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덕, 박근혜 탓
뉴스로=이재봉 칼럼니스트
선생님, 별고 없으신가요? 요즘 누구와 만나거나 통화하게 되면 인사말을 어떻게 시작할지 머리를 굴립니다. 온 사회가 안녕치 못한 터에 안녕하냐고 건네는 말은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안녕하냐는 말은 어차피 상투적(常套的)으로 쓰여 왔습니다만.
저는 지난달부터 참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두 사람 때문에요. 내년 1월 대통령 자리에 오를 트럼프와 즉시 내려와야 할 박근혜. 트럼프가 집권하면 북미관계나 한반도 주변정세 등이 어떻게 변할지 여기저기 글쓰고 강연하러 싸돌아다니네요. 하루 두 탕을 뛰기도 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국가기관의 초청을 받기도 하면서요.
이렇게 몸살 날 정도로 바쁘지만 토요일엔 공부하거나 쉬다 말고 거리로 나가게 됩니다. 박근혜 탄핵 시위대에 머릿수 하나라도 보태려고요. 1980년대 초 서울 대학가에서 데모 없이는 하루해가 지지 않을 때 정치외교학과 대표나 회장을 하면서도 시위대 앞에 서보기는커녕 맨 뒷줄에도 끼어본 적이 없는 ‘민주화의 죄’를 조금이나마 갚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아울러 트럼프 덕분에 쏠쏠하게 챙겨온 원고료와 강연료를 박근혜 때문에 다 쓰고 마네요. 광화문광장에서 청소년들에게 김밥을 쏘기도 하고, 익산이나 전주에서 서울을 오르내리는 청소년들에게 간식비 좀 보태주느라고요. 뱃속이 좀 차야 시위하면서 빨리 물러나라는 구호(口號)도 제대로 외칠 수 있을 테니까요.
하기야 박근혜 때문에 4년 전에도 돈 좀 썼습니다.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그녀를 떨어뜨리려고 원광대 모든 학생들에게 투표하면 점심 쏘겠다고 게시판에 알렸거든요. 150명 정도가 교수식당에 몰렸는데, 한 멋쟁이 선배 교수가 점심 값을 분담하겠다며 50만원을 내놓는 바람에 저는 생색만 낸 셈이었습니다만.
2. 노벨 평화상
지난 11월 12일 민중총궐기를 며칠 앞두고 광화문에서 김밥을 쏘겠다고 하자 한 신문사에서 전화했더군요.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은데 폭력으로 번질 수 있으니 ‘비폭력 저항’으로 이끌 수 있는 글 한 편 급히 써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망설이다 거부했습니다. 폭력 시위라도 참가자가 많아야 좋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물론 비폭력 시위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불의와 부정을 보고도 반대하지 않거나 못하는 ‘무저항’보다는 폭력으로라도 저항하는 게 훨씬 낫거든요. 제가 존경하는 간디의 가르침이지요.
그 후 서울에서든 익산에서든 매주 토요일 집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하면서 비폭력 저항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토록 훌륭하고 위대한 촛불 시위대를 제가 주제넘게 계도하겠다고 나설 뻔했잖아요.
지난 토요일 사상 최대 인파가 모였다는 광화문 집회 광경을 지켜보며 노벨 평화상을 떠올렸습니다.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저토록 아름답고 참신하게 지속적이고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것을 세계 어디에서 또 찾아볼 수 있을까요? 물론 오래 전부터 비폭력 저항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비폭력의 상징이랄 수 있는 러시아의 톨스토이와 인도의 간디가 노벨 평화상을 받지 못한 데는 아직도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지만,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을 비폭력으로 이끌었던 킹 목사, 1980년대 남아공에서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비폭력으로 이끌었던 투투 주교, 1980년대 중국에 맞서 티벳 독립운동을 비폭력으로 이끌었던 달라이라마 등을 꼽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인도와 티벳의 독립운동이나 미국과 남아공에서의 흑인차별 반대운동이 요즘 한국에서의 박근혜 퇴진운동처럼 감동적으로 전개되진 못했습니다. 당연히 세계토픽감이죠. 충분히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하고요. 내년엔 제가 관여해온 세계평화학회와 해외 평화운동가들을 통해 한국의 촛불시위대가 노밸 평화상을 받을 수 있도록 조그만 힘이나마 써보렵니다.
3. 신은미 재단
박근혜 때문에 나라 안팎에서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북녘 수재민 돕기 성금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침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선생이 공개적이고 합법적이며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구호 활동을 펼치기 위해 지난 달 LA에 신은미 재단을 만들어 미국 재무부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저도 이사로 이름을 올렸고요. 재단 운영비나 활동비는 이사들이 마련하고, 모든 성금은 100% 수재민을 위한 식량이나 옷을 구입하는 데 쓸 테니 관심 갖고 호응해주시기 바랍니다.
* 성금 보내주실 곳: 전북은행 102101-1778059 (이재봉/남이랑북이랑).
11월 11일 세 번째 보고 이후 오늘 12월 6일까지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강봉원 100,000 / 강종일 50,000 / 권덕중 50,000 / 김상민 100,000 / 김정우 100,000 / 신영호 50,000 / 이만열 100,000 / 이해학 300,000 / 조민경 30,000 / 하나요네즈 토큐야 50,000 / 이상 10명 930,000원.
이 가운데 몇 분의 사연을 조금 알리고 싶습니다. 이해학 주민교회 원로목사님은 지난 11월 초 ‘늦봄 (문익환 목사) 통일상’을 받고 상금의 ‘십일조’를 성금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요즘 건강을 잃고도 “철학이 담긴 민족 놀이문화” 윷놀이의 세계화에 힘쓰고 계시는데,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님은 박근혜 퇴진 및 역사교과서 퇴출에 앞장서느라 바쁘실 텐데 성금을 보내주셨습니다. 박근혜가 2012년 부정선거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며 투/개표 절차 개선운동을 벌여온 데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친일부역세력을 정당화/미화하기 위해 주도해온 역사교과서 국정화에도 적극 반대해오셨거든요. 10여년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지내신 분이죠.
신영호 님은 1970년대 반년 남짓 저와 같은 직장에 다녔던 친구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과 함께 성금을 보내왔습니다. “요즘 나라꼴을 지켜보며 60평생을 잘못 산 것 같아 자괴감에 빠진다.....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투표했었는데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며 사는 것이 꼰대가 되지 않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정치적으로 정의당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박근혜를 통한 좌절이나 분노 또는 충격이 얼마나 크면 새누리당에서 정의당으로 급회전을 하려 할까요? 상고 졸업생으로 첫 직장생활을 함께 했던 친구를 조만간 만나 40여년의 인생사를 술잔에 담아보고 싶네요.
한편, MBC PD를 지낸 김상균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북녘 수재민 돕기를 긴급 제안한다”는 제목으로 <피디저널>에 기고한 글을 보내왔는데 다음과 같이 줄여 소개합니다.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태풍 라이언록이 함경북도에 불어 닥쳤다. 사망자 133명, 실종자 395명 및 집이 4만 채가 붕괴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인명진 목사는 ..... “적대적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민족 자주 원칙의 통일 협상을” 실시하자고 촉구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 73명이 북한 홍수 피해지역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이 흐름에 우리 풀뿌리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팔을 걷고 나서 보면 어떨까. 지금 전국에서 대한민국에 새 역사를 써 보자는 염원을 지닌 촛불 시민들이 힘껏 동참해보자는 제안이다. 전국의 촛불 광장에서 인도주의 정신으로 저마다 백원이고 천원이고 정성을 모아보자는 것이다. 돈을 얼마나 모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참가하느냐가 이 제안의 관건이다.....”
감사하며 이재봉 드림
* ‘글로벌웹진’ 뉴스로 ‘이재봉의 평화세상’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j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