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뗑깡' 박근혜 대통령님, 제발 그만 좀 내려오십시오
재외동포가 '불쌍한 대통령님'께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박근혜 대통령님, 편지 초두에 '안녕하세요'라는 예의를 차리지 못하게 된 것을 양해하실 줄 믿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심란하실지 모두가 아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 '너마저!'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배반'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상황을 견디느라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미국에서 동포신문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저는 10년도 훨씬 넘게 사무실 벽면에 걸어둔 1979년 8월 9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SanFrancisco Chronicle) 신문 액자를 바라보면서 이 편지를 드립니다.
▲ 닉슨 사임(Nixon Resign) 기사를 다룬 1974년 8월 9일 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San Francisco Chronicle). 기자의 사무실 벽면에 액자로 걸려 있다. | |
ⓒ 김명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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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출퇴근시 'Nixon Resign(닉슨 사임)'이라는 제목의 이 신문을 마주했지만 요즘처럼 이를 바라보는 심정이 복잡하게 엮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종종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리는 없겠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우리에게 현실로 닥치고 있는 과정을 보면서 분노와 회한, 희망의 묘한 감정들의 뒤섞임을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불쌍한 우리 대통령, 좀 봐줄 수 없나요?"
얼마 전 80대 중반 동포 할아버지가 제게 전화를 해 "박 대통령 이메일 주소 좀 알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불쌍해서 위로 서신을 보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지난 대선 때 날마다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 새벽 기도모임에서 빼놓지 않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게 해 주십사' 하고 소원기도를 드린 분입니다.
할아버지는 '군대시절 아버지 박 대통령 경호실 간부 정모씨의 지근 거리에서 어린 영애 박근혜의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했습니다. 평소에도 누군가 선친(박정희)을 비판할라치면 '박정희 대통령 고마운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소리 하지 말라!'고 역성을 드시거나, 박근혜 대통령님에 대한 부정적 기사에 항의를 하시던 분입니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이번엔 풀죽은 목소리로 '참 불쌍하다'는 말씀만 반복하십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10가지가 넘는 범법 의혹과는 별도로 인간적 정리로 그저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 할아버지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최근 동포들 모임에서도 한 할아버지가 제게 다가와서는 "(대통령을) 그냥 좀 봐주면 안 되겠느냐"고 하시더군요.
저 역시 처음 '최순실 게이트'가 막 터졌을 때부터 박 대통령님 처지를 생각하니 '팔자치고는 참 기구한 팔자를 타고났구나, 인간적으론 참 안 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대통령님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국민들뿐 아니라, 극렬하게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라 짐작합니다. 선친 대통령 18년 통치를 포함해 대통령님과 맺은 인연을 생각해 보면 우리 국민치고 미운정 고운정이 들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54년생인 제가 '박 대통령'을 처음 접한 것은 8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느날 아침, 동네 어른들이 집 앞마당에 깔린 멍석에 턱을 괴고 모여앉아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행진곡과 함께 씩씩한 목소리로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혁명공약'을 듣고 있던 장면을 뚜렷이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몇 주 후엔가 산뜻하게 깎은 머리에 반짝거리는 눈빛을 한 아저씨의 얼굴을 토담벽 대선 포스터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군복을 벗은 '박정희 후보'였습니다. 어린 시절, 사진으로나마 박 대통령을 뵌다는 것은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논두렁에 앉아서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서민 대통령'을 보며 가슴 벅찬 꿈의 나라를 상상하곤 했습니다. 홍수가 지고 태풍이 오면 '밤잠을 못 주무신다'는 기사를 종종 접하면서 우리는 그분을 '걱정희 대통령'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벌여놓은 경제개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번 더 해야겠다'며 설득당한 '삼선개헌' 때까지 선친은 우리에게 '큰바위 얼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름도 생소한 '유신'이라는 단어가 우리땅을 뒤덮으면서부터 서민 대통령은 음험하고 무서운 얼굴의 '빅 브라더'로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병영국가'에서는 입성뿐 아니라 이발도 각하의 뜻에 맞게 해야 했고, 유행가도 골라준 것만 불러야 했고, 그 흔한 시집 한 권도 마음 놓고 읽을 수 없었습니다. '유신이 어쩌고...'라는 말을 했다가는 영어의 몸이 되거나 불귀의 객이 되던 시대를 지금의 젊은이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제는 그만 하실 때가 되었구나' 하던 시점에 선친은 비명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선친을 생각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장면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에 치른 육영수 여사 장례식에서 선친께서 어두운 얼굴로 국화꽃으로 뒤덮힌 상여를 어루만지던 장면입니다. 그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참 안 됐다". 권력을 지키기 위한 그 많은 암수와 술수로 무고한 많은 사람이 고문 당하고 살해 당하기는 했지만, '국모'가 백주에 풀잎처럼 꺾여 쓰러졌으니 애도하지 않을 국민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또다른 장면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 당신에 관한 것입니다. 총에 맞아 서거하신 아버지의 시신 앞에 막 나타난 당신께서 하셨다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휴전선은 괜찮나요?" 정 많은 우리 국민들은 감동했고, 그 장면은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저장되었습니다.
사실 앞서 소개한 동포 할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국민이 마음 속으로 당신을 신뢰하고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에도 휴전선을 걱정한 애국심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반공의식이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충성심에서 나왔든, 또는 '대통령의 맏딸'로서의 조건반사적인 반응이었든, '역시 대통령의 딸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 장면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국민들은 어머니는 억울하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심복의 총에 죽임을 당한 비극을 맞은 당신을 진정 마음으로 불쌍히 여겼을 뿐 아니라 기특한 애국심까지 겸비한 당신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터입니다.
'공주님의 응석' 더이상 받아줄 수 없습니다
▲ 청문회 출석하는 김기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7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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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이후로 대를 이은 애국심으로 가득찬 대통령의 딸에 대한 국민들의 무한 신뢰가, 어느덧 당신을 '오냐오냐 키운' 공주가 되게 했고, 무슨 짓을 해도 '눈 감아 주는' 관계로 변질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오래 전 전두환으로부터 6억 수수, 성북동 주택 불법취득, 최태민 비리, 육영재단, 영남대학교, 정수장학회 비리 의혹 등이 터져 나왔을 때, 눈 감아 주는 대신 따끔한 회초리를 들었어야 마땅했습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대충 봐 주고 넘어간 국민들은 지금 땅을 치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게이트'에서 캐면 캘수록 줄줄이 딸려 나오는 각종 비리와 의혹들을 보면서 저를 포함한 우리 국민들의 맹목적인 '정'의 문화를 자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미 잃고 아비 잃어 외롭고 고독한 당신을 지탱해온 사사로운 정(情)의 고리를, 만인을 상대해야 하는 공적인 영역에서 파쇄해 내지 못한 당신을 탓하기에 앞서,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한 우리 국민 모두의 대대적인 '회심'이 이번 기회에 이뤄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달리 말하면, 공사를 안 가리는 우리 국민들의 '정의 문화'가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저지른 당신의 각종 의혹들을 눈 감아 주었고, 이에 길들여진 당신은 별 죄책감이나 문제의식 없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물론 일부 언론과 상당수 의식있는 정치인들, 시민들이 비판의식을 갖고 줄기차게 의혹을 제기했지만, 당신 편에서는 '옛날에 해오던 방식대로 해온 것'을 왜 지금 와서 문제를 삼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 되겠습니다. 선친 때부터 지금까지 쌓인 정으로 아무리 봐주려고 해도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무능과 무대응 무책임으로 304명을 수장시킨 세월호 침몰 사건 하나만 하더라도 봐주기가 어려운 터에, 토씨 하나까지 중요한 연설문들과 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쇄 등 주요 외교 현안들에 민간인 '최 선생님'의 검토를 거치게 한 일, 일국의 대통령이란 분이 '최 선생님'의 가업에 관여하여 재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낸 일 등 줄줄이 터져나오는 비리 의혹들을 넘길 시대는 이제 지난 것 같습니다.
더욱 참기 힘든 것은 세 번에 걸친 '응석'입니다. 국민 누구나가 느끼듯 '좋은 의도로 한 것이고, 그나마 내 잘못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잘못'이란 제3자적 변명으로 일관하며 '좀 봐 달라'는 식의 호소입니다.
참으로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쩌면 대통령님께서는 워터게이트 추문으로 미국이 들끓던 당시인 1973년 11월 17일 제가 살고 있는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가진 연설에서 닉슨이 뱉은 명언들을 잘 기억하고 이를 활용하고 계신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I am not a crook.)'
'대통령이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불법이 아닙니다.(When the President does it, that means it is not illegal.)'
제가 대통령님의 담화를 들으며 가장 기가 막혔던 것은 3차 담화에서 "하루 속히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벗어나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구절을 접하면서 저는 아버지 대통령 시절 걸핏하면 계엄령이나 위수령을 발동하면서 나오던 '대통령 담화'에서 '학생들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학업에 전념하라'는 선친의 '명령'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정말 어안이 벙벙하고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습니다. 유체이탈 화법이나 3자화법도 유분수지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혼란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은 '즉각 하야'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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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벗어나서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는' 길을 정녕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현재로서는 대통령님이 '만악의 근원'이란 것을 어찌 이다지도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
첫번 담화에서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하시더니 슬그머니 뭉개 버리셨고, 이어진 담화들에서도 '나 좀 봐 줘요' 아니면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하는 식입니다. 이제는 내년 4월까지 뭉개고 있겠다고 하십니다.
탄핵을 앞두고 아등바등 벌이고 있는 대통령님의 응석은 정말 봐주기 힘들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700만~800만 명이 모인 6차례 하야 집회는, 선친에 대한 국민의 애정을 등에 업고 권좌에 오른 '공주'의 응석을 더 이상은 받아주지 않겠다는 직접적인 표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더하여 선친의 18년, 전두환-노태우-이명박 등 그 아류들의 17년 그리고 당신의 4년을 합해 40여 년의 부패하고 비틀어진 보수체계를 이번 기회에 종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땡깡' 좀 그만 부리시고 즉시 내려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혼란을 극복하고 새 시대를 열어야겠습니다. 더이상 자리를 유지하고 계시는 것은, 작고하신 선친에게도 못할 짓 같습니다.
선친의 동상이 훼손되고 생가가 불타는 것은 그렇다치고,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밥 먹여줘서 고마운 박정희'에 대한 일말의 감사와 향수조차도 국민의 마음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시렵니까?
제발 선친에게는 '효도'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는 마지막 봉사를 하실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비록 사기꾼으로 밝혀지고 탄핵에 앞서 사임했지만, 닉슨이 남긴 최고의 명언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 명언을 당신이 아닌, 매주 애끓는 마음으로 촛불 들고 모이는 국민들에게 드립니다.
"꿈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 이 기사는 <코리아위클리> 제휴 <오마이뉴스> 5일치 < '순생때' 박근혜 대통령님, 이제 내려와야 합니다 > 제하 톱기사로 먼저 올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