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9월 중국 베이징(Beijing)에서 열린 4차 세계 여성회의. ‘베이징 선언’과 ‘Platform for Action’에 각국 여성대표들이 만장일치로 서명한 이 회의는 여성 권리에 대한 가장 진보적인 청사진이 그려진 회의였다는 게 유엔의 평가이다.
성 평등,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호주의 40년 과정은...
1995년 9월4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베이징(Beijing)에서 열린 제4차 세계 여성회의(Fourth World Conference on Women)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포괄적인 로드맵인 ‘베이징 선언 및 행동강령’(Beijing Declaration and Platform for Action)이 채택됐다.
유엔이 1975년을 ‘국제 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로 정하고 1985년까지를 ‘유엔 여성의 10년’으로 한다고 선언하면서 1975년 멕시코의 멕시코시티(Mexico City)에서 처음으로 세계 여성회의가 열린 지 꼬박 20년 후의 일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이 선언으로 인한 여성의 지위 향상은 얼마나 성취되었을까? 또한 여전히 주의가 필요한 우선 부분은 무엇일까?
지난 9월24일, ABC 방송은 성 평등을 위한 베이징 선언 20년, 특히 유엔이 정한 국제 여성의 날 선언 40년을 기해 호주의 여성지위 향상과 관련된 40년간의 사건 및 사례를 연도별로 정리, 소개했다.
한편 지난 9월25일부터 3일간 뉴욕에서 열린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는 새천년 개발목표를 승계하여 2016년부터 15년간 국제개발협력의 지침이 될 ‘2030 지속가능 개발 의제’(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가 채택됐다. ‘모든 형태의 빈곤 종식’을 포함, 총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에 대한 공동 과제 안에는 ‘성 평등 및 모든 여성과 여아의 역량 강화’도 주요 목표에 포함되어 있다.
호주의 성 평등 관련, 지난 40년의 과정을 알아본다. <편집자 주>
▲ 1975년 : 유엔, ‘국제 여성의 해’ 선포
유엔이 ‘국제 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로 정하고 1985년까지를 ‘유엔 여성의 10년’으로 한다고 선포한다. 당시 호주의 고프 휘틀럼(Gough Whitlam) 정부는 2년에 걸쳐 국제 여성의 해 관련 프로젝트를 위해 유엔이 330만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 1975년 6월19일 : 첫 세계 여성회의 개막
유엔의 ‘국제 여성의 해’ 선포와 함께 멕시코 시티(Mexico City)에서 처음으로 세계 여성회의가 열린다. 호주에서는 1973년 휘틀럼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설된 여성정책부(women's affairs) 책임자로 임명된 엘리자베스 레이드(Elizabeth Reid) 국장이 호주 대표단을 이끌고 여성회의에 참석했다. 전 세계 133개국 대표단이 참석한 첫 여성회의에서는 10년간의 ‘세계 행동 계획’(World Plan of Action)으로 전 세계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정책 개발을 결의했다.
▲ 1975년 6월21일 : 휘틀럼 정부, ‘no-fault divorce’ 법 도입
휘틀럼 정부는 기존 가정법의 주요 내용을 변경했다. 이 법안은 그해 말 의회에서 통과됐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no-fault divorce’로 이는 부부 당사자 쌍방의 책임을 묻지 않고 이혼이 가능하도록 한 내용이다. 이전에는 부부 중 한쪽의 과실이 인정 되어야만 이혼이 가능했다.
▲ 1975년 9월 : ‘여성과 정치 회의’ 개최
유엔의 ‘국제 여성의 해’ 선포와 관련, 호주가 이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는 차원에서 처음으로 캔버라(Canberra)에서 ‘여성과 정치 회의’(Women and Politics conference)가 개최됐다. 이 회의에서 여성이 권리를 정치 문제화 하고 연방 정부는 이를 추진하기 위한 기금을 지원했다.
▲ 1975년 12월4일 : 첫 성차별 금지법 발효
호주에서는 처음으로 남부 호주(South Australia) 주에서 남녀 간 성 차별을 금하는 법안이 주 의회를 통과, ‘Sex Discrimination Act’가 제정됐다. 이 법이 발효됨으로써 남부 호주 주에서는 고용, 교육면에서 성별 및 배우자간 차별(사실혼 관계 포함)을 금지했고 차별로 희생되는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 1975년 11월12일 : 연방 내각 첫 여성 각료 등장
1975년 마가렛 길포일(Margaret Guilfoyle. 현재 *Dame Margaret Guilfoyle)씨가 여성으로는 최초로 연방 내각 교육부 장관에 등용됐다. 길포일 여사는 이후 16년간 사회보장부, 금융부, 경제부 여성 장관으로 화려한 경력을 이어갔다.
(*Dame : 남성의 Sir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명예 훈장)
▲ 1978년 : 첫 야간 집회 개최
호주에서 최초로 ‘Australian Reclaim the Night’ 행진이 진행됐다. 이는 야간에 혼자 산책하는 여성을 상대로 한 폭행 발생에 항의하기 위한 여성들의 거리행진이었다.
이 행사는 이후 매년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 실시되기 시작했으며, 호주는 물론 전 세계로 확대됐다.
이 행사를 통해 여성들이 제기한 문제는 모든 형태의 성 폭력 문제를 아우르고 있다.
▲ 1980년 : 2차 세계 여성회의
1975년 첫 세계 여성회의가 열린 지5년이 지난 뒤, 코펜하겐(Copenhagen)에서 145개국 여성 대표단이 참가한 두 번째 여성회의가 개최됐다.
이 회의에서 각국 대표단은 행동계획과 1차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검토하면서 여성 고용과 보건, 교육 부문에서 특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 1981년 4월25일 : ‘안작데이’ 체포
안작데이(ANZAC Day)를 기해 캔버라(Canberra)에서 전쟁 중 여성을 성폭행하는 것에 대해 항의시위를 벌이던 65명의 여성이 경찰에 연행됐다.
▲ 1982년 ‘Future G-G plans’, 여성위원회로 변경
39세의 퀸즐랜드 변호사이자 법률학자인 퀜틴 브라이스(Quentin Bryce. 노동당 케빈 러드 수상 시절 호주 총독을 지냄)씨가 ‘국가 여성자문위원회’(National Women's Advisory Council) 의장으로 지명됐다.
그녀의 여성위원회 의장 지명을 다룬 ‘National Times’ 기사는 브라이스 변호사를 ‘브리즈번의 베스트 드레서’(Brisbane's best dresser) 그리고 ‘슈퍼우먼’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같은 표현을 거부하면서 “내가 급진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35살의 나이에 다섯 아이의 어머니라는 것은 기진맥진한 가운데서도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엄마들에게 ‘슈퍼우먼’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사람들은 그 점은 언급하지 않고 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며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 1983년 8월17일 : 여성에 대한 차별 종료 협정에 서명
호주는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 협정’(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에 서명했다. 이는 유엔이 정치, 보건, 교육, 경제, 고용, 법, 부동산, 결혼과 가족관계 등에서 여성의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국제 협약이다.
유엔의 이 협약에 서명함으로서 호주는 성차별 금지법을 포함, 다양한 부문의 법안을 새로 도입했다.
▲ 1984년 8월1일 : 연방정부의 성차별법 발효
연방정부의 새 여성차별 금지법이 호주 전역에서 발효됐다. 연방 수상실 여성지위부 담당인 수산 라이언(Susan Ryan) 장관이 입안한 이 법은 성 차별과 성희롱 등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아울러 호주는 처음으로 성차별위원회를 신설하고 첫 위원장으로 파멜라 오닐(Pamela O'Neill)씨를 임명했다.
▲ 1985년 7월15일 : 3차 세계 여성회의
1975년 유엔이 정한 ‘유엔 여성의 10년’이 끝나는 이 해, 3차 세계 여성회의가 나이로비(Nairobi)에서 열렸다.
140개국 이상의 여성 대표단은 지난 10년간의 도전에 대한 성과를 검토하면서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새로운 전략 개발을 논의했다.
▲ 1986년 2월11일 : 호주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 탄생
노동당 밥 호크 수상 집권 2기 당시, 조안 차일드(Joan Child) 의원이 호주 의회사상 최초로 여상 하원의장이 됐다. 노동당 최초의 여성 의원이기도 한 조안 차일드 의원은 하원 의장 지명의 유일한 후보였으며 야당인 자유당 의원들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차일드 의원은 1989년 8월 하원의장직에서 사임했으며, 이후 현재까지 애나 버크(Anna Burke. 2012-13년), 브론윈 비숍(Bronwyn Bishop. 2013-15년) 의원 등 두 명의 여성 하원의장이 더 배출됐다.
▲ 1986년 8월14일 : 최초의 여성 연방 상원의장 탄생
호주민주당(Australian Democrats) 소속의 재닌 헤인즈(Janine Haines) 상원의원이 호주 연방 의회 사상 최초로 상원의장이 됐다.
지난 2004년 헤인즈 전 상원의장이 사망했을 때 당시 노동당의 마크 레이섬(Mark Latham)은 뛰어난 여성 정치인으로 헤인즈 의원을 추모했다. 레이섬 대표는 당시 추모사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자 최초의 여성 상원의장으로 많은 의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면서 “소속 정당의 강력한 지도자였으며 상원 의회의 역할 이상을 수행했다”고 언급했다.
▲ 1987년 2월6일 : 고등법원 여성 판사 탄생
메리 가우드런(Mary Gaudron)씨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호주 고등법원 판사에 지명됐다.
▲ 1988년 2월 : 퀜틴 브라이스 ‘성차별위원장’ 지명
1982년 ‘국가 여성자문위원회’(National Women's Advisory Council) 의장으로 지명됐던 퀸즐랜드 출신의 퀜틴 브라이스(Quentin Bryce) 변호사가 1988년 2월, 파멜라 오닐(Pamela O'Neill)씨에 이어 두 번째 성차별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성차별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6개월쯤 뒤 데일리 텔레그라프(Daily Telegraph)와 인터뷰를 가진 브라이스 위원장은 “감추어졌던 여성차별들, 그것으로 인해 괴롭힘을 당했던 사례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여성을 비하하고 명백하게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특히 가장 많은 불만은 젊은 여성 및 아니 어린 취약계층 직장 여성들에게서 제기되고 있다”며 직장 등에서의 여성 차별에 대해 강력하게 비난했다.
▲ 1989년 5월11일 : 호주 최초의 여성 수석장관 임명
호주의 2개 테러토리(Territory) 중 하나인 ACT(Australian Capital Territory)의 수석 장관으로 로즈마리 폴레트(Rosemary Follett) 장관이 임명됐다. 이는 테러토리 수석장관 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이다.
하지만 ACT 정부에서 그녀에 대한 불신임으로 그해 말 물러났던 폴레트 수석장관은 1991년 다시 수석장관으로 부임, 1995년 3월까지 임기를 이어갔다.
▲ 1990년 2월12일 : 호주 첫 여성 주 수상 탄생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주에서 호주 주 정부 사상 최초로 여성 주 수상이 탄생됐다. 그해 주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면서 서부 호주 노동당 카르멘 로렌스(Carmen Lawrence) 대표가 주 수상이 됐다.
3년간 수상직을 수행한 로렌스 의원은 이후 연방의회에 진출했고 노동당 폴 키팅(Paul Keating)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했다.
▲ 1990년 2월 : 호주 국가기관 최초의 여성 대표 탄생
베티 처커(Betty Churcher)씨가 호주 여성으로는 최초로 호주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관장으로 임명됐다.
▲ 1990년 8월10일 : 빅토리아 주, 최초 여성 수상 탄생
조안 키너(Joan Kirner. 노동당) 의원이 빅토리아(Victoria) 주 최초의 여성 수상(1992년 10월6일가지 재임)이 됐다.
그녀는 올해 초 암 투병 중 사망했다. 빅토리아 주 수상 재임시 그녀는 특히 여성, 지역사회, 교육 부문 정책에서 열정을 보였다.
▲ 1995년 9월4일 : 4차 세계 여성회의
1995년 9월4일 중국 베이징(Beijing)에서 4차 세계 여성회의가 개막됐다. 이 회의에 참석한 189개국 여성 대표들은 만장일치로 베이징 선언 및 행동강령(Beijing Declaration and Platform for Action)에 서명했다. 유엔에 따르면 4차 여성회의는 여성 권리에 대한 가장 진보적인 청사진이 그려진 회의였다.
베이징 선언은 ‘유엔헌장에 천명된 남녀평등권과 인간의 존엄성, 기타 세계 여성의 목표와 원칙을 재확인하고, 세계인권선언과 기타 국제인권문서,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 특히 여성차별 철폐 협약과 아동권리협약을 재확인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 1999년 : 호주 국가 연구기관에 최초로 원주민 여성 대표 탄생
호주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Australia) 관장에 호주에서는 처음으로 호주 원주민 여성 다운 캐시(Dawn Casey)씨가 임명됐다.
▲ 2000년 10월 31일 : ‘1325 결의안’
2000년 10월31일 유엔 안정보장이사회가 여성과 평화,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발의한 ‘1325 결의안’(1325 Resolution)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 2001년 8월18일 : 북부 호주(Northern Territory) 첫 여성 수석장관 탄생
노동당의 클레어 마틴(Clare Martin) 의원이 북부 호주(Northern Territory) 최초의 여성 수석장관에 임명됐다.
마틴 의원의 수석 장관 임명은 1978년 테러토리로 자치 정부가 구성된 이래 우위를 점해오던 자유당(Liberal Party)의 지배력을 깨뜨린 것으로 평가된다. 마틴 의원은 6년간 수석 장관을 지냈다.
▲ 2003년 12월17일 : 마리온 스크림고어, 첫 원주민 여성 수석 장관 발탁
호주 연방은 물론 각 주, 테러토리 정부 내각에서 첫 원주민 여성 수석 장관이 탄생됐다. 북부 호주(Northern Territory) 마리온 스크림고어(Marion Scrymgour) 의원이 가족 및 지역사회 서비스(family and community services), 환경 및 문화유산부(environment and heritage) 장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이후 그녀는 북부 호주 부수석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 2003년 2월26일 : 여성 정치인, 모유수유로 하원에서 내쫓기다
빅토리아 주 정치인인 커스티 마샬(Kirstie Marshall) 의원이 주 하원에서 11일 된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다 의회에서 쫓겨난 사건이 발생했다.
마샬 의원은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단순히 성명을 발표하거나 규칙을 깨기 위해 여기(의회)에 온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 2007년 9월13일 : 퀸즐랜드 주 최초 여성 수상(premier) 탄생
퀸즐랜드(Queensland) 주 애나 블라이(Anna Bligh) 의원(노동당)이 QLD 주 사상 최초로 여성 수상에 취임한다.
▲ 2008년 7월1일 : 호주 최연
소 여성 연방의원 탄생
호주 녹색당(Greens)의 사라 핸슨-영(Sarah Hanson-Young)이 25세의 나이로 연방 상원 의원에 지명됐다. 이는 호주 연방 의회 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 2008년 9월5일 : 호주 최초 여성 총독 탄생
퀸즐랜드(Queensland) 주 변호사 출신으로 1982년 국가 여성자문위원회(National Women's Advisory Council) 의장으로 임명되고, 1988년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성차별 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된 바 있는 퀜틴 브라이스(Quentin Bryce)씨가 호주 최초의 연방 총독(Governor-General. 각 주 총독은 ‘Governor’)이 됐다.
▲ 2009년 12월4일 : NSW 주 첫 여성 수상 탄생
노동당의 크리스티나 케닐리(Kristina Keneally) 의원이 NSW 주 사상 최초로 여성 수상(제42대)이 됐다. 2011년 주 선거에서 자유당에 패하자 케닐리 수상은 정계에서 은퇴하고 호주농구협회(Basketball Australia) 회장으로 활동했다.
▲ 2010년 6월24일 : 호주 연방 사상 첫 여성 수상(Prime Minister) 탄생
노동당 대표로 집권 여당 수장이자 수상이었던 케빈 러드(Kevin Rudd)에 의해 발탁됐던 부수상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가 광산세, 탄소세 도입 등으로 케빈 러드의 인기가 하락한 틈을 타 당 대표에 도전, 승리하면서 제27대 호주 연방 수상이 된다. 길라드의 수상 취임은 호주 연방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러드 수상의 재임 기간에 이어 다음 연방 총선에서 승리한 길라드는 2013년 총선을 몇 달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당 대표에 도전한 케빈 러드에 의해 수상직에서 물러났다. 그녀가 집권당 대표로 수상을 지낸 기간은 3년 3일이었다.
▲ 2012년 3월8일 : ‘여성, 평화, 안전’에 관한 국가 행동강령 발표
국제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을 기해 호주 정부가 ‘여성, 평화, 안전’에 관한 6년간의 국가 행동강령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2000년 10월31일 유엔 안정보장이사회(UNSCR)가 발의한 ‘1325 결의안’(1325 Resolution)의 구체적은 실행 방안을 채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매 2년마다 이에 대한 진행과정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 2011년 9월13일 : 글로벌 여성 홍보대사 탄생
페니 윌리엄스(Penny Williams)씨가 호주 최초로 글로벌 여성 홍보대사에 임명됐다. 글로벌 대사는 양성평등에 대한 국가 정책 부양, 여성에 대한 사회, 정치, 경제적 권한 부여를 촉진하는 역할이다.
▲ 2011년 9월27일 : 호주 국방군 전투병과의 여성 제한 철폐
호주 정부가 공식적으로 호주 국방군(Australian Defence Force) 전투병과의 여군 제한 철폐를 공식화했다. 이를 계기로 호주 여군도 남자 군인들과 똑같이 전투병과를 포함, 어느 병과에서든 근무가 가능하게 됐다.
▲ 2012년 10월9일 : 길라드의 ‘여성혐오’ 관련 연설
줄리아 길라드 수상은 의회에서 자신이 ‘여성혐오 연설’이라 칭한 스피치를 한다. 이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길라드는 이 연설에서 “나는 남성에 의한 성차별이나 여성혐오에 관한 설교를 듣지 않을 것이다. 정부 또한 지금도 그렇고,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13년 12월6일 : 두 번째 글로벌 여성 대사 지명
전 호주민주당(Australian Democrats) 대표직을 지냈던 나타샤 스토트 데스포자(Natasha Stott Despoja)씨가 두 번째 글로벌 여성 홍보대사에 임명됐다.
여성폭력방지재단(Foundation to Prevent Violence Against Women) 이사장이기도 했던 그녀의 글로벌 대사직에 대해 그녀는 물론 그의 동료들은 “꼭 해보고 싶어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 2014년 7월27일 : 여성 및 아동 대상 폭력 대책을 위한 두 번째 국가 계획 발표
호주 정부가 여성 및 아동 대상 폭력 대책을 위한 두 번째 국가 계획(National Plan to Reduce Violence against Women and their Children)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첫 번째 행동강령을 기반으로, 지역사회, 여성 단체, 여러 분야의 그룹을 포함해 수많은 상담과 논의 및 우선순위를 검토해 작성됐다.
▲ 2015년 3월8일 :
당시 집권당인 자유당 대표로 수상직에 있었던 토니 애보트(Tony Abbott) 수상과 야당인 노동당의 빌 쇼튼(Bill Shorten) 대표가 배우이자 여권신장 운동가인 엠마 왓슨(Emma Watson) 주도의 ‘유엔 여성 #HeForShe’ 캠페인에 서명했다. 이 캠페인은 전 세계에 걸쳐 남녀평등을 위해 싸우는 데 있어 남성 참여자를 늘려나가려는 목적이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