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윌리엄 문 칼럼니스트 moonwilliam1@gmail.com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뉴욕 전철을 타고 시장을 만나러 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드블라지오 시장이 당선된 2014년에도 그는 뉴욕 전철을 탄 적이 있다.
반기문 총장의 전철 승차는 두말할 것 없이 전시성 이벤트다. 직장도 집도 맨해튼에 있는 그가 뉴욕 시민의 발인 전철을 지난 10년간 가끔이라도 타고 다녔으면 어떤 변화를 몰고 왔을까. 유엔총장 1기 때는 연임을 염두에 두고 상임이사국 눈치 보느라 그랬다치더라도 2기부터라도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하여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면 노벨 평화상 수상에 이어 한국의 차기 대통령도 ‘따 놓은 당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더하여 시민들과 벗하며 사랑받는 뉴요커로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엔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 고별 기자회견에서 첫 질문은 세계 평화와 인권이 아니었고,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폭탄과 총탄에 숨져가는 시리아 알레포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유엔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지극히 사적인 한국 대통령 출마에 관한 질문에 기자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는 출입기자들에 대한 비판적 저널리즘 이전에 반 총장 스스로 자초(自招)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별 회견에서 Korea 관련 이름이 19회 언급되었지만 반 총장은 모두(冒頭) 발언에서 한국관련 발언을 하지 않았다. 첫 질문자로 선택된 ‘기암팔오로’ 유엔출입기자단 회장은 “반 총장은 앞으로 은퇴, 또는 한국 대통령 출마의 두 가지 선택이 있는데 어느 것을 고를 것인지 명확한 대답을 해달라”고 했다. 이에 반 총장은 “지난 10년간 제대로 휴가와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말해왔지만 나는 유엔 사무총장이고 15일이나 임기가 남았다”고 하면서 ‘기름장어’ 특유의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며, 정치지도자들, 커뮤니티 지도자들, 사회지도자들 그리고 친구들도 포함된다” “나는 내 조국 한국을 위하여 어떻게 최선과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려할 것이다”라며 출마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 촛불시위에 대하여 “한국 국민들이 가장 큰 도전들의 하나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나는 미래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다”고 촛불 정서에 기대는 모양새를 취했다. 시리아 알레포 사태 해결을 위하여 철모를 쓰고 현장을 찾지도 못하고, 세계 평화와 인권의 기수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대신 “역대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힐난(詰難)을 받는 반 총장이 미래 한국의 리더십을 언급하고 있다.
“나는 또한 앞으로의 도전들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포괄적인 리더십의 새로운 유형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이해하고 있다”고 하면서 신 지도자상이 본인이라는 것을 은근히 내비췄다. 그러나 그는 간략하게나마 어떤 것이 포괄적 지도자상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일본 NHK 사토 특파원이 동북아의 현 정세를 설명하면서 동북아의 미래에 대하여 질문을 하자 반 총장은 “21세기는 태평양 아시아 시대”라고 답했다. 뉴욕 방문길에 회견장을 찾은 필자는 현장의 많은 한국 특파원들이 전혀 질문을 하지 않는 모습이 의아했다. 기자회견장을 떠나면서 반총장은 한국말로 한 여기자에게 “왜 질문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필자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서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네며 악수를 나누었다.
이날 유엔본부에서 우연히 만난 유엔 출입 8년차 이너시티프레스 메튜 러셀 리 기자는 필자에게 반 총장뿐만 아니라 그의 동생과 조카에 대한 부정적인 취재 내용을 소상히 알려 주었다. 더하여 그는 유엔 내부에서는 “떠나가는 사람에게 허물적 기사를 보도하지 말라고 한다”면서 “반 총장이 한국대선 출마가 퇴임직후 정부직 진출을 금지한 유엔결의안 위반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유엔출입기자(UNCA)협회가 반 총장을 초청하여 1인당 1,200 달러짜리 만찬을 하는 행사장 앞에서 그는 알레포와 세계 곳곳에서 무고한 생명들이 살상되고 있다고 목소리 높이며 생방송을 진행했다. 행사장 입구에 전시된 700마력 최고급 스포츠카를 보면서 700마리, 수천마리의 천사 말들를 알레포로 보내어 어린생명들을 구해야 한다고 외쳤다. 100 달러짜리 만찬을 하고 나머지 1,100달러를 모으면 큰 돈이 되니까 그걸 피난민들에게 보내야 한다고 일갈(一喝)했다.
유엔은 귀족만찬을 즐기는 곳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인권의 등불을 밝히고 삶의 희망을 주고 전쟁을 막으며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곳임을 망각해선 안된다. 알레포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지중해에서 피난민들이 한국전쟁 때처럼 전쟁폭력에 죽어 가고 있다. 그런데 세계 언론은 최초의 동북 아시아, 한국출신 사무총장이 한국대선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과연 그가 기름장어 외교관으로 남을 것인지, 장어 가죽이 벗겨지는 정치판에 입문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유엔 본부 로비에 전시된 가나 출신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노벨 평화상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상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스쳐갔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윌리엄 문의 워싱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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