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팩스=코리아위클리) 박영철(전 원광대 교수)
“현 국제정세는 어느 순간 무서운 전쟁이 돌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외교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 이그나티우스가 지난주에 쓴 기사의 핵심 내용이다.
“트럼프의 국내 정치가 무서운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고 있다." 이것은 지난주에 발행된 <뉴욕타임스>의 정치 기사 제목이다.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동안은 새로 당선된 대통령의 정책을 시행하는데 가장 좋은 기간으로 이때 선거 공약의 다수가 시행의 본궤도에 올라와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 필자 박영철 전 원광대 교수 |
미 언론과 대다수 국민의 눈에 비친 트럼프의 취임 100일의 성적은 불안한 D- 정도이다. 반대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굳게 믿는 소수의 공화당 극성 지지자와 은행 규제 완화의 혜택을 기대하는 월스트리트, 예상되는 세제개혁안의 최고 수혜자인 고소득자와 다국적 기업 등은 트럼프에게 A+의 높은 점수를 준다.
하지만 전국적인 여론 조사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연일 갱신하고 있다. 취임 직후부터 역대 최저인 48% 지지율로 시작하여 4월 초에는 무려 37%까지 급락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비슷한 시기에 각각 67%와 62% 지지율을 기록했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이처럼 국민의 깊은 불신을 받는 트럼프 행정부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최근의 화두는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난 3월 24일 트럼프와 공화당이 자신들의 최우선 선거 공약인 오바마케어를 대체(Replacement Bill)하는 ‘트럼프케어’ 법안(미국보건법=AHCA)을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철회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지난 대선 기간 중 러시아의 푸틴이 트럼프 진영을 돕기 위해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첫째, 공화당이 지난 3월 24일 왜 하원에 상정하려던 ‘트럼프케어’를 철회했는지, 그것이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끼칠 엄청난 타격을 살펴보자. 지난 수년간 공화당은 오바마케어 폐지를 주창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 행정명령으로 ‘오바마케어 폐지’를 지시했다. 그리고 이를 대체할 ‘트럼프케어’의 하원 통과를 최우선 입법 과제로 선택했다. 하원 의장 폴 라이언이 주도하여 만든 이 법안이 하원 상정 전날 전격적으로 철회된 이유는 민주당 의원 전부와 공화당 강경 보수파 일부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트럼프케어’ 법안 상정에 반대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유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인다. 지난 4월 초에 발표된 미 의회예산국(CBO)의 보고서는 만약 트럼프케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돈이 없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무보험자수가 2016년에 적어도 2400만 명, 내년 한 해에만도 1400만 명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건강보험에서 2400만 명의 미국인을 쫓아내고 가난한 노인들의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은 역겹고 부도덕하다”고 질타했다. 반대로 공화당의 강경파인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은 “트럼프케어 대체 법안은 오바마케어의 핵심 조항을 완전히 폐지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철저히 수정해야 공화당다운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이 법안의 의회 상정을 반대했다.
▲ 역대 대통령 가운데에 취임 이후 100일 동안의 성적표에서 최악으로 평가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은 지난 1월 21일 취임식에서 트럼프가 선서를 하고 있는 장면. (시앤앤 생중계 갈무리) |
하지만 지난주에 트럼프는 매우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 좌절된 트럼프케어 법안의 재상정을 위해 필요하다면 민주당과 협상도 하겠다고 선언하고 동시에 공화당의 강경파에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심판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케어의 재상정은 현재로서는 그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 확실한 것은 이 법안의 의회 상정 좌절이 향후 트럼프의 리더십에 타격을 입혀 그의 공약(Agenda) 시행에 엄청난 파국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세제개혁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 은행 규제법률 완화와 중국, 멕시코 등과의 국제교역 재협상 등이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질 전망이다.
이제 두 번째 ‘뜨거운 감자’를 살펴보자.
러시아가 지난 대선 중 트럼프 진영을 돕기 위해 불법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은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눈덩이처럼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2월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계속 거짓말을 해오던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2월 중순에 결국 사임하고, 연방수사국(FBI)과 미 의회가 본격적으로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민주당 상원의원 마르크 워너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 스캔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외부 적국이 미국 민주주의의 최대 경사인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여 자기들이 선호하는 후보를 당선시키려 한 파괴적 행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대로 러시아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오히려 민주당이 조작하는 ‘마녀사냥’이라고 깎아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 3월 30일 폭탄적인 발언이 발생했다. 다시 말하면, <월스트리트 저널>과 <뉴욕타임스> 등이 마이클 플린이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에 대해 수사 중인 의회와 연방수사국에 증언의 대가로 기소면책(Immunity)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플린의 기소면책 요구에 접한 연방수사국과 미 의회는 일단 신중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플린이 증언하겠다는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전에는 기소면책 특권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깊은 안개 속에 빠진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이 자칫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대선 공약 실행에 태풍과 같은 파괴력을 가할 수도 있어 워싱턴 정가가 숨을 죽이고 있다. 결론을 말씀 드리면, “미국을 다시 강대국으로!”라는 구호를 내건 트럼프 취임 100일의 초라한 성적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