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복권소설’ 연재
뉴스로=이계선작가
한편 김재규의 총소리가 울려 퍼지자 요리실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흥주, 유성옥, 이기주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세 사람은 M16소총을 빼들고 요리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총소리가 김재규의 신호탄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탕탕탕탕”
세 개의 M16소총이 불을 뿜었다. 요리실에서 놀고 있던 경호원들은 총 한번 쏴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였기 때문이다. 명사수들로 구성된 청와대 경호팀들도 별수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모두 살해당한 것이다.
같은 시각 김재규의 총소리를 들은 박선호도 권총을 꺼내들었다. 함께 있던 청와대 경호실 소속 정인형대령과 안재송에게 권총을 겨눴다. 정인형은 청와대 경호처장, 안재송은 올림픽 사격선수. 두 사람 모두 청와대 제일의 총잡이들이었다.
"꼼짝 마, 너희들 두 손 들어!“
깜짝 놀란 정인형이 두손을 들은 채 물었다.
“선호, 너!”.
정인형과 박선호는 해병대 동기이자 친구사이다. 박선호는 정인형에게 애원조로 협박했다.
"야 인형아, 우리 같이 살자. 다 끝났어, 임마 총 버려“
그때 안재송이 박선호를 쏘려고 번개처럼 총을 꺼냈다. 안재송은 올림픽에도 출전한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 백발백중 명사수다.
“탕”
그런데 쓰러진 건 안재송 이었다. 사격선수들은 정조준중심으로 사격연습을 한다. 총을 빼어들어 방아쇠를 당기는 격발이 습관적으로 늦게 마련이다. 박선호의 격발이 빨랐던 것이다.
그 순간 정인형이 권총을 빼들면서 방아쇠에 검지를 넣었다. 안재송을 쓰러뜨린 박선호가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너무 급하다 보니 몸의 균형이 아찔하면서 뒤로 넘어졌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박선호가 넘어졌다면 상황은 반전됐을 것이다. 김재규는 권총이 고장나있었다. 정인형은 김재규를 쏴 죽이고 단숨에 연회장을 장악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대통령을 살려냈을 것이다. 왼손 총상을 당한 차지철도 멀쩡했을 것이고. 박선호가 뒤로 넘어지느냐 마느냐에 김재규 박정희 차지철 정인형 그리고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해병대령 정인형은 대장이 되어 중앙정부장 자리를 꿰차게 될것이다.
과연 박선호는 넘어졌다. 넘어지는 박선호는 당황했다. 넘어지면서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아아! 총알은 허공으로 날라 가 버리겠지? 방아쇠를 당기면서도 낙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허공으로 날라가 버릴 줄 알았던 총알이 정인형을 명중시켜버린 것이다. 역사는 아슬아슬하다. 그리고 삐끗 삐긋 한다.
MBC 자료 화면
“다 죽였으니 그 총 내게 줘”
이때 달려 나온 김재규가 박선호로부터 권총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연회장으로 몸을 돌렸다. 연회장으로 뛰어 들어가던 김재규는 차지철과 맞닥뜨렸다. 차지철은 병력을 부르려 달려 나가던 참이었다.
“김부장 김부장...”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차지철은 갑자기 의자를 집어들어 김재규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나 김재규의 총알이 더 빨랐다.
“탕”
차지철은 쓰러졌다. 차지철을 해치운 김재규는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대통령은 아직도 숨이 붙어있었다.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대통령의 숨통이 끊어지는 확인사살이기도 했다. 끝까지 남아서 대통령의 지혈을 돕던 심수봉과 신재순도 어쩔수 없었다. 혼비백산한 두여인은 놀란 가슴을 부둥켜 앉고 안가 부속실로 도망쳤다.
상황은 그렇게 끝났다. 불과 10분 만에 종료된 것이다. 유신 7년이 10분으로 끝나버렸다. 아니 박정희의 18년 독재를 10분 만에 정리해버린 것이다. 그때 박정희의 나이는 61세 김재규는 53세였다. 김재규는 박선호를 불렀다.
“1단계는 성공했다. 차지철이 각하를 살해한 걸로 한다. 시국관차이로 격론을 벌리다가 각하께서 차지철의 무력진압을 반대하자 차지철이 흥분하여 각하를 저격한 것으로 말이다. 차지철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호실대원들이 죽은 걸로 하면 된다. 이제 2단계로 들어간다. 난 2단계를 실행하러 정승화총장을 만나러간다. 증거인멸을 하도록 하라”
“예, 부장님”
박선호는 김태원과 유석술을 불러 각각 임무를 지시했다. 김태원은 일일이 시신들을 확인 사살했다. 그 바람에 아직 숨이 붙어있던 차지철이 절명한다. 박상범이란 청와대경호원이 넘어져 있기에 확인사살하려고 보니 이미 죽어있었다. 생명이 붙어있으면 아파하던가 신음하던가 한다. 하지만 죽은자는 잠자는듯 조용하다. 박상범은 숨이 끊어져 꼼짝하지 않아 죽음이 확인된 상태였다. 확인 사살할 필요가 없었다.
그대로 내버려뒀다. 그런데 박상범은 죽은게 아니라 기절해 있었던 것이다. 엉덩이에 관통상을 입고 정신을 잃고 있는게 꼭 죽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는 확인사살을 받지 않아 극적으로 살아날수 있었다. 박상범의 행운은 궁정동에서 뿐이 아니었다. 후일 전두환 대통령을 경호하여 미얀마에 갔을 때도 그랬다. 많은 수행원들과 장관들이 북괴의 아웅산폭파로 죽었는데 그는 거기서도 살아남았다. 두 번이나 용케 살아난 박상범은 승승장구했다. 김영삼대통령시절에는 청와대경호실장을 지냈고 후에 보훈처장까지 했다.
유석술은 시신들을 구석에 몰아 덮어두고 무기를 치워버렸다. 운명이란 묘한 것이다. 후일 군사 재판에서 확인사살을 맡은 김태원은 살인죄로 몰려 사형 당한다. 그러나 시신치우는 일을 맡았던 유석술은 시체유기죄로 3년을 살고 나온다. 유석술은 지금도 버젓이 살아있다.
김재규는 복도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김계원을 찾았다. 지옥에서 올라온 염라대왕과 맞딱드린 듯 김계원은 벌벌 떨고 있었다.
“형님, 나는 한다면 합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형님께서는 시신들을 처리하고 천천히 보안유지를 해 주십시오”
“각하께서 간걸 뭐라고 하지?”
“각하께서 졸도했다고 하던지, 아닙니다. 차지철에게 살해당했다고 적당히 하십시오. 난 정승화총장에게 가보겠습니다”
김계원은 김재규가 완벽하게 거사를 성공한 걸로 생각했다.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짜고 일으킨 유혈혁명이었구나. 그래서 후속조치를 의논하러 가동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승화를 만나러 가는구나.)
“알았어”
김재규는 안가 가동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평소 생각해둔 2단계 구상을 재빨리 점검했다.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데리고 남산 중앙정보부로 간다. 박선호대령 박흥주대령
이 중정요원들을 무장시켜 모이게 한다. 중정요원들이 총을 뽑아든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강압적으로 정승화총장이 군부 수뇌부와 국무위원들에게 연락하게 한다.
‘국무위원들은 지금 빨리 남산중정본부로 모이시오. 국가에 유고가 생겼소이다’
최규하총리 신현확부총리 노재현국방부장관이하 국무위원들이 모이면 나 김재규는 무장한 중정요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난다. 권총을 빼들고 협박조로 궁정동의 총소리를 설명한다.
‘국무위원들은 내말을 들으시오. 크메르루즈처럼 탱크와 군대로 민주세력들을 깡그리 죽여 버리자는 차지철의 강경책을 각하가 거절하자 흥분한 차지철이 각하를 저격했소. 그때 내가 차지철을 처치했소. 각하는 죽어가면서 나에게 정권을 맡아 유신헌법을 철폐시키고 민주헌법을 회복시켜달라고 부탁했소. 난 각하의 유지를 받들 것이오. 리비아의 카다피는 27살 대위의 몸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42년을 통치했소. 김일성은 30대 초반의 나이로 박헌영을 비롯한 선배엘리트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고 북한을 세웠소. 박정희대통령도 육군소장의 몸으로 40대에 5.16을 일으켜 18년간 통치했소. 지위고하 나이를 불문하고 군대와 권력만 있으면 손바닥 뒤집듯 언제나 정권창출이 가능한 게 우리나라요. 내 나이 53세, 육군중장으로 군생할을 했소. 건설부장관으로 중동 건설붐을 주도했소. 중앙정보부장으로 정치와 안보를 다룰 줄 아오. 피의 현장에서 있었기에 내가 부득불 정권수습을 하려는 겁니다. 난 유신헌법을 민주헌법으로 바꿔놓고 민선대통령을 뽑아놓은 후 권력에서 물러나겠소. 이제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시오. 모든 권력은 중정에서 내가 직접관리 하겠소. 18년전 박정희소장이 그랬던 것처럼...’
비상시에는 총구에서 권력이 나온다. 한강을 건너오던 혁명군이 방어하는 헌병대를 쏴 죽이고 승리하는 바람에 5.16이 성공했다. 군사혁명은 무자비하고 용감해야한다. 죽은 자는 끝난 것이고 죽인 자는 모든 걸 얻는 것이다. 나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 국무위원들을 중정에 불러 가둬놓고 협박한다. 그러면 상황 끝이다. 박정희도 그런 식으로 정권을 잡지 않았나? 나라고 못할게 뭐가 있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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