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강명구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첫눈이 내리는 날이다. 작년에도 첫눈은 내렸고, 그 전 해에도 눈을 내렸고, 옛날에도 눈은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해 겨울에 처음으로 내리는 눈을 첫눈이라고 한다. 사랑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 사랑을 하면 그것이 내게 첫사랑이 될 것 같다. 첫사랑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무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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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내리는 날 광화문 광장에 150만 촛불이 켜졌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기도 하지만 간절한 소망(所望)이 있을 때 켠다. 주최 측은 8시가 되자 ‘저항의 1분 소등’ 퍼포먼스를 펼쳤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암흑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 1분 동안 촛불을 끄고 있다가 다시 모두가 촛불을 켜서 촛불 파도타기를 했다. 촛불은 어둠을 밝혔다. 하나의 촛불이 다른 촛불을 붙여주며 촛불은 들불처럼 번져갔다. 모든 촛불은 커다란 소망을 꿈꾸었다. 첫사랑과 같이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소망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군사력이 막강한 나라도 아니요, 흥청망청 잘 사는 나라는 더욱 아니다. 그저 기회가 균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 약자에 대해 공감하는 나라이다. 남과 북이 외세의 도움 없이 통일을 이루어 자유왕래를 하고,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부모의 재산에 관계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나라, 모든 노인들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받으며 노후(老朽)를 보낼 수 있는 사회, 삶이 국가에 의해 규격화 되지 않고, 나와 ‘다름’이 존중되어 저마다의 타고난 독창적인 능력을 개발하여 문화가 융성하고 자유로운 나라이다. 이런 나라를 생각하면 난 첫사랑을 생각할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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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는 구호와 함께 공연도 이어졌다. 뮤지컬 배우들의 레미제러블 중에 ‘민중의 노래’가 공연에 올랐고 그다음 안치환의 ‘자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개사한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를 땐 사람들은 감동으로 함께 노래를 불렀고 양희은이 말없이 무대에 올라 ‘아침이슬’과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를 부를 땐 눈물을 흘리면서 떼창을 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중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30년 전 6,10 항쟁 때도 이 노래를 부르며 이 거리를 행진하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때 아침이슬처럼 맑고 상록수처럼 푸르른 나이에 저 노래를 부르며 이 광장을 행진 했었는데 이제 30년이 흐른 후 머리가 희끗희끗해서 다시 저 노래를 양희은의 목소리로 저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르니 어떤 감정이 울컥 넘어온다.

 

이 사상 최대의 시민축제혁명에는 없는 것들이 있다. 세대 간의 장벽이 무너졌고, 지역의 장벽을 무너졌고, 이념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종교의 갈등이 없었고, 무질서와 폭력이 없고, 쓰레기가 없었다. 시민들은 위대하였고 집단지성은 최고로 발휘되었다. 법원은 이날 청와대 앞 200m 청운, 효자주민센터까지 행진을 허가하였다.

 

그런데 왠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80년의 서울의 봄처럼 경찰도 최소한의 공권력만을 사용하며 사태를 관망할 뿐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찰이 과잉진압을 하지 않는 한 폭력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때 우린 정말 서울에 봄이 온 줄 알았다. 아름다운 꽃이 만발할 줄 알았던 서울의 봄이 전두환 군사정권의 5,17 비상계엄으로 꽁꽁 얼어붙고 말았었다. 6.29 선언으로 우리 시민이 이긴 줄 알았다. 그 악랄하고 교활하던 군부독재를 이겨냈으니 이제 진정 이 땅에 시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 오는 줄 알았다.

 

혁명의 과실은 언제나 교활한 독재자(獨裁者)들이 따먹었다. 프랑스 대혁명은 나폴레옹이 낚아채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고 독일의 시민혁명을 나치가 물고가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고, 볼셰비키 혁명은 레닌과 스탈린이 가로채 동유럽을 얼어붙게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4,19 혁명의 과실은 결국 박정희가 따먹었고, 서울의 봄의 꽃잎은 전두환이 떨어뜨렸고, 6,10 항쟁의 선물은 노태우가 가로챘었다. 우리가 겪어왔던 지난 세기는 야만(野蠻)과 폭력(暴力)과 기만(欺瞞)으로 점철된 사회였다.

 

촛불을 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퇴진이 아니다. 분단의 모순이 가져다 준 온갖 패악(悖惡)을 극복하는 것이다. 언제나 눈감으면 생각나는 아련한 실패한 첫사랑이 아니라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성공한 시민축제혁명을 통해서 느끼고 보듬을 때마다 가슴 설레는 ‘시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자는 뜻이다. 이제 2016년 서울의 첫눈내리는 날의 시민축제혁명이 가져다 줄 선물은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다시 사기꾼 집단에 넘어가서도 안 되겠지만 결코 야당이 완장(腕章)차고 거들먹거리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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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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