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고문대에 선 김재규

 

뉴스로=이계선 작가

 

 

체격이 건장한 40세 안팎의 남자 한 사람이 군 헌병대에 연행됐다. 콘세트 막사에 들어서자마자 2명의 조사요원이 야전 침대용 각목으로 무자비하게 마구 구타했고 남자는 실신해 쓰러져 버렸다. 완력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남자에게 옷을 다 벗겨서 묶으려면 상당한 실갱이가 벌어질 터였다. 그런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 그냥 처음부터 두들겨 패서 기절시켜서 해결해 버린 것이다.

 

그가 의식을 회복해 보니 알몸이 된 채 손과 발이 묶여있었다. 주리를 튼 상태로 두 책상 사이에 매달려 있었다. 이어 얼굴에 수건을 씌워놓고 주전자로 물을 붓자 그는 다시 실신했다. 정신이 들어 보니 의사가 혈압을 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죽지 않을 만큼 고문하는 것이다. 고문은 밤을 새우며 여러 차례 반복됐다.

 

좌동영 우형우로 유명한 김영삼의 오른팔 최형우의원이 박정희정권에게 당한 고문이다. 최형우는 박정희의 3선 개헌 음모를 폭로한 죄 값으로 잡혀 들어온 것이다. 그때 당한 고문후유증으로 지금도 반신분수로 살고 있다.

 

최형후의 증언

 

“물고문에 통닭구이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인간적인 수모도 잊을 수가 없어요. 고문실에 들어서자마자 ‘이 새끼가 최형우야. 겁 대가리 없는 놈이라 더니 인상 참 더럽게 생겼구만’ 이라며 발길질을 퍼붓더군요. 그리곤 발가벗겨놓고 핀셋으로 내 성기를 톡톡 두들기거나 마구 잡아당기더라고요. 내가 그래도 국회의원인데 참…‘ 나만 잡아 간 게 아니에요. 내 아내는 폐렴에 걸린 아들을 업은 채 부산보안부대로 끌려가 보름동안 온갖 수모를 겪었지요. 내 지구당원들도 유신 비난 삐라를 뿌렸다는 이유로 잡혀가 고문을 심하게 당했어요. 유신은 그렇게 미쳐 날뛰었어요”

 

김재규가 고문실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자신이 보안사령관 시절에 만든 그 유명한 보안사서빙고분실에 피의자로 잡혀온 것이다. 역사는 아이러니다. 키로친을 만든 키로친이 후에 키로친에 목을 넣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재규를 피의자 의자에 앉힌 후 요원들은 나가버렸다. 김재규는 사방을 둘러봤다. 사방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고문장면을 복도에서 볼수 있도록 벽 한쪽을 방탄유리벽으로 만들어 놨다. 음산한 색깔로 도배한 벽에는 각종고문도구가 걸려있었다. 금방 악마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올듯한 지하고문실. 이때 끼익-덜커덩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취조관이 들어왔다.

 

“오, 자네 박소령 아닌가? 오랜만 일세”

 

비록 잡혀온 몸이지만 옛날의 부하를 만나니 반가웠다. 더구나 그는 6개월 전 김재규로부터 중앙정보부장의 표창장을 받은 영관장교였다. 박소령은 옛날의 상관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어 거수경례를 했다. 지옥에서 만난 천사처럼 착해보였다.

 

“박소령 옛날 보안사령관님께 경례 올립니다. 그러나 이 경례는 마지막 예의인 걸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네 처지를 이해하지. 이해 하고 말고”

 

김재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취조관은 돌연 악마로 돌변했다.

 

“야 김재규. 너는 보안사령관도 중앙정보부장도 아니야. 일개 피의자일 뿐이야. 뭐? 이해한다고? 웃기지 마. 너 같은 놈의 이해는 필요 없어. 우선 매부터 맞아봐라”

 

젊은 취조관은 주먹으로 김재규의 복부를 강타했다. 김재규는 평소 간이 나쁜 병자다. 52세이지만 60노인처럼 허약해있었다. 궁정동안가에서 대통령 시해전투를 벌리고 국무위원들과 사태수습 씨름을 하느라 밤새 한숨도 못 잤다. 파김치가 되어 피곤 할대로 지쳐있는 늙은 몸이었다.

 

한방을 맞은 김재규는 바닥으로 맥없이 고꾸라졌다. 그러나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정신력으로 빳빳이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른쪽 구둣발이 김재규의 가슴을 내 질렀다. 김재규의 몸은 공중에 뜨면서 뒤로 벌렁 나둥그러졌다. 취조관은 시멘트바닥에 나둥그러진 김재규의 몸에 구둣발 쏘나기를 퍼부어댔다. 어깨 엉덩이 허벅지...때려도 금방 부러지지 않을 곳만 골라서 작신작신 두들겨 팼다. 마포갈비 할매가 갈비살을 주물러 연하게 하듯. 30분 동안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김재규는 축 늘어져 버렸다. 잠시후에 4명의 취조관들이 교대로 들어왔다.

 

그중 인상이 고약한 얼굴이 엄포를 놨다.

 

“우리는 너에게서 단물이 나올 때까지 때릴 것이다. 개를 잡을 때 얼른 죽이지 않고 나무에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댄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똥을 질질이 싸면서 죽은 개고기는 단고기가 되게 마련이다. 돼지를 잡을 때도 칼로 돼지 목을 따면 돼지는 죽을 때까지 피를 뿜어대면서 고통스럽게 소리치다가 죽는다. 그렇게 죽은 돼지고기 삼겹살은 연하고 맛있다. 들어라! 김재규. 우리는 인간백정이다. 널 죽이되 그냥 죽이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단물이 나올 때까지 개 패듯 팰 것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4인조는 악마구리처럼 달려들었다.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주먹과 몽둥이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묘한 것은 오른쪽만 패는 것이었다. 더 아팠다. 몸 전체를 패면 감각을 잃어 아픈 줄도 모른다. 반쪽만 패대면 멀쩡한 쪽이 아픔을 배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 아프다.

 

오른쪽이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오른팔 오른다리가 걸레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반신불수가 된 것이다. 살아있는 왼쪽 감각에 무서운 고통이 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왼쪽을 때리기 시작했다. 왼쪽이 매에 죽어가자 오른쪽이 아파서 소리쳤다.

 

그래도 견뎌내자 취조관들은 김재규의 손톱 밑에 전선줄을 밀착시켰다. 전기고문이었다. 조종하는 버튼을 누르자 지지직! 하고 파란 불꽃이 튀였다. 김재규는 으윽! 소리를 지르면서 벌렁벌렁 나뒹굴었다. 의식을 잃어버리자 군의관이 들어와서 맥을 짚어봤다.

 

“더 이상 가면 생명에 지장이 있습니다. 좀 쉬였다가 하시지요”

 

거의 죽여 놓으면 의무관이 살려냈다. 의무관이 살려놓으면 다시 죽이러 덤벼들었다. 취조관들은 악마였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어느 취조관은 옛날 상사의 처참한 몰골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目不忍見). 눈을 감고 몽둥이를 휘두르다가 애꿎게 벽과 의자를 때리곤 했다. 어느 취조관은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허공을 치기도 했다.

 

 

MBC자료 김재규 박선호 - Copy.jpg

MBC 자료화면

 

 

그래도 취조관들은 악질이었다. 김재규는 더 이상 견딜수 없었다. 온몸은 걸레처럼 찢어져 있었다. 피부는 물론 손바닥까지 검게 멍들어 있었다. 육체적으로 견딜수 없었다. 김재규는 죽여 달라고 사정했다.

 

“제발 나를 죽여 다오“

 

그러나 죽여주지 안했다. 자살도 못하게 했다. 죽는게 두려운게 아니라 고통이 두려웠다. 매일 같은 고문을 한 달 동안이나 끌고 갔다.

 

“너희들의 원하는 것이 뭐냐? 원하는 대로 싸인 해줄 테니 너희들이 만든 조서를 가져 오거라”

“범행동기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인정해 주십시오. 그리고 부장님의 재산을 국가에 모두 헌납해주십시오. 재산 헌납을 약속해주시면 더 이상 고문은 없습니다”

 

그들은 삼선동자택 현금 그림 도자기 병풍에서부터 피아노 오디오세트까지 돈이 될 만한 것은 재떨이 까지 빼앗아 갔다. 심지어는 선친이 물려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선산과 전답 임야 고향본가도 헌납해야 했다. 뼈와 살만 남기고 가죽까지 완전히 벗겨버린 것이다. 취조가 끝난 김재규는 성남에 있는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됐다.

 

취조팀은 상부에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됐어”

 

이때부터 전두환은 거침이 없었다. 10.26다음날인 27일 정보와 치안담당자를 합동수사본부장 접견실로 불러냈다. 중앙정보부 해외담당차장 윤일균, 국내담당차장 전재덕, 검찰총장 오탁근, 치안본부장 손달용.

 

이들은 모두 전두환보다 상급서열이었다. 그런데 전두환은 안하무인으로 대했다. 이들이 들어올 때 삼엄한 감시속에 몸수색을 하도록 명령했다. 기죽이기 작전이었다. 모두 모이자 전두환은 상석에 앉아 위엄을 부렸다.

 

“어이 박소령, 합수부지침을 브리핑해봐”

 

박준광육군소령은 브리핑이라기보다는 지시에 가까운 합수부의 지침을 하달했다. 지침하달이 끝나자 전두환은 목에 힘을 주어 가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중앙정보부는 별도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예산집행을 동결합니다. 그리고 합수부의 지시와 명령을 받아야합니다. 오전 8시 오후 5시에 합수부에 정보보고를 하시오. 그리고 국내담당차장 전재덕차장이 부장대리를 맡으시오”

 

참모총장도 아닌 일개 육군소장이 대통령이라도 된듯 상급기관장을 맘대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참다못하여 정보부장대리로 임명받은 전재덕차장이 일어섰다.

 

“국내담당차장인 내가 정보부장대리를 맡는건 서열을 무시한 위법이외다. 중앙정보부에는 정보부장 다음서열이 엄연히 해외담당차장으로 돼 있소”

“어 그래요? 내가 그걸 몰랐군. 그럼 윤일균해외담당 차장이 부장대리를 맡으시오”

 

전두환은 그런 식이었다. 전두환은 육군소장이다. 중정차장은 중장이다. 경호실차장도 중장이다. 전두환은 상급자 중장들을 졸개 다루듯 했다. 전두환은 무얼 믿고 그러는가?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저렇게 날 뛰는가?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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