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에 관대한 한국인
뉴스로=이계선 작가
김대중의 아름다운 치적은 정치보복중단이다. 김대중은 한국정치인중 핍박을 가장 많이 받은 정치인이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자 보복의 피바람이 불줄 알았다. 정반대였다. 한국의 대통령 중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대통령은 오직 김대중뿐이다. 박정희도 전두환도 전임정권의 부관참시를 즐겼다. 노태우는 자기를 대통령 시켜준 친구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 보냈다. 김영삼은 자기를 대통령되게 해준 전임자 노태우를 구속했다. 김대중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된 노무현도 그 짓을 했다. 김대중의 수족 박지원을 감옥에 처넣은 것이다. 김대중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를 빨갱이로 몰아 여러 번 죽이려했던 박정희세력을 용서했다. 오히려 박정희대통령 기념관건립을 앞장서서 서둘렀다.
1971년 신민당 후보로 출마한 김대중의 연설
그러나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 권력을 누린 건 16년 후의 일이다. 당장은 아니다. 10.26이후의 한국정치기상도는 안개정국이었다. 독재자 박정희가 죽어 무주공산이 되었지만 맹주가 되려고 꿈틀대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았다. 정승화의 군부세력, 전두환의 군부소장파, 김영삼 김대중의 양김시대. 유신잔당 김종필까지 등장하여 삼김으로 합류하러들었다. 호랑이가 없는 무주공산에 토끼가 왕 노릇 하려든다더니! 10.26이후의 한국정계는 바야흐로 춘추전국시절이었다. 그것도 한치 앞을 내다 볼수 없는 안개속의 열국시대였다. 그래도 정치의 중심은 동교동과 상도동이다.
동교동과 상도동은 이복형제처럼 많이 달랐다. 박정희가 죽자 민주화의 열기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런데 정치계는 의외로 조용했다. 호랑이 시아버지가 죽자 시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는 며느리처럼.
“일본천황 유인이 미드웨이 함정에서 맥아더에게 무릎 끓고 항복을 선언하자 36년간 압제를 당했던 삼천리반도는 대한독립만세로 들끓었습니다. 18년간 독재하던 박정희가 죽었으니 민주만세가 천지를 진동할 텐데 왜 그리 조용할까요? 우리 만나서 의논합시다”
동교동과 상도동이 만났다.
김영삼은 낙천주의자답게 쉽게 생각했다.
“이제 다 끝나 뿌린기라. 박정희가 죽어 뿌렸으니 유신이나 독재는 끝난 거 아이가? 민주주의로 돌아가는 건 당연지사 이다. 마 걱정 마이소”
김대중은 신중했다.
“고로코롬 안일하게 생각할 것도 아닌듯 싶소잉. 박정희는 죽었지만 유신독재의 기반이었던 군부의 뿌리는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어요. 박정희가 길러둔 정치군인들이 육본 보안사 수경사 특전사를 비롯한 서울지역부대에 포진하여 반란을 노리고 있단 말이오. 삼국지에 보면 동탁이 죽자 부하장수 이각 곽사 장제의 잔당들이 반란을 일으켜 임금을 협박하여 천하가 어지러웠어요. 지금 박정희 잔당인 군부가 실권 없는 최규하대통령을 협박하고 있단 말이요”
김영삼의 오른팔 최형우의원이 입을 열었다. 상도동측의 견해다.
“그런데 당장 급한 현안인 김재규는 어떻게 대처할겁니까? 김재규는 민주회복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박정희를 제거해주었어요. 그런데 지금 보안사에 체포당하여 군사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형 당할게 뻔합니다. 우리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있으면 후세 역사가 우리를 어떻게 기록하겠습니까?”
동교동계의 책사 김상현의원이 받아 말했다.
“김재규문제는 굉장히 델리케이트하고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문제해결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냥 놔둬도 유신은 막을 내리게 됐어요. 지난번 총선에서 유신독재치하인데도 야당이 승리했습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김대중납치 YH사건 김영삼총재 제명 김형욱 실종 부마항쟁으로 정국은 요동치고 있어요. 게다가 악화된 경제는 국민불만을 고조시키고 있구요. 그보다 유신이 망할 가장 큰 원인은 박정희의 황음무도입니다. 통치자가 타락하면 반드시 망했어요. 의자왕은 주색잡기를 즐기다가 망했어요. 신라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여인들을 끼고 술을 마시다가 견훤의 칼에 죽었지요. 박정희주색잡기는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놔둬도 박정희는 조만간 망하게 돼있어요. 그런데 김재규가 덥석 일을 저질러놔서 일만 꼬이게 했습니다. 국민들은 무조건 죽은 박정희를 애도하고 있습니다. 장례식에 2백만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전국적으로 2천만명이 추모했답니다. 이런 판국에 김재규 구명운동에 나섰다가는 국민의 몰매를 맞아 야당이 전멸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김재규를 모른다고 내 버려 둘 수도 없구...”
김상현의 진단은 맞는 말 이었다. 한국인은 죽은 자에게 관대하다. 살았을 때보다 죽고난후 더 잘해준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 초근목피로 살았어도 죽고 나면 진수성찬으로 대접을 받는다. 쌀밥과 고깃국 과일과 어육으로 차린 제사상은 임금님의 수라상 못하지 않은 진수성찬이다. 살아생전 원수처럼 지내던 부부도 남편이 죽으면 연인처럼 그리워한다.
미국 뉴욕에 김상두장로 박명희권사 부부가 있었다. 서울대를 나온 부인은 남편을 우습게 봤다. 남편은 삼류대학 야간부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도 부인에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3류대학을 나왔지만 그는 영어에 능통했다. 건설업체의 이사로서 중동건설업계를 주름잡았다. 부인은 서울대를 나왔지만 영어벙어리였다. 부잣집 딸로 자라서 일을 안 해보고 살았다. 부부가 뉴욕으로 이민을 왔다. 맞벌이를 해야 견뎌내는 게 이민생활이다. 부인은 아무 일도 못했다. 그래서 남자는 부인을 무시했다. 물과 불이 만난 것처럼 부부는 맞는 구석이 없었다. 장로요 권사라서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늘 싸웠다. 장로부부라서 헤어지지도 못했다. 그러다 60살도 안된 남편이 어느 날 덜컥 세상을 떠나버렸다. 사람들은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됐으니 오히려 잘된 것으로 생각했다.
“시원섭섭하겠지. 이젠 싸울 일도 없으니 훨훨 날라 다니면서 살 거야”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아내는 날마다 밤마다 남편의 사진을 드려다 보면서 통곡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꽃을 사들고 무덤을 찾아갔다.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쳤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열녀비를 세워줘야 한다고 탄복했다.
“생전에 얼마나 금슬이 좋았으면 저렇게 그리워할까?”
이상하다. 생전에 사이가 나쁜 부부일수록 죽고 나면 더 그리워한다. 박정희의 죽음이 그랬다. 살아생전에는 독재자라고 그렇게 미워했다. 그러나 박정희가 죽자 동정으로 바뀌었다. 독특한 죽음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의 죽음은 비참한 죽음이었다. 부인 육영수는 8.15경축식장에서 재일교포민주청년 문세광의 총에 맞아죽었다. 남편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미녀들을 끼고 술을 마시다 총에 맞아죽었다. 그것도 고향친구요 육사동기인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죽었다. 부부가 비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이후 박정희를 동정한다.
그는 18년 집권하면서 경제부흥을 일궈냈다. 그러나 오점을 많이 남겼다. 민주주의를 말살했다. 무수한 사람들을 죽였다. 여성들에게 못쓸 짓을 했다. 그런데 너무 비참하게 죽었다. 역사상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다 죽은 통치자는 경애왕과 박정희대통령뿐이다. 신라경애왕은 포석정에서 미녀들을 끼고 술을 마시다 후백제 견훤의 칼날에 죽었다.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미녀들을 끼고 술을 마시다 부하의 총을 맞고 죽었다. 비참하다. 충격적이다. 어떻게 보면 영웅적이다. 영웅들의 죽음은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