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자존감을 지켜야 할 이유
뉴스로=김중산 칼럼니스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19일 KBS대선후보 경선토론회에서 한 “전두환 장군에게 표창을 받았다”는 발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 측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일제히 “전두환 표창이 그렇게 자랑스럽냐”며 문 전 대표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문 전 대표가 당시 전두환 제1공수여단장에게 최우수 표창을 받은 것은 1975년 12월이다. 지옥과도 같은 특수전 훈련 과정을 남달리 뛰어난 성적으로 마치고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면 표창장을 수여한 부대장이 누구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문 전 대표는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1978년 전역(轉役)했다. 그런데 그가 광주민중항쟁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장군에게 표창 받은 것을 두고 광주와 호남에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후보 경선을 앞두고 호남민심을 선동해 이용하려는 반대 세력의 치졸한 정치공세임이 분명하다.
색깔론에 시달리는 문 전 대표가 자신의 투철한 안보관을 강조하기 위해 표창 사실을 밝힌 것이 과연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할 일인가. 안희정 충남지사는 “(문 후보의 발언은)애국심에 기초한 말씀이었을 것”이라면서도 “그런 말씀에 대해 황당해하거나 적절치 않았다고 생각하는 당원도 있는 게 사실 아니냐”고 에둘러 비판했다. 나라를 망쳐놓은 이명박근혜의 ‘선의’조차 액면대로 포용할 만큼 오지랖이 넓은 안 지사가 문 전 대표 발언의 진의 또한 선의로 받아들일 순 없을까.
더불어 민주당 경선 TV토론회 <사진=문재인캠프 홈페이지>
전두환 표창장 논란이 오는 27일 열릴 민주당 호남 경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하지만 나는 현명한 호남인들이 문재인을 선택할 것으로 믿는다.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軌跡)이 말해 주듯 인품과 도덕성 그리고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소양과 인식 등 어느 것 하나 대통령감으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정권교체의 희망이자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다.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개선해 한반도 평화와 공존공영을 견인할 지도자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종북 빨갱이 소릴 들으면서도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그의 소신 발언에 전율을 느낀다.
문 전 대표는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이제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도 협상하고 ‘노(no)’를 할 줄 아는 외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사드 배치와 관련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차기 정권으로 미뤄야 한다”고도 했다. 사드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배치하는 것으로 우리의 국가 안보는 물론 경제 안보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남한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 방어를 못하는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클뿐더러 중국이 15일부터 한국관광을 전면 중단하는 등 경제보복을 날로 강화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사드는 북한 핵 미사일 방어용으로 중국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할 뿐 속수무책이다. 그러면서도 사드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바른정당 대선후보인 유승민 의원은 대선 전 사드 배치를 끝내야 한다고 한술 더 뜬다. 참으로 한심한 정치인이다.
유 의원은 문 전 대표가 “김정은(노동당 위원장)을 대화상대로 인정한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북한의 핵 미사일 협박에 인질이 돼 북한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엄연한 주권국가이고 김 위원장은 나이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그 나라의 최고지도자인데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걸까. 군사주권(전시작전권)도 스스로 포기하고 미군 바지가랭이만 붙들고 늘어지면 되는 줄 아는가. 유 의원이 민족 주체성과 주권의식이 눈꼽만큼이라도 있다면 감히 그렇게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은 “북한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교를 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좋든 싫든, 핵무기 국가로서 우리는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게 북한을 다루는 유일한 수단이 외교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핵전쟁을 불사할 것이 아니라면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대화뿐임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며칠 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을 갖고 놀았다”면서 북한과 더는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북한에 대해 군사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아무려나 북한같이 조그만 나라가 감히 초강대국인 미국을 갖고 놀았다고 대통령 스스로 말할 정도이니 새삼 북한이 참으로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대국인 수(隋)와 당(唐)나라에 결연히 맞서 싸워 조국을 지켜낸 자랑스런 고구려(高句麗)인들의 기상을 이어받아서일까, 지난 70여년 간 초강대국인 미국의 무차별적 압박과 제재에도 주눅 들지 않고 ‘맞짱’을 뜨는 모습 앞에 사대사상에 찌든 남한 위정자들의 비굴한 몰골이 어른거린다. 약소국가의 지도자일수록 민족 자존감을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북한은 밉지만 ‘우리가 존경할 만한 적(our respectful foe)’이고, 남한은 곱지만 ‘우리가 경멸하는 동맹(our despicable ally)’이다”라고 한 미 국무부 관리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드 배치에서 보듯 남한 위정자들이 국익을 훼손(毁損)해가면서까지 미국이 하자는 대로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굽실거릴수록 속으로 업신여김 당한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미국에 ‘노(no)’ 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김중산의 LA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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