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속국임을 자인하나?
뉴스로=김중산 칼럼니스트
지금으로부터 135년 전인 1882년 5월 22일 조선과 미국은 우여곡절 끝에 조미우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한다. 일제의 침략과 부당한 간섭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조선은 국제사회에서 인류의 자유와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초강대국으로 알려진 미국과 국교를 맺으면 미국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역사적인 조미우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첫 조선 주재 미국 공사가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조정을 향해 오고 있다는 전갈을 받은 고종은 ‘버선발’로 조정 앞뜰까지 한 걸음에 달려나가 그를 맞이했다니 당시 조선이 일본의 침략과 간섭으로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있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고종은 공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우리는 미국을 형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조선이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줄 것을 간절히 호소했다.
하지만 미국의 속내는 달랐다. 1904년 고종은 영어실력이 탁월한 이승만을 밀사(密使)로 선정해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루즈벨트 대통령은 답신에서 “조선사람들은 자기자신들마저 지킬 능력이 없는 무능한 민족이다”라며 거절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05년 7월 29일 미국은 1882년 조선과 어렵게 맺은 국교를 일방적으로 단절하고 일본과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체결한다. 미국이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를 승인하는 대가로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묵인하는 내용이다.
결국 우리민족이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매달렸던 미국이 우리를 돕지는 못할망정 일본의 식민지화를 승인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로 우리민족에게는 청천벽력(靑天霹靂)과도 같은 충격 그 자체였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條約)으로 국권을 상실하고 미국의 배신 때문에 36년간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망국의 설움을 겪은 우리민족은 1945년 해방과 함께 남한에 점령군으로 진주한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은 38선에 따라 국토가 분단되고 그 결과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참화를 초래했다. 그리고 휴전인 채 분단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통일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
“미국은 과연 ‘저들’에게 어떤 나라인가?” 촛불 민심에 맞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나와 성조기를 흔드는 바로 저들, 이른바 보수를 참칭(僭稱)하는 자들을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던지는 물음이다. 자기 나라 대통령 탄핵을 반대한다면서 왜 남의 나라인 미국의 국기를 흔드는가. 언필칭 주권국가라면서 설마 암묵적으로라도 미국에 내정간섭을 바라는 것이라면 수치스런 일이다. 주권국가는 커녕 스스로 미국의 속국임을 자인하는 꼴이니 말이다. 혹여 탄핵을 기각하도록 미국이 헌법재판소에 압력을 가해 달라는 뜻은 아닐 테지. 하기야 미국의 꼭두각시인 박근혜를 탄핵하면 주한미군 철수까지는 몰라도 한미동맹이 훼손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으면 만사형통(萬事亨通)일 테니까. 아무튼 아무리 뼛속까지 친미 숭미 종미라도 그렇지 삼일절과 광복절에도 성조기를 휘날리고 심지어 미국 국가를 연주하다니 지구상에 이런 한심한 국민이 또 있을까.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주한 미대사가 칼침을 맞자 대통령의 제부(弟夫)가 대사를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성조기를 펼쳐놓고 ‘석고대죄 단식’을 하는가 하면, 5천여 명의 자칭 보수들이 인천 자유공원에 모여 예의 성조기를 흔들며 맥아더 장군에 이어 분단의 원흉인 트루만 대통령의 동상도 건립하자며 시위를 벌였다. 이 같이 시도 때도 없이 미친듯이 성조기를 흔들어 대는 한국 보수 세력의 엽기적인 행태에 대해 오히려 의아해 하는 지각있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 앞에 얼굴을 붉힌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김중산의 LA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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