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액수의 월급을 받는 우편배달부라도 부담스런 월세를 사는 파리 근무자와 집세 부담이 없는 지방 근무자 사이에도 삶의 질이 크게 다른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일하기 좋고, 살기 좋은 도시는 어디일까?
주민 4만, 광역권인구 10만 이상 98개 도시를 중심으로 ‘일하기(Travailler)’와 ‘거주하기(Vivre)’ 두 테마로 분리하여, 최근 주간지 엑스프레스가 톱10 도시를 발표하여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 가장 일하기 좋은 도시 톱10
프랑스에서 일하기 좋은 도시의 심사기준에 프랑스통계청(Insee)이 2016년 6월 30일자 발표한 실업률, 일자리공급현황, 지난 2년 동안 창설된 기업체, 최근 10년간 창출된 일자리 수, 젊은이들의 직업교육과 사회진출현황 등이 다방면으로 참조됐다. 특히 노동시장에 첫 진출하는 젊은이들이 숙소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하고 월세는 낮으며, 이들의 문화소비를 충족시킬 도심의 분위기도 점수에 가산되었다.
기업체뿐만 아니라 각종 연구기관과 과학시설단지를 갖추고, 비즈니스맨과 연구원들을 유치할 여건이 구비되었는가도 심사대상에 올랐다. 더 나아가 연구원, 비즈니스맨, 관광객들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 TGV역과 비행장시설 여부도 심사조건에 포함되었다. 호텔시설과 식도락을 즐길만한 고급레스토랑들의 여부도 일하기 좋은 도시가 갖춰야할 기본조건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이처럼 일자리창출과 노동시장이 활성화를 이루며 낮은 실업률과 집세 등 노동환경이 쾌적한, 가장 일하기 좋은 도시 톱10에서 낭트(Nantes)가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리옹(Lyon), 3위 렌느(Rennes), 4위 보르도(Bordeaux), 5위 툴루즈(Toulouse), 6위 그르노블(Grenoble), 7위 릴(Lille), 8위 투르(Tours), 9위 디종(Dijon), 10위 오를레앙(Orléans) 순이다.
▶ 가장 살기 좋은 도시 톱10
‘살기(Vivre)’ 좋은 도시를 측정하는 잣대로 기후와 일조량, 교육시설, 의료시설, 문화시설, 치안유지와 범죄율, 부동산시세, 공기오염도 등이 반영되었다.
이러한 기준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톱10에서 앙제(Angers)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서 2위 켕페르(Quimper), 3위 리모주(Limoges), 4위 알비(Albi), 5위 뽀(Pau), 6위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 7위 렌느(Rennes), 8위 쁘와티에(Poitiers), 9위 앙굴렘(Angoulême), 10위 브레스트(Brest) 순으로 이어진다.
2016년 한해 공급된 문화행사들, 교육부가 최근 3년간 발표한 바칼로레아 합격률, 인구분포도에서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 최근 2년간의 대학교육 실적, 고등학교와 대학의 평판 등이 심사대상에 올랐다. 또한 프랑스공증인협회가 2016년 4월 발표한 부동산시세와 월세가격, 내무부가 발표한 범죄율도 등수 매김에 크게 영향력을 부여했다.
주민들이 숨 쉬는 공기의 질도 중요하며, 대기를 오염시키는 위험한 공장지대를 둔 도시는 배제되었다. 지역주민의 건강을 담당하는 일반의, 전문의, 종합병원 등의 의료시설과 대중교통시설도 선정기준에 포함되었다.
기후조건에서는 프랑스기상청의 공식자료에 의거한 1년 평균 일조량이 중요한 잣대가 됐다. 특히 바다와 해변휴양도시가 가까운 거리를 살기 좋은 쾌적한 환경요소에 포함시켰다. 그러다보니 바다가 멀고 일조량이 비교적 약한 북쪽과 동쪽지역 도시들이 톱10에서 대거 빠져있다.
반면 일하기 좋은 도시 9위로 뽑힌 동쪽지역 디종은 집세가 비싸지 않으며 일조량도 주변 다른 고장보다 좋은 편이라,이 지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됐다. 디종은 실업률이 낮은 편이고 일자리창출에 활력을 지닌 도시로, 파리에서 TGV로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많은 이점을 지닌다. 또한 치안유지가 좋으며, 상업, 문화, 의료시설, 대학 등 교육시설을 두루 잘 갖춘 살기 좋은 도시라는 평가이다.
사실 일조량에서 보자면 단연 니스, 툴롱 등 남불 코다쥐르 해변도시들을 꼽지만, 이 고장의 부동산시세가 비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아비뇽, 니스, 그르노블, 마르세이유 등은 치안유지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가장 살기 좋은 도시 톱10에서 브르타뉴 지방에서만 켕페르(2위), 렌느(7위), 브레스트(10위) 3개 도시가 선정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 지방이 OCDE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가 선정한 362개 세계지역리스트에서도 10점 만점에 의료시설8점, 치안유지 9점, 교육 8.5점으로 후한 점수를 얻었다고 일간지 웨스트프랑스지가 덧붙였다.
가장 일하기 좋은 도시 톱10에서도 3위를 차지한 렌느는 중요 경제도시이자 대학도시로서 품격을 지닌 아름다운 도시이다. 도심은 늘 젊은 청춘들로 활기에 넘친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관광명소 생-말로와 몽생미셸로부터 약 70km거리인 교통요지로, 올 7월부터는 파리-렌느 구간 고속열차가 1시간 거리로 단축될 전망이다.
2017년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선정된 앙제는 멘에르와르(Maine-et-Loire) 도청소재지로 역사가 깊은 고장이다.아름다운 작은 라멘(la Maine) 강이 도심을 흐르며 쾌적한 환경조건을 두루 잘 갖춘, 삶의 질이 비교적 높은 고장이라는 평가이다. 특히 숨은 알짜배기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평판 높은 대학도시이면서 동시에 중소기업들이 대거 주둔하고 있어, 낭트, 렌느와 함께 서부지역경제를 움켜주고 있다. 학생,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기업인들도 좋아하는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 프랑스의 얼굴을 대변하는 중소도시들
프랑스에서 한창 경제 붐이 일어나던 1960년대만 해도 수도권 파리를 중심으로 노동인구가 몰렸으나, 오늘날은 지방으로 분산되는 추세라고 한다. 해마다 20만 명이 수도권을 떠나 새로운 엘도라도를 찾아 지방으로 떠나고 있다는 통계이다. 수도권 공무원들 중에는 출퇴근길 1시간 이상 험악한 대중교통에 시달리지 않고 월급도 더 많이 저축하기를 원하면서 쾌적한 소도시 근무를 선호하는 사례도 종종 생겨난다고 한다.
파리의 한 굴지신문사에서 근무했다는 B씨의 경우는 이렇다. 현재 켕페르에 주둔하는 인테리어 전문업체에서 부엌싱크대 전문조립업자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가 파리의 하이칼라시절을 청산하고, 지방으로 낙향한데에는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파도타기 서핑 마니아이다. 바람이 불면 언제든지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달려가기 위해 대서양해변에서 불과 1km 떨어진 작은 집을 구입하여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의 직업에 만족하며 파도타기 서핑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살기 좋은 도시 6위로 선정된 중부내륙지대 클레르몽-페랑은 바다에서 멀지만, 남불 햇볕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온화한 기후와 좋은 일조량을 지닌다. 3,4,5위를 차지한 리모주, 알비, 뽀의 경우도 니스, 칸, 툴롱과 비교하여 특별하게 두드러진 이점도, 그렇다고 범죄율이 높은 마르세이유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부정적인 요소도 없는 평범한 중소도시들이다. 공기는 대체로 맑고 치안유지도 좋으며, 부동산시세는 적당하고 청소년들은 말썽 부리지 않고 학교에 잘 다니며, 파리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문화공간과 의료시설이 잘 갖춘 중소도시들이다.
이처럼 모든 면에서 두루뭉술한 이들 중소도시들이 사실상 프랑스의 정상적이고 정직한 얼굴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이들 지방주민들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며, 문화와 경제활동이 수도권이나 대도시로 집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프랑스가 지니는 한 진면모를 대변하고 있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