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화 70년: 26회] ‘박정희 민정 참여 비판’ 3일 만에 살인·살인교사 혐의로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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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11월4일 청와대 관저에서 열린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육군대장 진급식에서 송요찬 내각수반(오른쪽)과 윤보선 대통령(왼쪽)이 박 의장 어깨에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송 수반은 당시 담화에서 “국가적 체면과 위신을 위한 대국적 견지 아래 내각에서 (대장 진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코리아위클리)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비닐 우산,/ 받고는 다녀도/ 바람이 불면/ 이내 뒤집힌다./ 대통령도/ 베트남의 대통령.// 비닐 우산,/ 싸기도 하지만/ 잊기도 잘하고/ 버리기도 잘한다./ 대통령도/ 콩고의 대통령.// 비닐 우산,/ 흔하기도 하지만/ 날마다 갈아도/ 또 생긴다./ 대통령도/ 시리아의 대통령.// 비닐 우산,/ 아깝지도 않지만/ 잠깐 빌려 쓰곤/ 아무나 줘버린다./ 대통령도/ 알젠틴 대통령.”(신동문 시 ‘비닐우산’, 사상계 1963년 4월)

1960년대는 제3세계의 쿠데타 계절이었으나 쿠데타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는 없다. 어떤 명분이나 공적도 쿠데타의 면죄부는 되지 못한다. 이 시에 언급된 나라들과 4·19혁명을 이룩한 한국은 엄연히 다르다. 사월 정신은 5·16을 거역한다.

거세진 ‘박정희 퇴진 운동’

민정이양을 약속한 1963년이 밝자 박정희 장군 퇴진운동은 거세졌다. 1월7일 오후 군사정부 내각수반이던 송요찬(宋堯讚, 1918~1980년)은 신당동 자택에서 “군사정부가 혁명공약을 스스로 위반”했다며 박 의장의 하야 요구 성명을 냈다. 이어 김동하는 “국민을 배신할 수 없어 최고위원직과 공화당 발기인 직을 사퇴”했고, 김재춘은 병력동원까지 언급하며 박 의장의 민정 참여 포기를 압박했다. 각 군 수뇌회의가 2월16일 박 의장의 민정 참여 반대를 주장하자 그는 ‘2·18 정국 수습 9개안’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군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보복 금지, 정쟁 지양과 한·일회담의 초당적인 협조 등의 조건들을 받아들이면 자신은 민정에 불참하겠다고 하자 지지가 쏟아졌고, 김종필은 “일체의 공직에서 물러나 초야의 몸이 되겠다”며 외유 길에 올랐다. 정치인과 각 군 책임자들이 서울시민회관에서 2월18일 수습방안 수락 선서에 서명했고, 2월27일 박 의장은 민정 불참 성명서를 낭독했다.

그러나 열흘 뒤 그는 원주 1군사령부 시찰에서 정치인은 군에 간섭 말라며 혼란이 재연하면 방관하지 않겠다고 엄포(3월7일)를 놓았다. 그 사흘 뒤 중앙정보부는 김재춘·김동하 등의 쿠데타 음모사건(3월10일)을 터트렸고, 그 사흘 뒤 국민자유연맹 등 유령단체들이 구정치인 추방과 쿠데타 음모 및 송요찬을 처벌하라는 전단을 살포했다. 이틀 뒤 수도방위사령부 군인들이 박정희 민정불참 철회와 군정 연장 요구 시위를 벌였다.

그 이튿날인 3월16일 박 의장은 군정 4년 연장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했고, 최고회의 법사위원장 길재호는 군정 연장 문제에 대한 시비를 못하게 언론에 철퇴를 내렸다.

이에 동아·조선 두 신문은 강력히 항의, 10여일간 사설을 없앴다. 총칼 아래서도 팔팔했던 그 기개가 왜 ‘기레기’로 전락했을까.

유일한 ‘장군 필화’ 송요찬

윤보선 등 정치인과 시민들의 항의로 군정 연장을 포기한 박정희가 민정 참여를 선언하자 송요찬은 격노하여 ‘박 의장에게 보내는 공개장-민정이양을 앞둔 전 내각수반의 제언’(동아일보 1963년 8월8일)을 썼다. 이 글은 장군 필화 제1호, 아니 유일한 장군 필화다.

“작년(1962년) 6월 혁명정부 내각수반직에서 물러난 송요찬씨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보내왔습니다. 다음은 그 전문입니다”라는 소개 아래 동아일보에 실린 이 글은 200자 원고지 47장에 이른다.

사전 정보를 입수한 박 의장 측근이 유보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송요찬은 굽히지 않았다. 군정의 “실정과 부패한 내막을 상세히 수록한 증거물을 해외에 피난”시켜 둔 그는 “나는 언제 총에 맞아 죽을지 구속될지 모른다. 만약에 신변에 사고가 생기면 나의 비밀문서는 보관한 외국인들에 의해 즉시 공개될 것”이고, 자신은 “끝까지 싸우겠다”(경향신문 1963년 8월12일)고 했다.

글은 1 ‘군인은 국방에만/ 부패도 미웁지만 독재는 더 미워’, 2 ‘나라의 주인은 국민/ 나 아니면 안된다는 위험한 사고’, 3 ‘물러서는 게 애국/ 어떻게 참신한 정치인 자처하랴’로 구성되어 있다.

“민주국가에 있어서의 군사력은 정부에 의한 정치적 지도와 국회에 의한 감독을 받아야 하는 것”인데, “감독을 받아야 할 군대가, 지도를 받아야 할 군사력이 주객을 전도하고 본말을 뒤집어 중앙청을 점령하고 의회를 해산한 지 어언 2년”이 넘었지만 이승만·장면 정권 때보다 더 혼란한 데다 무능하고 부패했으며, 민생고까지 악화되었다고 송요찬은 진단했다.

“민주정치가 중구난방이고 부패하기 쉽다고 하여 획일주의와 능률을 부러워할 수”는 없으며,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할 것 없이 ‘나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생각처럼 위험하고 우매한 사상”은 없다. “박 장군, 혁명정부가 이태 동안 국민에의 공약과 선서를 번복하고 식언하기를 도대체 몇 번이나 되풀이하였습니까?” 특히 “한일회담은 왜 그렇게 비밀이 많습니까? 주권자는 그 누구이기에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서야 됩니까? (…) 우리를 36년 동안이나 노예상태에 얽매어둔 일본”에 왜 “그토록 호의 호감을 가지고 대합니까?”라는 대목에서는 박정희의 친일 경력을 은근히 힐난하는 모양새다.

“내가 바라고 또 충고하고 싶은 것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망집(妄執·망령된 고집)을 버리고 번연개오(幡然開悟·모르던 일을 갑자기 깨달음), 장군 자신의 거취를 뚜렷이 밝힘이 군인으로서 취할 바 태도요, (…) 국가에 충성하는 길”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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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요찬이 박정희 의장에게 보낸 공개장을 실은 동아일보 ⓒ 자료사진
 

치졸한 군사정부의 보복

보복은 신속했다. 8월11일 일요일 오후 1시30분 중앙정보부는 송요찬을 ‘살인 및 살인교사’ 혐의로 마포교도소에 수감했다. 필화사건이 이런 생뚱맞은 죄명을 뒤집어쓰다니!

살인은 6·25전쟁 때 수도사단장 송요찬 대령이 두 번이나 전장을 이탈한 대대장을 명령불복종으로 총살시킨 사건으로 이미 불기소 처분되었고, 살인교사는 4·19 때 송요찬 육군참모총장이 데모대에 발포를 지시했다는 혐의지만 이미 곽영주의 처형으로 종결된 사건이었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송씨의 ‘박 의장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나 그 밖의 그의 정치적 행각과는 하등의 관련도 없다”고 강변했지만, 김대중 민주당 대변인은 “군사정부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송씨를 내각수반 직에까지 등용했다가 박 의장에 대한 비판적인 공개장을 발표한 지 3일 만에 돌연 구속하는 것은 정치적 보복”이라고 날을 세웠다. 세상이 온통 그의 편이었고, 구속적부심으로 석방(8월17일)된 그는 의연히 박 의장의 은퇴를 주장했다. 그러자 ‘살인 교사’는 빼고 허위사실 유포에다, 15연대장 시절에 교제했다고 주장하는 모 여인의 친자확인 민사소송을 추가해 9월4일 마포교도소에 재수감 해버렸다.

대통령선거(10월15일)에 옥중출마하자 접견을 금지(9월10일)시켰고, 장면정권 때 10개월간 미국 유학한 걸 5년 국내 거주 규정을 위배했다며 후보 자격 미달이라고 우겼으나 통하지 않았다. “다 죽겠다 갈아 치자”란 구호에다 공포정치 청산을 위해 정보부와 수도방위사령부 해체를 주장했던 송요찬의 석방운동 서명자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그는 10월7일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허정 후보에 이어 자진 사퇴했다.

그의 필화 수난은 1964년 5월26일, 서울 형사지법에서 공소기각 결정으로 막을 내렸다.

<꼬리기사>
‘박 의장에게 보내는 공개장’에서


그래,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굽니까? 이 나라에 정녕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런 안하무인격인 어거지가 위세를 부릴 리가 만무합니다. (…) 이게 백성이 사는 나라며 어디 자유민이 사는 나라입니까? (…) 분통이 터질 노릇입니다. 더욱 해괴망측한 것은 이러지 않고서는 이 나라가 아주 망할 것처럼 나팔을 불고 돌아다니는 약장수들의 그럴싸한 선전선동입니다.

장군, 말과 사슴은 삼척동자라도 식별할 줄 압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말을 말이라고 하고, 사슴을 사슴이라고 하는 데 죽을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되나 봅니다. (…) 이러고 볼진대 4·19는 꿈자리 사나웠던 우리들의 사치한 잠을 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4·19혁명은 우리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박 장군, 나는 간곡히 부탁합니다. 국민의 기아를 해방시키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장군 자신을 이른바 새 세대, 새 역사, 새 영웅주의의 환각과 측근자, 인의 장막에서 해방시키십시오. 그리고 복지사회 건설을 목표로 삼는 역사의 단축을 권력정치로써 이루어보겠다고 하는 위험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 끝끝내 이 직언을 물리치고 출마한다고 하면 이 사람 송요찬은 만각이나마 조국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어떠한 형극의 길이라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먼저 올려졌습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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