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선생의 예언
뉴스로=이계선 칼럼니스트
이곳 사람들은 일찍부터 아산만과 퇴미산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웠다.
아산만 북쪽10리에 있는 현덕초등학교교가.
“잔디 풀 고운터에 우리 현덕교/ 배우러 모여드는 문화의 전당
퇴미산 굳센 기상 힘차게 뻗고/ 아산만 억센 물결 마음을 씻네“
북쪽 20리에 있는 안중중학교교가.
“마이산과 계두봉 높은 기슭에/ 정성으로 이룩한 안중학원은
민주조국터전을 굳게 하려고/ 마음속을 밝혀주는 거룩한 봉화“
힘을 모아 높이 들자 겨레의 불빛/ 찬란하다 그 이름 안중중학교“
근처 초중고등학교 교가에는 어김없이 퇴미산과 아산만이 등장한다. 안중교가에 나오는 계두봉(鷄頭峰)은 퇴미산이 아래로 내려가다가 아산만과 만나는 절벽에 서있는 퇴미산줄기 봉우리다. 닭 머리처럼 생겨서 계두봉. 옛날 토정 이지함이 그 봉우리에 올라 새 시대의 계명성(鷄鳴聲)처럼 아산만 시대를 예언했다. 그래서 계두봉이다.
안중중학교에 공정열선생이 있었다. 퇴미산아래가 고향이었다. 쉽고 재미있는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는데 인기가 없었다.말 주변이 없어 학생들은 졸기만 했다. 대신 냄새 맡는 데는 귀신이었다. 막대기를 들고 다니면서 비행학생들을 용케 찾아내어 마구 때렸다.그래서 학생들은 선생님을 사냥개라고 불렀다. 어느 날 지리시간에 사냥개선생님은 토정비결같은 얘길 했다
“앞으로 아산만 시대가 열리는 날 대한민국은 아세아의 주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아산만을 가로막아 호수를 만들면 공업용수 농업용수가 무진장으로 흘러넘쳐 아산만 일대는 곡창지대와 공장지대가 됩니다. 수심이 깊은 아산만에 항구를 만들면 중국무역의 전진기지가 되어 대한민국은 엄청난 부국을 이룰 것입니다.”
그게 1958년쯤이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아산만 개발프로젝트를 강의한 것이다. 요즘 경제부총리가 하는 이야기를 50년 전 시골 역사 선생님이 했으니 누가 믿겠는가? 학생들은 콧방귀를 꿔댔다.
‘흥, 사냥개선생님이 개 짖는 소리를 하시네.’
사냥개선생님은 야금야금 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허허벌판 민둥산이라 헐값이었다. 안중중학교교장을 지내고 은퇴했을 때는 수만평이 넘는 산주인이 됐다. 그곳에 사과나무를 심었다.성공한 자녀들이 서울로 모시려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머지않아 아산만 일대가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가 될 텐데 뭣 하러 서울로 가느냐? 난 과수원을 만들어 사과나무를 심으면서 아산만 시대를 기다릴 테다.”
사냥개선생님의 예언은 적중했다. 아산만방조제 삽교천 방조제가 생겨나자 야산은 금싸라기 아파트단지로 바뀌었다.가만히 앉아서 거부가 된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 대한뉴스 캡처>
아산만이 흐르는 평택안중은 옛날부터 예언된 땅이었다. 550년전 아산현감 토정 이지함은 일찍이 평택을 약속의 땅으로 내다봤다.토정은 화담서경덕,병해대사갓바치,황진이와 더불어 풍류를 즐긴 당대의 기인이었다.친구들과 헤어지면 토정은 퇴미산에 올라 천문을 살폈다. 산을 내려와서는 계두봉에 앉아 흘러가는 아산만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겼다. 그때 아산만 물줄기에 비친 토정의 예언.
“평택을 중심으로 사방 40리에 동서남북으로 4개의 도시가 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들 도시이름에는 모두 편안 안(安) 자가 들어있소이다. 동쪽40리에 안성(安城), 서쪽40리에 안중(安仲),남쪽40리에 천안(天安), 북쪽40리에 발안(發安)이지요.편안 안(安) 자가 들어가 있는 이들4개 도시 안에는 이름대로 환난 날에도 안전할 것이고 장차 민족중흥의 중심지역이 될 것입니다.”
토정의 예언대로였다. 임진왜란 7년에도 왜군들은 이곳을 피해갔다. 동족상잔이 극심했던 6.25때도 전국에서 보복살육이 가장 적은 곳이 이곳이었다.
예언의 땅, 이곳에 박정희대통령이 아산만시대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아산만 방조제에 이어 삽교천 방조제를 준공한 것이다.준공식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대통령은 기분이 좋았다. 하늘은 푸르고 단풍은 붉다. 들판을 덮고 있는 벼이삭들은 황금물결을 흔들면서 풍년가를 부르고 있다. 차는 안중을 지나 평택쪽으로 달리고 있었다.벼 타작을 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이 차창을 스치며 지나갔다. 대통령은 경호실장을 쳐다봤다.
“농가에 들려 농부들과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싶구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