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 때 운전했던 차가 르망이었다. 르망이란 이름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도 않고 차를 사용했다. 한국의 수많은 간판들, 상품 이름들에 프랑스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것도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던 그 무심함에 반성을 했다. 내 나라 말을 사용하기보다, 외국어를 사용해야 손님에게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주는 것에도 생각이 꼬리를 물기도 했다. 차의 이름이, 뜻도 모르고 사용할 때 그만큼 내 나라의 말에 무관심해지고 주체성이나 자발성도 떨어진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던 것은 처음 르망이라는 도시에 갔을 때였다.
중세 도시의 아름다움이 잘 보존되어 골목길 산책하는 재미가 컸던 르망을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르망 24시간 레이스 (Le Mans Endurance Series)
르망은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15km 떨어진 곳으로 가는 길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샤르트르 대성당에 들리면 좋다. 샤르트르는 르망과 80km 떨어져 있다.
르망은 로마시대부터 번성했던 도시로, 11세기말부터 멘 백작령이었다가, 1589년 앙리 4세 때 프랑스령이 되었다.
‘르망 24시간레이스’는 1923년에 개최되기 시작한 자동차 경주대회로 한 해 30만명이 찾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르망에서 자동차 경주가 열리게 된 것은 르망에 살던 1873년 종을 주조하던 아메데 볼레가 12인용 차인 ‘오베이상트’를 제작하는데서 시작했다. 시운전으로 ‘오베이상트’는 승객 12명을 태우고 시속 30Km 속도로 달릴 정도로 성공적으로 만들어졌다. 만들기를 좋아한 볼레는 합승차량, 화물차량도 제작할 정도의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르망에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1906년 볼레는 르망에서 열린 한 자동차 경주에 미슐랭 타이어를 장착한 르노로 참여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오베이상트’는 지금 파리 기술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르망 24시간레이스’는 해마다 6월의 밤이 가장 짧은 날, 24시간 동안 레이서 3명이 번갈아가며 13.629km의 서킷을 가장 많이 도는 차량이 우승하는 레이스이다. 운전자는 2~8시간의 운전제한 시간을 지켜야한다. 종합우승, 등급 우승 외에도 24시간 동안 300km가 넘는 속도로 주행하기에 차량의 성능도 중요해 열효율지수상과 성능지수상도 수여된다.
르망에서 5km 떨어진 곳에는 사르트르 자동차 박물관이 있다. 초기 자동차부터 최근의 첨단 자동차까지 진열되어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인기있는 곳이다. 제 1.2차 세계 대전 사이의 부가티, 시트로앵의 오랜된 차들, 1949년의 페라리, 1974년 마트라 등을 비롯해 수년간 르망 자동차 대회에서 우승을 한 우승차들도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르망의 골목길을 따라 시라노를 만나다.
유유히 흐르는 강이 감싸 안고 있는 르망은 고대 로마 점령기의 성곽이 있으며 구시가지는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고, 건물마다 고유성을 지닌 아름다운 저택이 골목길을 따라 있다.
도시에서 방문해야할 곳은 많지만 테세 미술관은 옛 주교관을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곳으로 1799년에 세워졌다. 미술관의 명칭은 르망에 살던 테세 백작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백작이 수집했던 미술품의 기부로 이루어졌다. 14세기부터 20세기의 프랑스 미술사의 흐름을 알 수 있을 만큼 많은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인의 사후관, 생활 풍습을 볼 수 있는 진귀한 고고 미술품도 함께 소장하고 있다.
베렝게르 왕비 박물관은 15~16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목조 가옥을 1924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3채의 건물은 상류층 저택들로 19세기에 복원한 것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르망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그림, 가구,장신구, 전통의류, 유리세공품, 도자기 등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베르 박물관은 19세기에 지어진 학교 건물을 박물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르망 지역 주변의 자연환경과 생태계 역사를 보여주는 광물, 조개류, 곤충, 식물, 조류 등의 표본과 자료가 풍부하여 흥미로운 자연관찰 박물관이다.
르망 생 쥘리앵 대성당(Cathédrale Saint-Julien du Mans)은 르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11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완성된 성당이다. 성당은 르망의 주교였던 성인 생 쥘리앵에게 받쳐진 성당으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규모가 커 장엄한 느낌으로 웅장하다. 밤에는 영화를 상영하기도하고 화려하고 환상적인 빛 축제가 펼쳐지기도 한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촬영지
르망은 중세 도시의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어 영화 ‘시라노’ ‘철가면의 사나이’ ‘몰리에르’ 등이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이다. ‘시라노’는 정식 명칭이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로 에드몽 로스탕이 쓴 희곡이다. 극작가이자 검수 결투자였던 드 베르주라크의 삶을 희곡으로 쓴 것으로 파리에서 1897년에 초연했던 작품이다. 큰 코의 시라노의 외모와 닮은 제라드 드빠드듀의 열연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시라노는 유난히 큰 코로 열등감을 갖고 있어 팔촌동생인 록산느를 사랑하지만 고백하지 못한다. 록산느는 시라노의 근위대에 있는 젊은 크리스티앙과 사랑에 빠지고, 록산느를 사랑하지만 표현을 못하는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시라노는 연애편지를 대필로 써주면서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크리스티앙이 어느 날 편지를 록산느에게 전하러 가는 길에 숨지자 록산느는 죽으면서까지 편지를 전하려고 하던 마음에 감동을 받아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시라노는 15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록산느를 찾아가 친구가 되어준다. 어느 때와 같이 시라노는 록산느를 만나러 가는 길에 시라노를 시기하는 자들에 의해 크게 부상을 당하고는 록산느의 품에서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보냈던 마지막 편지를 외우다 죽는다. 록산느는 비로소 편지를 보낸 주인공이, 자신을 사랑한 사람이 시라노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남자의 한 여자를 향한 평생의 사랑과 애절함이 소네트로 표현하고 있고, 제라드 드 빠이유의 명연기로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한국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시라노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시라노가 걷던 골목길을 걸으면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사랑은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으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는 그자체가 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