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자, 동지(同志)여!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뉴스로=클레어 함 칼럼니스트
드디어, 베를린영화제에서 일정을 마치고, 뮌헨으로 기차타고 돌아가는 길이다. 아마도 새벽 1시쯤에 도착할 듯하다.
열흘동안 개최되는 영화제에서 마켓은 사실 첫 5-6일정도 지나면 거의 파장(波長) 분위기이다. 중요한 세미나와 리셉션은 다 마무리되고, 해외의 영화인들은 다 본국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주요 국제영화제와 마켓은 거의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고도 말할 수 있다.
박찬욱감독과는 선댄스영화제에서 공식통역으로 인연을 맺었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저녁식사용으로 포장주문 해온 케밥을 따끈따끈할 때 먹으면 좋겠지만, 그동안 밀렸던 졸음이 쏟아져온지라 급한대로 먼저 눈을 감았다. 세시간을 내리자다가 배고파서 눈떠보니 기차가 벌써 여정의 반을 훌쩍 달려왔다.
안타깝게도, 영화제의 마지막날 밤 독일 '독립영화인 파티'에서 핸드폰을 도난당하는 바람에, 그간 못 봤던 좋은 영화 한두편이라도 관람하고 싶었던 내 소망을 접고, 혹시나하는 마음에 애플샵과 경찰서로 분주히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가길의 나의 마음은 왠지 모를 평온함 그 자체다. 아마, 나의 주요 목표였던 다큐멘터리 홍보가 잘 되어서 생긴 다소의 안도감(安堵感)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영화제 초청(경쟁부문)도 있고, 월드 세일즈를 하는 배급사로부터 배급 제의도 받아서 앞으로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막연한 느낌마저 든다.
왕가위 감독과 함께
십년 넘게 찾은 베를린영화제는 혹한의 시베리아 바람이 얼굴을 매섭게 때리는 2월에 열리기 때문에 첫 주말이 지나면 영화인들 대부분 감기로 몸살을 앓는다. 아마도 1월의 선댄스, 5월의 깐느, 9월의 베니스와 토론토영화제의 시기를 고려한 결과로 어쩔수 없이 2월에 개최하는 것 같다.
해마다, 다들 너무 춥다며, 다신 안온다고 투덜대지만, 해가 바뀌고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에, 또한, 반가운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무한한 기쁨도 동시에 주곤 한다.
이런 규모의 국제영화제기간에는 각국의 영화진흥위원회나 영화 세일즈 회사들은 영화 홍보와 영화인들 네트워킹을 위해 매일 밤 크고 작은 규모의 칵테일 리셉션과 파티를 연다. 사실, 유명인이나 바이어가 아닌 이상, 이런 파티에 초대장을 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일이다.
며칠전, 베를린영화제에서 제일 인기 많은 덴마크 세일즈 회사, Trust 파티에 운좋게 들어갔는데, 오랜만에 만난 스페인 친구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큰 포옹을 한다. "와, 너 아직도 영화계에 몸담고 있네. 나처럼 직장인도 아닌데, 넌 완전 능력자(f-ing good)임에 틀림없어."라며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친절한 마음씨를 지닌 그가 농담조로 칭찬을 했지만, 나는 그의 진심을 알기에 나름 큰 감동을 받았다. 따뜻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아프게 하는 칭찬. 이 영화 바닥에서 살아남는 건 정말 쉽지 않다. 미국 영화신문사, 영화제, 통역, 영화홍보 등등 수많은 저임금 비정규직을 맡으면서 까다롭고 변덕스런 이들과 부대끼며 지낸 세월들. 유난히 힘들었던 서울의 한 영화제를 비롯하여 수많은 기억들이 한순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술자리 성희롱은 다반수고, 매번 차비만 겨우 남기고 귀가하는 생활이 지겨워서 한동안 손을 뗐는데, 어찌하다보니 세월호참사의 아픔이 다시 나를 이 도박장(賭博場)으로 돌아오게 했다.
'앞으로 나는 이 도박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매일밤 끊임없이 하게 된다. 물론, 인생 자체가 도박이다. 그 누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영화와 관련된 일들은 유난히 재정적인 위험부담이 크다. 또한, 다른 업종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부르짖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하루 12시간을 훌쩍 넘기는 과로(過勞)를 일상으로 삼으면서도 끝없는 경쟁에 시달린다. 영화인들의 비참한 노동현실은 '누가 잠이 필요한가? Who Needs Sleep?'라는 다큐멘터리에도 잘 설명되어 있다. 화려해 보이는 할리우드에서조차도, 과로로 인한 스태프들의 교통사고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감히 장담하건대, 레드카펫에서 멋진 의상과 포즈를 취하며 보여지는 영화인들의 글래머는 1%에 불과하다. 우리의 99%는 피곤에 찌든 육체와 잦은 좌절감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에 무관하게, 나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한번 맡은 일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를 해냈다는 것이 나의 유일한 긍지다.
또한, 영화의 힘을 믿고 열정 하나로 힘든 고비들을 넘기며 노력하는 수많은 독립 영화인들의 고충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마음속으로나마 큰 박수를 보낸다. 힘내자, 동지(同志)여!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La vie en rose'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의 Marion Cotillard.
다른 영화제에서 만났던 무명의 여배우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스타덤에 올맀다
데이빗 린치 감독과 함께
글‧사진|클레어 함 다큐멘터리 <정지된 시간> 프로듀서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열린 기자’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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