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 대국민담화문 발표
뉴스로=이계선 작가
쿠데타는 치밀한 준비와 방대한 우군들이 있어야 성공한다. 5.16쿠데타는 박정희를 정점으로 육사 8기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것 갖고도 안심이 안돼 해병대세력까지 합세했다. 후에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 쿠데타는 육사 11기 중심의 하나회가 동원됐다. 기획 조직 동원이 치밀하고 막강했다. 그런데 10.26 거사는 김재규의 필마단기였던 것이다. 장창을 빼어들고 필마단기로 풍차를 향하여 돌진했던 동키호테의 만용이었다. 그 숫자를 갖고 박정희와 차지철을 해치운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대 성공이었다.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궁정동 안가는 정인형경호처장이 이끄는 정예사수들이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풀무에서 뽑아낸 시뻘건 쇠덩어리는 만지기만 하면 타죽는다. 4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린다. 애들이 만져도 상하지 않는다. 육본에서 4시간이 지나갔다. 김재규의 독기도 정승화의 서슬퍼런 위세도 많이 식어버렸다. 정승화와 김계원은 더 이상 김재규편에 서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당히 조절하자. 김계원은 김재규곁으로 가서 슬쩍 농담을 걸어봤다.
“이 사람아 어떻게 하려고 각하까지 그렇게 했어?”
“형님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시오. 사태수습이 더 급선무입니다. 계엄령을 선포하여 보안유지를 해야 됩니다. 최단 시일 내에 계엄사령부 간판을 내리고 혁명위원회로 간판을 바꾸어 달아야 합니다”
“알겠네”
김재규는 힘이 빠져있었다. 초조했다. 시간은 밤 열두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결판을 내야한다. 김재규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계엄령선포 주장을 다시 꺼냈다. 김재규의 말은 청산유수처럼 막힘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장내는 침묵하고 유구무언이었다. 그런데 침묵을 깨는 쇠소리가 튀어나왔다. 평소 깐깐하고 배짱 있기로 소문난 신현확의 목소리였다.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신현확은 화를 내면서 따졌다.
"대통령이 어디 계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계엄령을 선포합니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대통령각하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신현확의 큰소리에 힘을 얻었는지 김계원이 나섰다.
"각하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뭐라구요?”
“아아 아”
“어어 허”
김계원의 한 마디에 장내는 갑자기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국무위원들과 장군들은 정신을 잃고 허깨비처럼 흐느적거렸다. 멘붕이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신현확이 김계원에게 따지듯 물었다.
"각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국군통합병원에 계십니다..."
김계원이 말하자 모두가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우리 모두 목동 통합병원으로 가서 확인 합시다”
“우선 각하의 시신 앞에 분향하는 게 순서이지요”
장내가 웅성거리고 어수선해졌다.
이때 김계원이 슬그머니 정승화와 신현확옆으로 다가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김재규가 각하를 시해했습니다. 김재규가 범인입니다."
신현확은 역정을 냈다.
“왜 진작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소?”
"박흥주가 총을 숨기고 시퍼런 눈으로 나를 감시하는데 어떻게 말을 합니까?"
김계원이 변명하자 정승화가 나섰다.
“그만들 둬요. 내가 김재규를 체포하겠소”
밀담을 나눈 그들은 최규하에게 은밀하게 사실을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최규하총리가 나섰다. 사실을 모르는 척한 표정으로 심야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이제 김재규정보부장의 의견대로 계엄령을 선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서거사실을 알리고 27일 4시에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대국민담화문을 내가 발표하겠습니다”
그러자 김재규가 이유를 달았다.
“계엄령사유를 대통령서거로 하지 말고 유고로 해야 합니다. 쏘련 공산당서기 브레즈네프가 죽었을 때도 유고로 발표했다가 일주일후에야 사망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도 3일간은 유고로 발표하여 국민들의 동요를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력을 회복한 국무위원들과 장성들의 세에 눌려 김재규의 주장은 밀려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최규하는 대통령대행으로 추대 되고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이 된다. 최규하는 27일 새벽 4시에 대 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1980년 9월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장'의 최규하 <유투브 캡처>
"국민여러분! 우리는 오늘 민족중흥의 위대한지도자인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졸지에 서거하신 데 대해 그 충격과 애통함을 가눌 길 없습니다....군은 비상시국에 국가수호의 막중한 책임을 다해 북한 공산집단의 동향을 주시하며 철통같은 방위태세에 임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 48조 규정에 따라 본인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맹방인 미국 정부는 즉각 협조할 것을 명백히 했습니다... 모두 다 같이 굳게 뭉쳐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최규하가 계엄령선포를 위와 담화문을 준비하는 동안 김재규에게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승화가 은밀히 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 김재규체포를 명령했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그때 보안사령관 자격으로 육본 총장실 모임에 와 있었다. 정승화가 은밀하게 전두환에게 지시했다.
“김재규와 박흥주는 총을 갖고 있다. 들어나게 행동하면 옆에 있는 장관들과 장군들이 다칠 염려가 있다. 은밀하게 체포하라”
“예 알겠습니다. 총장각하”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