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건을 보고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천국과 지옥은 자신이 만든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종교인이나 철학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먼 나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에서 들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노동자 부부는 헌 솜이불에서 묵은 솜을 깨끗이 소독하여 솜털기계로 새솜으로 둔답시켜 새 이불을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옛날에는 시골 장터마다 솜털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솜털 먼지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매일 오랜 시간 중노동을 하면서도 “천국과 지옥은 자신이 만든다'”고 말하는 부부가 나는 존경스러웠다. 물론 그들의 말은 후세가 아닌 현실에서 스스로 천국을 만들어 산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한국 일간 신문을 애틀랜타에서 받아 보고 있다. 우편으로 보통 일주일 늦게 도착하고 어떤 때는 보름이 걸리니 신문이 아니라 구문인 셈이다.

요즘 최순실게이트 이야기로 본국지는 첫면에서 부터 마지막면까지 최순실 관련 이야기로 도배를 하고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권력의 맛을 못 보았으니 그 달콤한 맛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최순실의 20살난 딸이 독일에서 다른 사람들과 승마연습을 하기 싫다고 하여 개인 승마연습장을 구매코자 했다는 기사를 읽고 한숨이 나왔다.

23일 올랜도 일기예보는 낮 최고기온이 75도였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바람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여서 도토리를 줍기로 했다. 나는 맨 땅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부지런히 도토리를 주우며 승마연습장 기사를 생각했다. 반세기 전에 먹고 살기 위해 독일에 간호 보조원 혹은 탄광 노동자로 가서 지금까지 그곳에 주저앉아 사는 독일동포들은 그 소리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할까.

할멈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도토리를 주웠는데 한손으로 줍지 말고 양손으로 주으라고 고함을 친다. 그래도 나는 커피를 포기할 수 없어 한 손에 커피잔을 들고 한손으로만 주웠다. 아침 햇빛을 받은 호수 수면은 수 만개의 보석이 반짝이는 것 같아 너무 아름다웠고, 커피맛은 좋았다.

그때 처음 보는 40대 초반의 백인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어느 여배우 못지 않는 날씬 몸매를 지닌 여성이었다. 그녀는 오크 나무 아래에 주저 않아 말없이 무엇을 줍고 있는 동양 노인이 이상했는지 “지금 무엇을 줍고 있나요?”하고 물었다.

나는 “80세 노인의 바이아그라를 줍고 있다”고 대답하고는 “믿기 힘들면 우리 할멈에게 물어 보라”고 했다. 사실 할멈이 만든 도토리묵은 보통 가게에서 파는 맛과는 천지 차이이다. 늙은이 입맛을 돋우어 주는 이 도토리묵이 보약이고 정력제인 것이다.

나는 동양 노인이 먹을 것이 없어 도토리를 줍고 있다고 백인 여성이 생각할까봐 “바이아그라는 부작용이 있지만 도토리 녹말은 전혀 없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저기 호수 건너편 큰 분홍 꽃나무가 있는 집에서 산다고 했다. 나는 그 나무 밑에 수백송이의 동양란과 서양난을 키우고 있다고 자랑까지 덧붙였다. 여성은 “오마이갓!” 감탄하며 초겨울에 저런 꽃나무가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며 지금 당장 가보겠다고 한다.

세상은 ‘최순실 게이트’로 어수선하지만 땅에서 도토리를 하나 하나 줍는 나는 솜털집의 부부처럼 마음이 편하다. 사람 사는 맛이 세가지라는 데 나에게는 그중 단 한가지도 없다. 하지만 최순실 처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말은 평생 하지 않고 살 것 같다. 도토리를 주으며 살아도 천국을 경험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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