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화 70년: 15회】50년대 말 한국 기독교계 발칵 뒤집어 놓은 '회귀선'과'오발탄'
(서울=코리아위클리) 임헌영 교수(민족문제연구소장) = 파리의 선량한 기독교도로 부유한 직물업자인 자노 드 세비네라는 막역한 벗인 동업자 유태교도 아브라함을 개종시키고 싶었다. 완강한 아브라함이 세비네라의 우정에 감동, 개종 전 로마의 고귀한 성직자들을 직접 봐야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타락상을 훤히 꿰고 있던 자노는 아브라함이 성직자들을 만나는 것을 극구 만류했으나 친구는 듣지 않았다.
한참 뒤 돌아온 아브라함은 로마의 높고 낮은 성직자들이 불결·음탕·탐욕으로 양심의 가책도, 염치도 없는 "악마의 소업을 만들어내는 제작소" 같다고 했다. 예상했던 터라 자노는 개종 권유를 포기하려는데 아브라함이 말했다. 그런 악행에도 기독교는 더 번성할 테니 자신을 어서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보카치오, <데카메론>, 첫째 날 둘째 이야기).
▲이승만 정권의 기독교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예수에 대한 신성모독적 내용을 담아 기독계를 발칵 뒤집었던 문학 월간지 '현대문학' 1958년 5월호에 실린 소설가 송기동(아래 원안)의 <회귀선>. |
'장로 이승만'의 기독교 정책
물론 이 아브라함이 기독교도의 전형은 아니다. 자유·평등·박애의 횃불로서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 오체투지한 미카엘 같은 기독교도가 엄존하는 한쪽에는 그 행동을 보기만 해도 기독교 전체에 반감을 야기하는 루시퍼의 특전대 같은 신도들도 적지 않다.
사악한 자들은 천국처럼 희희낙락거리는데, 착한 사람들은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세상이라면 대체 신앙이란 무엇인가? 역대 독재권력의 방탄조끼 역을 해온 것도 모자라 지금도 박근혜·최순실을 비호하는 교인들은 대체 누구인가? 배교와 친일로 얼룩진 치욕스러운 신앙 행태가 도리어 참신앙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훌륭한 신도들을 핍박하는 신앙의 '그레샴의 법칙'이 왜 이리 극심해졌는지 모르겠다. 새삼 국제정치학 박사였던 이승만 장로의 기독교 정책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미군정은 일본과 한국에서 강력한 기독교 포교정책을 폈으나 일본에서 실패한 반면 한국에서는 크게 성공했다. 미군정은 일제가 남긴 신사와 천리교 등의 재산을 영락교회, 경동교회, 성남교회, 서소문교회 등에 불하했다. 서울과 광주 YMCA,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 장로회신학교(장신대와 총신대 전신), 고려신학교(고신대 전신), 중앙신학교(강남대 전신), 대한신학교(안양대 전신) 등도 적산에 세워지거나 적산을 거쳐 갔다(강인철, <종속과 자율-대한민국의 형성과 종교정치>, 한신대학교 출판부).
1948년 5월31일 제헌국회에서 이승만 임시의장은 느닷없이 목사 이윤영(李允榮, 1890~1975) 의원에게 기도를 요청하여 기도로 개원했다. 그나마 친일파가 아닌 목사라 한숨은 돌리지만 이승만의 노골적인 기독교 특혜의 정치무대는 명백해졌다.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은 친일목사를 두둔하며 형목제도(刑牧制度)로 형무소 내 선교 특권을 개신교가 독점토록 했고, 군목(軍牧)제도로 기독교가 특혜를 누리도록 했다. 성탄절은 임시 공휴일(1948년)을 거쳐 개천절과 함께 이듬해 공식 휴일로 지정했다. 8·15 이후 민간방송사로는 기독교방송(CBS, 1954년)이 처음 개국했고 두 번째도 극동방송(1956년)이었다.
1950년대는 온 나라가 대부흥회장 같았다. 개혁적인 분파가 일어났으나 전반적인 기조는 독재와 부패정권 지지 정치집회장으로 비춰졌다. 이승만을 한국의 모세 혹은 여호수아로 승화시키기도 했다(최천택·김상구 공저, <미제국의 두 기둥 전쟁과 기독교>, 책나무).
송기동의 '신성모독' 필화
이런 아노미 현상은 오히려 기독교 전반에 대한 반감을 유발할 정도였다. 작가 송기동(宋基東, 1932~1993)의 반기독교 소설 <회귀선>(현대문학, 1958년 5월)은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출현했다. 신앙 행태나 그 해악들에 대한 구구한 고발을 넘어 예수 자체의 존립 가치를 뒤흔들고자 시도한 게 이 소설이다.
예수는 체포당해 재판, 처형될 것을 예상하고 칼프시스란 사나이를 은 130냥으로 매수하여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철저히 훈련시켜 자기를 대신해 연기, 처형당하게 했다.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을 지키는 병정들을 술로 유인한 뒤, 예수는 칼프시스의 시신을 옮겨버리고 자신이 앉아 있는 동안 마리아가 다른 제자들을 데려오게 하여 부활의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예수와 마리아 둘만의 비밀이다.
둘은 피신, 예수에게 열병이 들자 동굴에서 마리아가 헌신적으로 보살폈으나 죽고 말았다. 마리아는 그를 따르면서 틈만 나면 사나이로서의 그를 사랑하며 유혹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죽기 직전까지도 온갖 교태와 유혹에도 거부당한 그녀가 시신의 배에서 아래로 더듬어 내려가다가 "배꼽에서부터 한 뼘쯤 밑에 마땅한 형태도 갖추질 못한 채,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한 점 살만이 꼬부라져 있을 뿐"임을 보고서 그녀는 내뱉는다. '이런 병신에게 뭣을 바라고 쫓아 다녔던가?'
소설은 기독교계를 발칵 뒤집었다. 현대문학 주간 조연현은 '<회귀선> 문제에 대하여'(1958년 9월)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자유이나 인격적인 모독은 정당한 비판이 아니며, 총체적으로 이 소설은 기독을 모독하기 위한 조작 이라 용서되어서는 안된다고 못박아 신앙계의 항의를 달랬다.
그런 한편 일부 종교단체나 기관이 고소하겠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분노는 이해하나 문학적·사상적 문제 는 법률로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다 무지와 우맹을, 탈선과 타락을 법률로서가 아니라 정신으로서 구원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사상이 아니었던가. 누구나 이 <회귀선>과 같은 경우에 대해서 활발한 비판이 제출되는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상적인 문제로서 행하여져야 할 것이며 현실적인 압박이 형식으로서 나타나서는 안될 것으로 안다 고 결론 내렸다.
이 작품을 추천한 계용묵은 '소설 <회귀선>에 대하여-추천인으로서'(현대문학, 1958년 10월)에서 이 소설의 기술상의 우위점만을 인정한 나머지 작품 주제에 관찰이 소홀했던 결과 라고 했다. 이후 이 소설은 별 저항 없이 문학 선집이나 작품집에 그대로 실리게 된다.
이범선의 '조물주의 오발탄'
▲이승만 정권의 기독교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예수에 대한 신성모독적 내용을 담아 기독계를 발칵 뒤집었던 문학 월간지 '현대문학' 1958년 5월호에 실린 소설가 송기동(아래 원안)의 <회귀선>. |
군부독재는 최태민까지도 기독교 설득에 동원했고, 이명박 장로는 개신교의 극우화에 가속 페달을 달았으며, 박근혜 정권은 아예 선악의 가치기준 자체를 허물어 버렸다. 촛불이 박정희 신화만이 아니라 신앙의 참과 거짓을 변별하는 시대의 분기점이 될 수는 없을까.
<회귀선> 사건으로도 개과천선하지 않은 기독교는 1년 뒤 이범선(李範宣, 1920~1981)의 <오발탄>(현대문학, 1959년 10월) 필화를 일으켰다.
계리사 사무실 서기 송철호 일가는 월남 피란민으로 동생 영호는 제대 2년째 실직자이고 여동생 명숙은 양공주다. 해방촌 판잣집 처지인 이 가족들을 가난보다 더 괴롭히는 것은 병든 노모가 시도 때도 없이 "가자!"고 졸라대는 호소이다. 소설은 이 절규를 19회 반복하다가 마지막의 "가자"는 송철호 자신이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도 없이 외치도록 장치한다.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던지고" "까마귀만 한 용기만이라도" 가지고 살자던 동생 영호는 강도짓을 저지르다 경찰서에 갇혔고, 만삭의 아내는 분만 중 죽었으며, 치통으로 무리하게 이빨을 뽑은 철호는 지혈도 못한 채 택시를 탔지만 어디로 갈지 몰라 그저 가자고만 하니 기사는 오발탄 같은 손님 이라고 나무랐다. 그 말에 철호는 자신을 아마 조물주의 오발탄 이라고 하여 이범선은 기독교 재단인 대광고교(창립자 한경직 목사) 교사직에서 해임되었다.
<회귀선>을 수용한 기독교가 진보신학이라면 이를 비판한 기독교는 보수신학으로 이범선을 파직으로 몰아갔다고 보겠다. 이 두 필화는 이후 오늘까지도 한국 기독교계의 좌표로 작용한다.
<꼬리기사> 이범선 '오발탄' 일부분
"양심이란 가시?"
"네, 가시지요. 양심이란 손끝의 가십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윤리. 그건 나이롱 팬츠 같은 것이죠. 입으나 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마찬가지죠. 관습이요? 그건 소녀의 머리 위에 달린 리봉이라고나 할까요? 있으면 예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없대서 뭐 별일도 없어요.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 되는 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돼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하기는커녕 그놈의 상투 끝에 턱 올라앉아서 썩은 흙을 쑤시던 더러운 주둥이를 쓱쓱 문질러도 별일 없거든요. 흥."
영호는 코웃음을 쳤다.
(중략)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에 먼저 올려졌습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