플 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평정심이 무너지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방법은 없다. 난동을 부릴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찾은 집에서는 일인분으로 팔 수 있는 건 콩나물비빕밥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콩나물비빔밥의 채식음식을 먹고는 도저히 내가 필요한 열량을 다 채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부대찌개가 메뉴에 있는데 일인분은 안 된다고 한다. 결국 부대찌개 일인분을 돈을 더 주는 조건으로 통사정을 해서 먹고 나왔다. 그래도 밥을 먹으며 이 예기 저 예기 나누다 나의 여행이 범상치 않은 여행임을 알아본 주인아저씨가 권하는 막걸리 한잔을 얻어 마시며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한국을 여행하면서 특히 지방에 유별나게 일인분 친화적이지 않은 식당이 많다는데 놀랐다. 남도의 후한 인심을 기대했던 나는 준비 안 된 불쾌감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남도의 향토색 짙은 영랑의 시정을 만들어낸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 같은’ 풍광(風光)을 놓치는 슬픔과 함께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상도가 사라져가는 슬픔을 맛보아야했다.
나는 어떻게 보면 최고의 노래 한 자락 멋지게 부르기 위해 내 눈을 멀게 하는 대신 달리면서 한을 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한을 쌓은 다음이라야 이모작 인생에 무얼 해도 깊이가 있고 중후하고 맛깔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끝없이 달리는 유배와 같은 절대고독 속에 들어와 있다. 스스로 안에 흠집을 내어 진주처럼 영롱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모란이 필 때까지 이렇게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암울한 상황을 이해하더라도 영랑이 모란이 피기까지 기다린 것이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면 내가 찾아 달려가는 곳은 ‘찬란한 기쁨의 봄’이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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