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납치 2주만에...
뉴스로=이계선 작가
오일랑은 곧바로 가지 않고 비밀통로로 모셨다. 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이르자 김재규는 예감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수행비서 박흥주대령을 찾았다.
“박대령 박대령”
김재규옆에는 박흥주가 없었다. 조약래가 박흥주를 따돌려 놓고 김재규를 빼내왔기 때문이다. 대신 오일랑이 대답했다.
“부장님 걱정 마세요. 박대령님은 곧 뒤따라오고 있습니다”
오일랑이 안심시켰다. 김재규는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으로 덜렁덜렁 따라갔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는 눈물을 흘린다. 말도 못하는 미물이지만 죽으러 가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재규는 죽으러 가는 줄도 모르고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어둡고 꼬불꼬불한 지하통로로 내려 가는게 이상했다.
“왜 이리 어두운 길로 가는 가?”
오일랑이 얼른 둘러댔다.
“이 길은 국무위원들이 다니는 비상통로입니다. 최규하 총리도 이 길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래”
김재규는 또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건 총장실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지하통로를 거쳐 밖으로 빠져나가는 비밀통로였다. 내용을 모르는 김재규는 아무 말 없이 걸어 나갔다.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레코드승용차가 대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뒷좌석에는 무장헌병이 타고 있었다. 김재규가 이상해하는 순가, 오일랑은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었다. 김재규를 뒷좌석 가운데로 강하게 밀어 집어넣고 얼른 그 오른쪽 옆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명령조로 압박했다.
“정보부장님, 이제 무장해제 하겠습니다”
“뭐, 무장해제?”
깜짝 놀란 김재규가 얼른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권총을 빼기 전에 오일랑이 재빠르게 김재규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늙은 퇴역중장이 젊은 현역중령을 당해 낼수 없었다. 오일랑은 김재규의 38구경 리벌버 권총을 낚아채어 차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밖에 있는 헌병이 손으로 받았다. 천하의 김재규도 속수무책이 됐다. 꼼짝없이 체포납치당한 것이다. 그때가 10월 27일 0시 40분. 박정희대통령이 시해당한지 4시간 후였다.
후암동 육본 뒷문을 빠져나간 차는 김재규를 싣고 시청방향으로 달렸다. 시청앞에서 덕수궁을 끼고 돌아가면 보안정동사분실이 있다. 삼각지 로타리를 지나가며 달렸다. 당시는 통행금지 제도가 있어 골목마다 검문소가 있었다. 검문소에서 김재규가 노출당하면 시끄러워진다. 김재규 체포를 눈치 챈 중정요원들이 뒤따라와 납치차를 공격하고 탈취 해 갈지도 모른다.
달리면서도 오일랑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김재규는 자기가 납치당한 걸 모르는 듯 했다. 차가 삼각지를 지나 남영동 쪽으로 때 김재규는 오일랑에게 말을 걸었다. 심심하다는 듯이.
“자네가 누구지? 어디로 가는거야?”
“육본헌병대장 오일랑 중령입니다.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으니 조용히 계십시오”
“거기가 어디야?”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김재규는 역정을 냈다.
“세상이 달라졌어. 이러지 말라구”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통령이 죽었단 말이야”
그때 김재규를 태운차가 미8군 수송대 앞에 이르렀다. 통행금지용 바리케이드 앞에서 경찰이 차를 세우고 검문에 나섰다.
“육본헌병대장인데 누구를 태우고 어디로 가는 중이다”
오일랑이 소리쳤다. 깜짝 놀란 경찰은 얼른 바리케이트를 치워줬다. 군사독재시절이라서 경찰은 헌병앞에 맥을 못 췄다. 고양이 앞에 쥐처럼 설설 길 때였다. 더구나 헌병중령은 경찰서장도 벌벌 떠는 치안실세다. 남영동에도 검문소가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통과하려는데 그만 김재규를 태운 차의 시동이 꺼져 버렸다.
오일랑은 긴장했다. 뒤 따라온 예비용 차량에게 재빨리 김재규를 옮겨 태워야 한다. 검문경찰이 체포된 김재규의 얼굴을 알아본다면 김재규 납치작전이 실패 할수도 있다.
1972년 김대중 동경납치가 그랬다. 호텔에서 김대중을 납치한 정보부는 김대중을 배에 싣고 현해탄을 건너고 있었다. 정보부 남산지하실로 끌고 와서 처치하던지 아니면 현해탄에 집어던져 수장할 셈이었다. 김대중은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칠성판에 꽁꽁 묶인 채 눈과 입에 강력테이프가 붙여져 있는 김대중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미군정찰기 한 대가 하늘을 날며 쫒아오기 시작했다. 미군정보부에 발각된 것이다. 김대중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노출된 김대중을 마음대로 죽일수 없었던 것이다. 정체불명의 세력에 납치당했다가 풀려난 걸로 한국정부는 처리했다. 훗날 김대중은 대통령이 된다.
납치당한 김형욱은 달랐다. 6년 동안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은 박정희의 충복이었다. 미국으로 망명하여 민주투사로 변신한다. 박정희의 치부를 폭로하는 책을 출판하고 미국의회에서 폭로증언을 한다. 산돼지처럼 날뛰던 김형욱은 억만금을 주겠다는 회유작전에 속아 덜렁덜렁 파리로 갔다가 실종된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한 것이다. 노출당하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중앙정보부에게 납치되어 짐짝처럼 비행기에 실려 청와대지하실로 끌려왔다. 박정희 김재규가 보는 앞에서 차지철이 권총 3발로 쏴 죽였다’
‘청와대 경호실이 보낸 요원들에게 납치당했다. 프랑스 파리근교 양계장에서 닭 사료분쇄기에 마취당한 채 처넣어져 가루가 되어 죽었다’
‘중앙정보부가 매수한 유럽인 살인청부업자가 납치했다. 죽여서 산속 가랑잎 속에 묻어버렸다’
‘프랑스로 보낸 중앙정보부요원에게 납치당하여 대한항공 화물칸에 실려 청와대로 끌려왔다. 청와대 지하실에서 대통령이 직접 총살했다. 정보부장 경호실장 비서실장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전임 정보부장의 최후에 충격을 받은 김재규 정보부장은 그때 어떤 결심을 했을 것이다. 나도 저렇게 되겠지?’
중정 부장시절의 김형욱 <사진=유투브 캡처>
김형욱의 최후를 본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입을 열지 않으니 설만 무성할 뿐이다. 분명한건 납치당해 죽었다는 사실이다. 김형욱 납치실종 사건이 터지고 꼭 14일 만에 이번에는 김재규가 납치당한 꼴이 됐다. 김형욱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전임자이다. 전임자와 후임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이좋게 나란히 납치당하여 죽는다. 이것이 독재국가 정보부장의 전형적인 말로일 것이다. ‘형님 먼저 아우먼저’는 라면 광고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김재규가 대통령을 죽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수습하는 과정에서 납치를 당한 것이다. 탈출하지 못하면 끝장이다. 그런데 김재규를 태운 차가 고장 났다. 김재규의 납치가 검문경찰에 알려진다면 큰일이다. 중정요원들이 라이온일병 구하기 작전으로 달려올 것이다. 차가 고장 난 남영동에서 중정본부는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일랑은 007작전의 주인공처럼 민첩하게 움직였다.
뒷문을 연후에 역시 뒷문을 연 보조차량을 재빨리 옆으로 밀착시켰다. 경찰이 김재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두명의 헌병이 김재규의 얼굴을 가렸다. 오일랑이 강하게 엉덩이를 밀어넣자 김재규는 짐짝처럼 옆 차안으로 굴러들어갔다.
“휴우 됐구나”
신경을 쓰다 보니 길이 엇갈렸다. 전 국회의사당과 덕수궁 돌담을 끼고 들어가면 보안사정동분실이다. 그런데 중앙정보부 정동분실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보안사분실과 정보부분실은 담 하나를 끼고 있었다. 방위군복장을 한 정보부 경비병이 뛰어나오고 있었다.
김재규도 놀랐고 오일랑도 놀랐다. 김재규는 정보부 부하들이 자기를 구하러 달려 나오는 줄 알고 반가워서 놀랐다. 오일랑은 길을 잘못 들어 정보부요원들에게 납치차를 빼앗기게 되는 줄 알고 놀랐다.
“오, 우리 분실이구만”
김재규는 득의만만하게 중얼거렸다. 지체했다간 큰일이다 오일랑이 서둘렀다.
“김재규의 머리를 누르고 차를 빨리 유턴하라”
끽 소리를 내면서 차가 급정거했다. 헌병들이 잽싸게 김재규의 머리를 눌러버렸다. 물위에 떠있던 수박이 물속으로 가라앉듯 김재규의 머리는 자동차 바닥으로 주저앉혀 처박아버렸다. 김재규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달려 나오던 정보부경비병은 잘못 본 눈으로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사이 급정거한 차는 유턴하여 정신없이 달아났다. 아슬아슬 아찔한 순간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번에는 제대로 보안사정동분실이 보였다. 보안사대원들이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김재규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니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대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안처장 오일랑중령 김재규정부장을 모시고 왔습니다”
“가짜 헌병대장 노릇하느라 수고했네. 이제 자네 임무는 끝냈으니 돌아가 보안사령관님에게 보고하게”
보안사정동분실을 나온 오일랑은 보안사령부를 찾아가 전두환사령관에게 전말을 보고했다.
전두환이 지시했다.
“김재규가 잡혀오면서 한말을 자세히 기록해다오. 계엄령이 곧 발령될지 모르는데 계엄이 발령되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 공항에 대한 통제를 철저히 하여 대통령시해사건 연루자들이 국외로 탈출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비슷한 시각 육본에서는 김재규의 비서관 박흥주대령이 체포당하고 있었다. 김재규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승화의 명령을 받고 온 헌병대가 들이닥쳤다. 권총을 갖고 있었지만 이미 대세가 기울어져 있어서 대항해봐야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박흥주는 권총을 집어던지고 껄껄 웃었다.
“하하하하 대한민국의 해병대령 박흥주가 상관 김재규부장을 따라 의거를 일으켜 목적을 달성했으니 내 포박당해도 부끄럽지 않소이다. 자, 날 체포하고 상을 받으시오”
궁정동안가에 남아서 뒤처리를 하고 있던 중전의전과장 박선호대령도 마찬가지였다. 보안사병력이 안가를 겹겹이 포위했다. 확성기로 투항을 권고했다.
“박선호는 들어라. 너희들은 포위당했다. 총을 버리고 손을 들고 나와라”
박선호가 웃으면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내 김재규부장을 받들어 남아의 뜻을 한번 떨쳐봤다. 잡혀 죽은들 무엇이 아까우랴”
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대령은 부하들인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유석술과 함께 순순히 체포당했다. 김재규일당이 일망타진 당하고 만 것이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