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고문 악명
뉴스로=이계선작가
10월 27일 육본에서 새벽국무회의가 열렸다. 합동 수사본부장이 된 전두환보안사령관은 대통령의 시해사실을 이렇게 보고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대통령을 시해했습니다. 합수부는 김재규일당 7명을 전원 체포하였습니다.”
보안사정동분실은 잡혀온 김재규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보안사분실이 정보부정동분실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부가 보안사보다 상위기관이다. 정보부에서 쳐들어와 김재규를 구출해 가면 여간 문제가 아니다. 전두환이 지시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김재규부장을 빙고호텔로 모셔라”
빙고호텔은 용산에 있는 보안사서빙고분실의 은어다. 서빙고호텔로 부를 때도 있지만 서빙고의 첫 자를 떼어내어 빙고로 부를 때가 많다. 빙고는 실내에서 하는 도박성 오락경기다. 빙고는 심심풀이로 하는 건전한 오락게임이다. 서구에는 빙고가 많다. 미국에서는 교회와 성당에서도 빙고를 운영하기도 한다.
지금은 사라진 옛 서빙고 분실
보안사서빙고분실은 고문이 잔혹하기로 유명하다. 취조관은 싱글싱글 웃어가면서 고문한다. 피의자를 회전의자에 앉혀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귀빈처럼 정중하게 대우한다. 호텔에 초대받아온 기분이다. 그러다가 별안간 벼락치듯 달려들어 각목과 주먹으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구타한다. 그러면서 심문한다. 빙고판을 빙글 빙글 돌게 하다가 별안간 화살을 날려 행운을 맞추는 빙고게임 같다. 여기서 빙고란 말이 나왔다. 서빙고의 서자만 빼면 빙고가 되기도 하지만. 취조관들의 잔혹하기가 지옥의 염라대왕 같다.
지체 높은 분들만 잡혀오기에 호텔이라 불렀다. 김대중 김종필 정승화 이후락 김성곤등 빙고호텔을 다녀간 VIP고객(?)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 이근안 수준의 실력을 갖춘 고문기술자들이 수두룩하다. 한번 들어오면 취조관이 원 하는 대로 불어야 한다. 재산은 모두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도장을 찍어야 나간다. 김종필도 이후락도 많은 재산헌납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보안사정동분실로 납치당해온 김재규는 곧바로 서빙고분실로 향했다. 죄수를 싣는 미니군용버스에 실려 갔다. 묶인 몸으로 버스 안에 갇혀 있지만 김재규는 죄수나 체포된 기분이 안 들었다. 정보부 요원들이 구출하러 달려올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유신철폐를 주장하는 민주세력들이 자기를 구하러 국민항쟁을 일으켜 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버스는 잠수교를 왼쪽 옆으로 보면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죄수도 호송병도 아무도 말이 없었다. 덜커덩 거리는 차 소리만 들렸다. 그때 김재규가 심심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 세상이 바뀐걸 알아야 해. 내가 유신의 심장인 대통령을 쏘아 제거하고 유신독재를 철폐해 버렸어. 조금 있으면 내 부하들이 날 구하러 달려 올꺼야. 자네들도 자유민주화가 된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줄을 잘 서야 할껄!”
김재규의 엉뚱한 확신에 호송 군인들은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이때 언덕 아래로 내려가던 차가 갑자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이라서 가속이 붙은 것이었다. 당황한 운전수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그게 그만 엑셀레터를 밟아버렸다. 내려가면서 우회전 하는 커브 길이 나타났다. 우회전을 하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자 차는 왼쪽으로 튀어나가면서 한 바퀴를 크게 돌았다. 그리고는 쾅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유리가 깨지고 차는 반파됐다. 차에 탔던 사람들은 다행히 멀쩡했다. 워낙 건강한 군인들이기 때문이었다. 대체차량이 달려오고 김재규가 옮겨 타는 난리를 치러야 했다.
(김재규를 체포하여 보안사로 운송할 때는 시동이 꺼져 버리더니 이번에는 아예 군용버스가 전복되다니? 김재규를 처리하는 정국의 앞날이 순탄치 않겠구나!)
호송하던 보안사장교가 중얼거렸다.
“김재규부장님 서빙고에 다 왔습니다. 내리시지요”
호송병이 말했다. 차에서 내려 정문으로 걸어가는 김재규의 마음은 착잡했다. 서빙고보안사분실은 김재규에게 아주 각별한곳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김재규는 보안사령관이었었다. 서빙고분실은 김재규가 재직시 그의 구상으로 지은 곳이다. 시설과 규모가 좋았다. 빙고호텔이란 작명도 최초로 김재규가 농담으로 불러서 생겨난 이름이다. 김재규가 자주 드나들면서 정들었던 집.
김재규는 언제나 부하들에게 민주주의 방식으로 대해줬다. 군에 있을때도 장관으로 있으때도 그랬다. 그는 시와 서예를 즐기는 선비취향이었다. 그래서 따르는 부하들이 많았다. 서빙고분실에서 일하는 보안사요원들은 김재규 재직시절 정들었던 부하들이다. 그러나 지금 김재규는 보안사령관의 자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다. 대통령을 살해한 죄수가 되어 포박당한 채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보안사요원들은 서빙고분실 지하고문실로 김재규를 안내 했다. 그때가 1979년 10월 27일 새벽 2시 38분.
이때부터 김재규는 엄청남 고문에 시달리게 된다.
박정희의 군사정권은 고문공화국이었다. 법치국가에서 고문은 불법이다. 독재자들에게 고문은 가장 손쉬운 통치수단이었다. 고문은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잔인하게 고문하면 없는 죄도 얼마든지 고백하게 만든다. 고문은 일제가 남긴 유산이다. 일제는 고문으로 독립투사들을 괴롭혔다. 박정희는 일제시절 일본군 장교생활을 했다. 일제의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의지를 꺾는 독립투사들의 변신을 수없이 보아왔다. 일제는 고문으로 많은 독립투사들을 친일파로 전향시켰다. 군사독재정부는 멀쩡한 민주인사들에게 고문을 가하여 빨갱이로 만들었다. 박정권이 자행한 천인공노할 야만적인 고문장면을 공개한다.
#고문장면1
아무런 간판도 장식도 없는 삭막한 콘세트 건물. 군 정보기관 소속의 한 소령이 연행돼 온 남자에게 협조해 줄 것을 나름대로 정중하게 당부한다.
"옷을 다 벗으세요."
속내의만 남기고 겉옷을 모두 벗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4명의 점퍼 차림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속내의를 벗겼다. 점퍼들은 알몸이 된 남자의 팔과 다리를 교차하여 묶더니 그 사이에 큰 막대기를 끼워 두 개의 책상 사이에 걸어 놓았다. 통닭구이처럼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았다. 취조 4인조는 '통닭 남자'의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는 주전자로 물을 붓기 시작했다. 숨을 못 쉬고 거의 질식 상태인 그에게 사정없는 각목 구타가 가해졌다.
고문에 못 이긴 남자는 풀어주면 말하겠다고 했다. 점퍼들은 3, 4차례나 다짐을 받고는 그를 풀어 땅에 꿇어 앉혔다.
갑자기 그의 입에서 "우드득, 딱"하는 소리가 났다. 혀를 깨물었으나 의치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혀를 깨물고 죽는 자살시도를 한 것이다. 취조하던 점퍼들은 당황해 하면서 그를 제지했다.
유신시절 신민당의 유일한 군 장성 출신 국회의원인 이세규가 고문당하는 장면이다. 이세규의원이 실미도사건 진상을 폭로한 죄였다. 71년8월23일 인천 앞 바다 실미도에 수용되어있던 특수부대요원들이 경비병 14명을 사살하고 탈출했다. 인천을 거쳐 서울 대방동까지 진출했다가 전원 사살 당한다. 정부는 침투한 무장공비를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이세규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북괴군이 아니라 우리군대인 “특수부대”라고 폭로했던 것이다.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는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로 하소연하러 오던 길 이었다.
정보부 남산지하실에서 인간 이하의 고문에 시달린 이세규는 혀를 깨물고 의치가 부러져 피투성이가 된 채 소리쳤다.
"적군의 포로로 잡혀도 장성에게는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제 장군으로서 최후의 것을 다 잃었다 더 이상 살아봤자…."
제아무리 악랄한 군 취조관이라 해도 장군의 처절한 저항에 잠시 어쩔줄 몰라 했다.
"왜 이러십니까…."
이세규는 양쪽 팔을 잡고있는 수사관들의 얼굴을 향하여 입속의 핏물을 내뱉으며 울부짖었다.
"너희 놈들은 군인도, 인간도 아니다!"
이세규는 5일간이나 더 그렇게 고문에 시달렸다. 그들의 요구는 이세규의 군부 내 인맥과 제보자 명단이었고 10·17 유신쿠데타에 지지성명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이세규는 끝까지 고문과 회유에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그는 더 이상 정치권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평생 허리 통증에 시달리며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