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말년에 다시 느끼는 감사

1968년 11월 모 재벌회사 간부사원 모집 최종 구두시험을 보는 날 나는 사복 한 벌 없는 가난한 군인이었다. 공군 대위 계급장을 단 군복을 입고 민간 회사 취업 구두시험에 나갔다.

일곱명의 시험관들은 서로 경쟁하듯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 때가 언제쯤인가’라는 질문도 받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가늠할 수 없는 시점에서 한 가운데 앉으신 분이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송 대위님, 많은 질문에 답변하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질문을 하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는 “여기 이력서에 보면 공군 병장때 일리노이주에 있는 미공군기술학교에 유학을 갔다고 하였는데 미국가서 보고 들은 것 중에 가장 부러웠던것이 무었이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분은 회사 사장님이셨다.

그는 일찌기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회사 설립에 온 힘을 다 쏟고 있는 분이었다. 나는 평소 내가 생각하였던 데로 "그 넓고 기름진 땅과 평범한 농부들이 ‘할멈차’ ‘할아범차’ 하는 소리였다"고 답하였다.

나는 회사에 입사해 열심히 다녔으나 줄서기와 뇌물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관행을 견디지 못하고 이민길을 결심했다.

오십년이 다 되는 그 시절이 요즘 왜 자꾸만 생각나는 지 모르겠다. 사실 내 나이 정도면 생을 서서히 정리할 때이니 내가 이민을 잘 왔는지 잘못 왔는지 스스로 평가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너무 무의미하다. 이민와서 비록 동족에게까지도 천대받는 생업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스스로도 내 직업에 대해 조금은 천박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시 이곳 한인사회에서는 목에 힘주며 감투란 감투는 두루 섭렵하신 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 분이 언제부터인가 이 사람 저사람에게 2∼3천불씩 빌려 쓰고는 나 몰라라 하고 월세도 못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나는 이 소문이 부디 풍문이기를 바란다.

이민생활의 막바지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만족하려면 무엇보다도 현재 자신의 분수에 맞추어 살고 만족의 기준을 허황하게 잡으면 안된다.

내나이 22살때 회사 사장앞에 서서 미국에서 보고 부러웠다고 말했던 것을 현재는 모두 성취하며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이야 무한한 갑질을 해가며 인생 사는 맛을 느끼고 살겠지만, 나의 경우엔 이민가면 최소한 다섯 아이들 고등학교는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믿고 살았었다.

결국 미국은 노동자도 살 만한 나라였다. 나는 아이들 모두 학자금 한 푼 대출 받지 않고 대학을 나오게 하였다. 그리고 일손을 놓은 지 10년 넘게 읽고 싶은 책을 모두 사서 보았고, 할멈은 할멈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마음껏 키우며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 다섯놈은 다들 애비가 이 땅에 이민 온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블루칼러 노동자가 비록 흙수저 물고 태어나 흙수저 물고 저 세상으로 가겠지만 남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고 갈 수 있는 것을 신에게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것으로 나의 이민 삶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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