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동 최후의 만찬
뉴스로=이계선 작가
“자 이제부터 대행사를 시작하는 거야. 우선 시버스 리걸로 목을 축인후 심수봉이 부르는 ‘그때 그 사람’을 듣자구. 누가 부라보를 선창할까? 그렇지, 목청 크고 씩씩한 호위무사, 임자가 해봐”
대통령은 경호실장을 호위무사라고 불렀다. 정보부장을 포도대장으로 비서실장을 도승지로 불렀다. 하긴 한국의 유신대통령은 임금님 저리가라였으니까.
차지철이 목청을 가다듬자 대통령이 먼저 잔을 높이 들었다. 여섯개의 술잔이 쨍그렁 소리를 내면서 부디쳤다. 참석자는 여섯이었다. 대통령박정희 정보부장김재규 비서실장김계원 경호실장차지철 그리고 가수 심수봉 여대생 신재순.
테이블은 직사각형이었다. 예수가 중앙에 앉은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배열처럼 좌석을 배열했다. 북쪽 중앙에 대통령이 좌정했다. 대통령 왼쪽엔 심수봉이 오른쪽엔 신재순이 바싹 붙어 앉았다. 대통령 맞은편에는 정보부장이, 테이블 양쪽 끝에는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이 자리했다.
“박정희대통령각하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10월유신의 영원무궁을 위하여! 다 같이 건배! 건배! 건배!”
차지철의 선창으로 건배삼창이 끝나자 심수봉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대행사건 소행사건 여자들은 하룻밤만 대통령을 뫼시게 했다. 대통령과 잠자리를 한번 한 여인은 두 번 다시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심수봉은 예외였다. 오늘이 세 번째다. 특별히 성은을 입은 모양이다. 심수봉은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한 히트곡 “그때 그 사람”을 불렀다.
심수봉 <사진 1집앨범 >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그 어느날 차안에서 내게 물었지/ 세상에서 제일 슬픈게 뭐냐고
사랑보다 더 슬픈건 정이라며/ 고개를 떨구던 그때 그 사람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고/ 위로하며 다정했던 사랑한 사람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어쩌다 한번쯤은 생각해줄까/ 지금도 보고싶은 그때 그 사람
외로운 내 가슴에 살며시 다가와서/ 언제라도 감싸주던 다정했던 사람
그러니까 미워하면 안되겠지/ 다시는 생각해서도 안되겠지
철없이 사랑인줄 알았었네/ 이제는 잊어야할 그때 그 사람
이제는 잊어야할 그때 그 사람....“
“짝짝짝, 심수봉양의 ‘그때 그 사람은 누구야?”
취기가 오른 대통령은 무심코 농담을 던졌다. 심수봉에게 반해버린 표정이다.
“?....”
심수봉은 말없이 대통령을 바라봤다. 바로 당신이라는 표정으로. 그리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이번에는 각하께서 노래하실 차례 이옵니다”
대통령은 노래를 좋아했다. 피아노를 치는가하면 시를 쓰고 작곡도 했다. “새마을” 노래는 대통령이 친히 작사 작곡한 작품이다. 대통령은 마이크를 잡고 “황성옛터”를 불렀다. 인생의 허무와 권력의 무상을 노래한 황성옛터. 아내를 잃어버리고 독재의 덧에 걸려 허둥대고 있는 대통령이 그 황성옛터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애절한 허무가 너무나 절절히 묻어나 보였다. 황성옛터는 가사와 멜로디가 바로 박정 희의 이야기 같다. 그의 출생 성장 처세 성공이 그랬다.
박정희는 1917년 음력 9월 30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금오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몰락한 양반집이었다. 아버지 박성빈(46세) 어머니 백남의(45세). 위로 박무희(19세), 박귀희(15세), 박상희(11세), 박한생(7세), 박재희(5세)가 있었다. 그가 태어날 무렵 그의 두 형 박동희와 박무희는 결혼하여 자녀까지 낳았다. 은씨 집안으로 시집간 큰누이 박귀희는 임신중이었다. 아무리 다남다복(多男多福)이라지만 원체 가난한집이라 그만 낳아도 될만했다. 누나 재희가 밝힌 박정희의 출생비화.
“며느리들 까지 보신 어머님이 동생(박정희)을 임신했을 때는 시집간 귀희(貴熙) 언니도 임신중에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딸과 함께 아기를 밴 것을 퍽 부끄럽게 생각하셨지요. 집안이 원체 가난하여 식구가 하나 더 느는 것도 큰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지우려고 무척 애를 썼어요.
시골사람들이 흔히 쓰는 방식대로 간장을 한 사발이나 마시고 앓아눕고, 밀기울을 끊여서 마셨다가 까무라치기도 했답니다. 섬돌에서 뛰어내려 보기도 하고, 장작더미 위에서 곤두박질 쳐보기도 했더랍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수양버들 강아지의 뿌리를 달여 마셨는데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대요. 병들어 누워버렸지요.
대여섯 날 만에 건강을 되찾았는데 배속의 아기가 놀지 않더랍니다. 이제 됐구나 하곤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또 놀더래요. 그 뒤 어머니는 일부러 디딜방아의 머리를 배에다 대고 뒤로 자빠져버렸어요. 낙태를 시키려고 스스로 방아에 깔려버린 것이지요. 그때 나는 다섯 살이었는데 그 광경을 보고 어머니가 죽는다고 울고불고 했지요.
어머니는 허리를 못 쓸 정도로 다치셨는데 뱃속 아기는 여전히 놀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 아기가 태어나면 이불에 돌돌싸서 아궁이에 던져 버릴려고 작심하고 아기 지우는 일을 포기했답니다.
동생이 태어나던 날도 저는 혼자 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한참 만에 방문을 열어보니까 어머니가 이불을 덮어쓴 채 끙끙 앓고 계셨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또 아기 지우는 약을 먹고 그러시는 줄 알고 겁나서 아버지를 찾으려 논으로 뛰었습니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꽃신을 신고 달려가다가 돌밭에 넘어져 생채기가 났습니다. 피가 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숨이 차서 헐떡거렸습니다. 나락을 베고 계시던 아버지가 보시고 얼른 논에서 나오셨어요. 대님을 풀어서 저의 상처를 동여맨 뒤 나를 업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그사이에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혼자 아기를 씻어 옆에 뉘여놓고 당신도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아기가 새빨갛고 꼬물꼬물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는 젖꼭지가 말라붙어 동생은 모유 맛을 모르고 자라났습니다. 밥물에 곶감을 넣어 끓인 멀건 죽 같은 것을 숟가락으로 떠 먹였습니다."
박정희의 형제들은 하나같이 키가 큰데 유독 그만 작다. 태아를 지워 버리려는 어머니의 학대(?)를 받고 뱃속에서 하도 고생을 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 대신 박정희는 초인적인 신념과 독한성격을 갖고 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말할수 없는 시련을 견뎌내면서 자궁탈출을 하다 보니 정금처럼 단단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것 같다. 400년 노예생활을 이겨내고 출애급한 이스라엘의 강인한 민족성처럼 말이다.
소년박정희는 20리를 걸어서 다닌 초등학교에서 항상 일등이었다. 수재들이 다닌다는 대구사범을 나와 초등학교교사가 됐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안정된 직장을 얻은 셈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교사직을 팽개쳐 버리고 만주로 떠난다. 장부의 뜻을 펼쳐보려고 만주에 있는 일본 육군삭관학교에 들어 간 것이다.
젊은 시절의 박정희 행각을 친일파나 빨갱이로 모는 건 마녀사냥이다. 그가 일본 육사를 졸업학고 일본군 소위가 됐다고 친일파로 매도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건 친일파가 아니다. 친일파란 엄연히 대한민국정부 아래에서 살면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매국노들을 말한다. 구 한말 한일합방에 앞장섰던 이완용처럼 말이다.
일제시절에 학교에 다니고 군대에 나가고 일본유학을 하고 판검사가 되는 건 친일파가 아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민족이 사는 나라이름은 일본이었다. 일본 국민이 되어 일본 법령을 따르는 건 어쩔수 없는 일이다. 꿈이 있는 젊은이들의 야심일 뿐이다. 그래서 일제시절 독립운동가들과 민족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일식교육을 받았고 일본유학을 했다.
해방이후 박정희의 남로당경력도 그렇다. 당시 사회주의사상은 지성의 매력이었다. 서울대학은 70%가 좌익이었다. 선전대로만 된다면 공산주의야 말로 지상천국이기 때문이다. 빈부귀천 없는 평등사회가 얼마나 좋은가? 의사와 지게꾼이 벌어드린 돈을 한데모아 똑같이 나눠먹는 사회가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공산공배(共産共配) 공산주의(共産主義)다.
한국인은 뒤늦게 6.25를 통하여 공산주의가 독재주의인걸 알았다. 일반적으로 강자나, 있는자, 배운자가 독재자가 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천민계급이 독재한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인간은 개성이 있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성공할수 없다. 칼막스의 후예들은 지구의 3/5을 빨갛게 물들여 가면서 70년 동안 공산주의를 실험해봤다. 결과는 하나같이 독재 빈민국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군대내의 남로당 간부로 암약하던 박정희소령은 여순 반란 사건 때 발각되어 죽게 된다. 그때 동료공산주의자들을 밀고하고 살아남는다. 그걸 배신이나 기회주의자로 매도할 것 까지는 없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