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승과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뉴스로=김재규 작가

 

 

궁정동의 총소리로 나라를 발칵 뒤집혀 놓은 김재규가 육군교도소에 갇혀버렸다. 세상은 조용해졌다. 호랑이가 사라지니 산속에 평화가 찾아온다. 박정희는 죽으면서 그 악명 높았던 유신악법을 안고 가버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한국땅에 민주주의의 계절이 찾아왔다.

 

10월 27일 새벽 4시 국무회의에서 최규하총리는 대통령권한 대행으로 추대됐다. 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됐다. 이제 까지 대한민국의 계엄령은 민주화 세력을 협박하기 위해서 발동해왔다. 부산정치파동 때도 그랬고 10월 유신 때도 그랬다. 그래서 계엄령이 선포되면 전국이 벌벌 떨었다. 민주인사가 간첩으로 잡혀갔다. 신체 건강한 남자는 깡패로 몰려 교육대로 끌려갔다. 그러나 이번 계엄령은 정반대였다. 혹시 군대에 숨어있는 유신잔당들이 들고 일어날까봐서 대비하는 방어 작전이기 때문이다.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졌다. 11월 11일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시국 담화를 발표한다. 유신시대를 내리고 민주주의로 복귀하는 정치일정 설명이었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 체제로 복귀합니다. 그리하려면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민주헌법으로 개정해야합니다. 그러나 헌법을 개정하기 전에 공석중인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보궐선거는 유신헌법을 따라야합니다. 현행유신헌법에 의하면 박대통령이 유고를 당했기 때문에 60일 이내인 1980년 1월 25일까지 대통령을 뽑도록 돼있습니다. 우리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10대 대통령을 선출할 것입니다. 그런데 새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잔여 임기인 5년을 채우지 않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개헌하여 새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겠습니다. 그리고 개정된 민주헌법에 의하여 당선된 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물러 날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은 정부를 믿고 새로운 민주국가 건설에 협조해 주십시오”

 

동교동과 상도동에 꽃이 피고 있었다. 겨울로 가는 가을인데도 초여름처럼 백화만발(百花滿發)을 이루고 있었다. 제자백가(諸者百家)들이 모여 민주화의 열기를 토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신의 심장 박정희대통령이 죽었으니 유신독재는 이제 끝난 것이다. 민주화시대로 복귀한다. 누가 민주한국의 주인이 될 것인가?

 

사람들은 동교동과 상도동을 생각했다. 동교동과 상도동은 한국민주화의 양대산맥이기 때문이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뿌리는 일찍이 자유당시절에 생겨났다.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여 생겨난 야당 민주당에 구파와 신파가 있었다. 구파는 신익희 조병옥 김도연 김준연 윤보선 백남훈등 한민당 계열로 온건파로 불렸다. 신파는 장면 김상돈 박순천 곽상훈 주요한 오위영 조재천을 중심으로 한 신진세력으로 강경파로 불렸다. 김영삼은 구파의 막내였고 김대중은 신파의 막내였다. 구파가 보수적인데 반하여 신파는 진보적이었다. 구파는 협상에 능한 행동파인데 신파는 머리가 스마트하고 명석했다. 신구파는 후에 동교동과 상도동으로 정착한다. 마포구동교동에 김대중의 집이 있었고 영등포구 상도동에 김영삼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교동 맹주는 김대중, 상도동맹주는 김영삼. 두 사람 모두 민주당 최대주주 유진산 밑에서 자란 민주당의 쌍기둥이다. 원래는 이철승을 포함한 3인의 40대기수가 민주당간판타자였다.

 

3인중에 이철승이 으뜸이었다. 소장파의 보스 이철승은 대학시절 역도선수였다. 해방후에는 좌익을 때려잡는 우익의 행동대장 이었다. 큰 얼굴에 입이 튀어나와 유난히 힘이 세어보였다. 인상으로 보나 전력으로 보나 지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3인중에 이철승은 가장 뛰어난 문장가다. 단문인 그의 글은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감성과 재미가 있다. 고향 전주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연거푸 낙선했다. 세번째 나올 때는 기발한 구호를 내 세웠다.

 

“세 번째 나왔다. 불쌍하다 이철승. 이번에는 찍어주자!”

 

 

Sosuk_Lee_Chul-seung_in_1960.jpg

www.ko.wikipedia.org

 

 

이철승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그 후 승승장구하여 민주당 소장파의 보스가 된다. 김영삼은 경남(부산) 김대중은 전남(목포) 이철승은 전북(전주)이 거점이었다. 김영삼이 영남을 차지하자 김대중이 재빨리 호남을 접수해버렸다. 유진산을 믿고 느긋하던 이철승은 본거지인 전북의 우군들을 졸지에 김대중에게 빼앗겨 버렸다. 뒤늦게 중도통합론을 표방하고 나와 본다. 흑백논리에 젖어있는 한국인에게 중도는 사꾸라일 뿐이다. 전북의 맹주 이철승은 자기의 비서관출신 김태식에게 패하여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하고 만다. 남은 세력들은 김대중의 동교동에 흡수당해 버린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출신부터 다르다. 김영삼은 거제갑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움 모르고 컸다. 그래서 낙천적이고 배짱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책상머리에 “대통령 김영삼”을 붙여놓고 지낸걸 보면 대단하다. 경남고와 서울대 철학과를 다니면서 웅변을 했다. 당시 정치에 뜻있는 젊은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웅변반 이었다. 대학생 김영삼은 전국웅변대회에서 2등인 국무총리상을 받는다. 국무총리 창랑장택상이 직접 시상을 했다. 김영삼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 창랑은 비서로 채용한다. 창랑의 천거로 정계에 진출한 김영삼은 최연소 국회의원에 최다선(9선)의 기록을 세운다. 14대 대통령을 지냈다.

 

김대중은 김영삼보다 세살위인 1924년생이다. 목포근교의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상고를 나온 후 20대에 해운업으로 성공했다. 학창시절에는 전교수석에다 웅변의 천재였다. 미국신사 장면박사를 만나 정치에 입문한다. 고교졸업이 전부이지만 그의 박학다식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했다. 잠시도 책을 놓지 않는 독서광으로 교수수준이다. 오랜 감옥생활에서 배운 그의 영어실력은 미국방송을 청취하고 영어연설을 할 정도다. 진보적이라서 부인은 감리교회 장로인데 자신은 카토릭이다. 김영삼이 대범하고 배짱이 있는 반면 김대중은 소심하고 꼼꼼했다. 그 점은 박정희와 비슷하다.

 

김영삼은 유방을 닮았고 김대중은 항우를 닮았다고 할까? 항우는 한나라의 공후장상을 지낸 명문가출신이다. 유방은 땅꾼출신이다. 진시황의 만리장성공사에 끌려가던 유방은 부역자들과 함께 주막에 묵는다. 한마장이 넘는 구렁이가 나타나 혼비백산한다. 이때 유방이 나타나 구렁이를 때려잡았다. 유방은 뱀 잡는 땅꾼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내려 보낸 구세주로 알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뱀 잡는 땅꾼기술 외에는 별 볼일 없는 촌놈유방처럼 김영삼은 어딘가 모자라 보였다. 그래서 그를 보는 사람들은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겠어!’ 하면서 몰려들었다. 그래서 상도동은 문전성시로 들끓었다. 부친에게 매일 안부전화를 하는걸 보면 여간 효자가 아니다.

 

김대중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괴력을 갖춘 항우처럼 천하무적이다. 지식 언변 논리 전략 풍모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김대중 앞에 서면 그의 엄청난 카리스마에 압도당하여 누구나 그를 따르게 된다. 양김은 동지이면서 라이벌이었다.

 

두 사람은 형님먼저 아우먼저 하면서 나란히 14대(김영삼) 15대(김대중) 대통령을 지냈다. 객관적으로 보면 김영삼이 민주주의 대통령으로 더 잘 해낼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김영삼대통령의 치적은 별것 아니다. 멀쩡한 중앙청건물철거,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명칭변경, 하나회척결, 그리고 IMF위기 초래다. 치적인지 실패인지 알수 없다.

 

김대중의 치적은 화려하디. IMF조기탈출, IT산업육성, 남북화해와 한반도평화정착, 정치보복중단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저질러놓은 IMF 빚 덩이를 갚기 위해 김대중대통령이 앞장섰다. 전 국민이 따라줬다. 재벌들은 숨겨 놓은 비자금을 내놓았다. 초등학교학생들은 돼지저금통을 들고 왔다. 어린아기들은 엄마등에 업혀 돌 반지를 갖고 왔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건전기업만 남겨뒀다. 1년 만에 IMF를 탈출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다.

 

김대중대통령은 손수 인터넷을 두드려 가면서 IT산업 육성을 독려했다. 전국이 전자파로 뜨거웠다. 삼성 LG의 전자제품이 세계를 석권하고 전자기술로 무장한 현대차가 일본을 추월하게된 것도 그때 기반을 닦아놓은 기술 덕분이다. 그러나 김대중대통령의 최대치적은 남북화해 한반도평화정책이다. 현대 정주영회장은 2천 마리의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올라갔다. 정주영은 10대시절 아버지의 소 판돈을 훔쳐내어 고향 강원도통천을 도망쳐 나왔다. 고향 떠난 지 60년 만에 세계적인 재벌이 되어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것도 2천마리의 소를 끌고 2천배로 갚으러 가는 것이다. 세계를 감동시킨 드라마였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금강산이 개발되고 개성에 남북합작공단이 생겼다. 1년에 50만명이 북한을 다녀왔다. 김대중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상호비방이 사라지고 평양과 서울에서 상호교환 예술공연이 열렸다. 통일된 거나 다름없었다. 노무현정권까지 10년 동안 한반도에 평화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걸 이명박정권이 망쳐놨다. 이명박정권은 전임정권이 한건 무조건 반대로 나왔다. 대북강경책으로 돌아서다보니 한반도에 긴장이 찾아왔다. 금강산이 폐쇄되고 천안함이 격침당했다. 북은 미국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핵을 개발했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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