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청론] 아이슬랜드, 아일랜드, 남아공 등 선진 민주국 모델 따라야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연인원 천만의 시민혁명이 진행 중인 현재, 대부분의 국민들이 갈망하던 정유라의 체포소식은 2017년을 맞이하는 국민들에게 커다란 새해 첫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새해 첫날 밤(현지시간), jtbc 취재진의 신고로 출동한 덴마크 경찰의 긴급체포로 정유라는 조만간 강제 송환돼 특검조사에 응할 수 밖에 없어졌다. 특검은 이대 부정입학 관련 등 내용은 물론 지금까지 모든 잘 못을 부인해 온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이 거짓말로 밝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피의자 신분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적색수배자'로 인터폴에 긴급체포를 의뢰했었다.
▲ 필자 김현철 기자 |
일부 국민들은 유병언의 딸 섬나씨의 경우를 들어 정유라가 입국을 끝내 거부한다면 특검 기간이 끝난 먼 훗날까지 입국을 연장해 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으나, 이미 특검은 인터폴에 정유라가 참고인이 아닌 중요 피의자임을 밝혀 정유라의 강제 송환은 별 문제가 없으리라 보는 것이다.
'내시집단' 청와대 출입기자단
새해 첫날 박근혜 대통령은 전례 없는 갑작스런 청와대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면서 기자들의 임무 수행에 필수불가결한 카메라와 컴퓨터 노트북을 허용하지 않는, 독재국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 취임 이래 세상에 둘도 없는 '내시집단'인 대통령 궁 출입기자단은 아무도 이에 이의를 제기한 바 없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가 보도된 이래 줄곧 거짓 사과를 했듯, 이번에도 탄핵 사유들에 대해 궤변과 거짓말로 자기변명만을 늘어놓았다. 마치 3차에 걸친 대국민 사과가 거듭될 때마다 국민의 감정을 자극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똑 같은 결과만 가져왔을 뿐이다.
이 자리에서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우선에 두어야 할 청와대 기자단은 작년 신년 기자회견에 이어 이번에도 제대로 된 질문 한번 못 하고 만 것이다. 아무리 갑작스런 회견이나 간담회라 하더라도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궁금증을 단 한 건이나마 예리하게 질문해 보도했어야 옳았다. 이런 면에서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반성은 물론 국민들에게 겸허하게 사과하는 자세가 아쉽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청와대 대변인에게 보도 자료를 풀(pool)하게 하면 되지 '내시' 소리를 듣는 청와대 기자단이 존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여건에서도 청와대 기자단이 필요하다는 것은 외국인들에게 우리한국에 청와대 기자단의 자유취재가 보장되고 있는 듯한 쇼로, 대외홍보용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아직도 천만 촛불의 함성을 폄하하고 있는 것인가?
지난 10월말 3만에서 시작된 촛불의 물결은 불과 두 달 만인 연말 12월 31일의 제10차 촛불집회에서 또다시 전국 110여만(서울 100만여 명, 지역 10만4000여명, 오후 10시 30분)을 넘김으로써 단일 의제로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누적 인원 1천만을 돌파,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고 있다. 이는 매회 평균 100만 시민이 촛불 시위에 참가했다는 뜻이다.
"박근혜 즉각 퇴진", "황교안 사퇴", "김기춘 우병우 구속"을 외친 시민들은 '송박영신(送朴迎新, 박근혜 대통령을 보내고 새해를 맞음)'이란 표어를 내걸고 오후 7시부터 본집회, '하야 콘서트' 순서로 대잔치를 벌였다.
이날 저녁 무대에 오른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 박은미(46·허다윤 양 어머니) 씨는 "천 날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못한 아이가 있다, 세월호를 인양해 달라"며 울먹였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연극 연출가 이해성 씨는 "21세기 대명천지에 검열이라는 게 있을 수나 있는 일이냐"며 "청와대는 지금 헌법과 법률을 유린한 야만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시민들은 지난주 9차 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총리공관 100m 앞까지 행진했다.
핵심인물 빠진 '맹탕 청문회'… 청문회법 강화해야
대통령의 헌정질서 문란과 국정농단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국회 청문회에 참석을 하지 않은 최순실, 안종범, 정성호 등을 조사하기 위해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의원들은 지난 달 26일 구치소를 방문했다. 그러나 구치소 측은 법무부의 지시를 받은 듯 죄수 폭동 때나 출동하는 무장 형무관 다수를 동원, 이를 적극 방해하려 했다가 현장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의원을 보고서야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이토록 어렵게 피의자들을 만난 조사위원들은 예상했던 대로 알맹이 없는 대답들만 들어야 했다.
하긴 박 대통령 정부의 2인자로서 국정농단에 책임감을 느끼기는커녕 국화를 향해 대통령에 준하는 예우를 갖추라든지, '꼬마박근혜' 행세로 야 3당을 경시하는 자세를 보여 온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황교안은 지난 달 20~21일로 예정된 국회의 대정부 질문 출석 요구에 대해 "전례가 없다, 대통령권한대행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위중한 상황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고민 중"이라는 교만한 자세를 보였다.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국회에 가서 무정부 상태에 빠진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대화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2004년에 노무현이 탄핵소추 되었을 때 총리로서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의 진중하고 사려 깊은 행보를 배워야 했다. 황교안은 지난 달 15일 이양호 전 농촌진흥청장을 한국마사회 회장에 임명했다. '최순실-정유라 게이트'에 연관되어 사임한 현명관의 후임이라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번 국회 청문회를 이토록 실속 없는 맹탕 청문회로 만든 장본인들은 박근혜 대역의 실질적인 대통령 권한을 행사했던 최순실을 비롯, 중요 인물들의 불출석과 그 중 핵심 인물인 김기춘, 우병우, 삼성의 이재용, 최순실의 비서실장 격인 조카딸 장시호라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청와대 간호장교 조여옥 대위 등이 입을 맞춘 듯 증거를 보면서도 "기억이 없다", "모른다"로 일관, 국정농단에 대한 실체적 규명에 한계를 보인 점도 청문회의 김을 빼버렸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국민들은 청문회 조사 당사자인 국회의원들과 함께 수사권이 없는 국정조사 청문회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면서 이번에 얻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한 특검의 심도 있고 철저한 조사가 이번 국정농단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 결과, 국회 모독죄나 위증죄, 국회의 기소권 등 국민들이 바라는 선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청문회법 강화를 규정한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최순실-우병우 방지법')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발의된 것은 적지 않은 소득일 것이다. 이 법안은 '국회 직원들에게 특별사법경찰관의 권한을 부여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국회에 증인이 출석하지 않거나 자료 제출 또는 선서를 거부한 자는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한다', '국조특위는 증인 개인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현행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불출석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의 벌금, 동행명령장 거부 등의 국회모욕은 5년 이하의 징역, 위증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지만, 그간 법 적용이 너무 느슨해서 청문회에 불출석 또는 위증으로 처벌된 사례는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그나마 벌금형이 전부였다.
촛불혁명, '시민의회' 구성으로 이어져야
한편 헌법재판소는 하루 속히 탄핵안을 인용하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화답하겠다는 듯 예상보다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빠르면 이 달 말, 늦어도 3월까지는 탄핵 인용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특검도 국회청문회 실황 중계방송과 검찰에서 넘겨받은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피의자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 기득권 청산을 외치는 국민들의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유라가 체포되어 특검의 조사는 예상보다 훨씬 알차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어 국민들과 함께 특검의 사기는 백배할 것이다.
이제 국민의 촛불은 '박근혜 탄핵'을 넘어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명확하게 법제화한 아이슬랜드, 아일랜드, 남아공 등 앞서가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을 모델로 한 주권자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시민 주도의 헌법을 가진 아이슬란드의 경우, 일반 국민들로 구성된 '헌법의회'를 만들어 실질적인 개헌안 조문작업을 맡기고 있다. 아일랜드 역시 '시민의회'를 법적기구로 두고 의원들을 무작위로 추첨해서 의원 100명의 시민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12월29일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 여야 정치권의 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개헌을 하더라도 이제는 국회가 아니라 시민이 주도하는 개헌으로, 지난날처럼 국민이 소외된, 기성 정치인들만의 장이 아닌 시민 주도의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를 세워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한상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일랜드나 아이슬랜드가 개헌 과정에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고 유도한 것은 민주주의를 본질적으로 진전시킨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개정 절차는 헌법대로 하더라도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별도의 법률을 만들어 이런 기구를 한시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견들에 대해 국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끊임없는 촛불혁명을 이어가면서 시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감시, 주권자 국민의 권리를 당당히 챙겨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