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뉴스넷] 최윤주 발행인·편집국장 editor@inewsnet.net
눈 감은 정의
한국을 강타한 인문학 서적 중 단연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다. 이 책에는 7,000명도 되지 않는 하버드대 학부생 가운데 무려 1,000명의 학생들이 수강하는 마이크 샌델 교수의 강의내용이 생생하게 적혀있다.
책의 제목만 보고 이 책에 ‘정의’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책은 특정한 상황을 설정해 ‘행복의 극대화’ ‘자유존중’ ‘미덕의 추구’라는 세가지 범주 안에서 각각의 정의론이 지니는 오류를 증명해낸다.
저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독자를 고민에 빠뜨린다. 독자들은 선택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례 속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당신은 전차 기관사다. 시속 100킬로미터의 빠른 질주를 하고 있다. 그런데 저 앞에 인부 다섯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열차를 멈추려 했지만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 세울 수 없다.
이 때 오른쪽에 비상철로가 눈에 띈다. 그 곳에는 한 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다. 전차를 비상철로로 돌린다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또다른 상황이다.
당신은 플랫홈에 서 있는 제3자다. 저 쪽 끝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철로 끝에는 인부 다섯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비상철로가 없다. 영락없이 다섯명의 인부들이 죽게 생겼다.
그런데 문득 당신 옆에 덩치가 산 만한 남자가 서 있는 걸 발견한다. 당신은 그 사람을 철로 위로 밀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명의 목숨은 건질 수 있다.
첫번째 예에서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명의 목숨을 건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답했다면, 두번째 예에도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 서 있던 남자를 밀어뜨려 죽임으로써 다섯명을 구하는 게 옳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을 밀어서 죽게 하는 행위는 아무리 바람직한 이유를 내세워도 잔인해 보인다.
답없는 문제들의 답을 내기 위해 골몰하게 하고, 벤담의 공리주의와 칸트의 자유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주의 등 전문적인 정치철학들이 쉴새없이 쏟아지는 이 책은 결코 쉬운 내용의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책은 한국사회에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최고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의 저변에는 정의에 대한 갈급함이 자리하고 있다.병에 걸렸을 때 건강이 더 크게 보이듯 만연돼 있는 부조리와 부당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정의’를 갈구하게 만든다. 거대 권력의 부정의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의 고뇌와 반성이 만들어낸 ‘대리만족’인지도 모른다.
정의를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혹자는 공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린 것이라 하고 혹자는 왜곡된 판결에 대한 풍자라고 한다.
정의의 여신은 왜 눈가리개를 했을까. 진실과 정의를 분별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항하지 못해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지난 19일, 대한민국 법원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작은 촛불 하나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거대권력에 대항해 이뤄낸 약자들의 ‘정의’가 또다시 무너졌다. 법은 불평등했고 상식은 법에 의해 파괴됐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정의의 여신은 돈 앞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법원에 의해 강탈당한 정의, 재벌에게 굴복한 정의.
권력의 썩은내가 진동하는 눈감은 정의가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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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독자들이 인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