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아.." '김재규 복권소설'
뉴스로=이계선 작가
유방에게 연전연승하던 항우는 해하전투에서 대패한다. 마지막이 온 걸 안 항우는 사랑하는 연인 우미인과 이별을 노래한다. 무심이 흐르는 해하강 물결을 바라보면서 항우와 우미인이 읊은 석별의 노래.
항우의 해하가(垓下歌)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아낼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만한데
時不利兮騶不逝 형편이 불리하니 오추마도 나아가질 않는구나
騶不逝兮可奈何 오추마가 나아가질 않으니 내 어찌할 것인가
虞兮虞兮奈若何 우미인아 우미인아 너를 어찌할거나
우미인의 화답시
漢兵已略地 한나라 병사들이 이미 모든 땅을 차지하였고
四面楚歌聲 사방에서 들리느니 초나라 노래뿐인데
大王意氣盡 대왕의 뜻과 기운이 다하였으니
賤妾何聊生 천한 제가 어찌 살기를 바라겠나이까
사방은 수십만 유방군에게 포위당하고 남은 군사는 겨우 1천이다. 그들은 고향 강동출신들이었다. 고향친구들처럼 끝까지 따라주는 우정에 항우는 감격했다. 항우는 눈물을 흘리며 칼을 쳐들었다. 먼저 사랑하는 우미인을 죽인다. 그리고 오추마에 올라타고 적진 속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신분이 낮고 보잘것없었던 내가 군사를 일으켜 여기까지 왔다. 모두 합쳐 8년이다. 그동안 수많은 전투를 치러왔다. 그때마다 나는 단 한 차례도 져본 적이 없다. 오늘도 내가 세 번을 더 싸워 세 번 다 이겨 보이겠다. 나와 함께 하겠는가?”
“장군과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천명의 결사대가 뒤를 따랐다. 항우는 적군을 베기를 수없이 했다. 적진을 돌파하여 잠시 숨을 돌리고보니, 강동 젊은이들의 절반이 시체로 변해있었다. 갑옷을 고쳐 입은 항우는 나머지 500을 이끌고 적진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베기를 수차례 하고서 주위를 둘러보니 나머지 절반이 죽어 겨우 300이 남아있었다. 항우는 300을 이끌고 다시 적진 속으로 돌격했다.
항우의 칼날이 춤출 때마다 적군의 머리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항우가 칼을 휘두르며 달려가자 적군들은 물살처럼 갈라져 피했다. 세 번째 승리였다. 항우는 돌격을 멈추고 돌아봤다. 강동출신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 죽고 없었다. 부장하나가 겨우 살아남아 곁을 지키고 있었다. 항우는 힘이 부쳐 더 싸울 수가 없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항우는 하늘을 우러러 소리쳤다.
“하늘이 나를 망치려고 해서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지, 내게 무슨 큰 잘못이 있어서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 결단코 아니다. 하늘이 나를 버렸을 뿐이다. 마지막 남은 강동의 전사여! 그대가 8년 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충성을 했건만 나는 그대에게 보상해 준 게 없구나. 들으니 내 머리를 가져오는 자에게 유방이 황금만량을 준다고 했다니 너는 내 머리를 갖고 가서 상을 받거라”
말을 끝낸 항우는 장검을 높이 들어 내려쳐 자신의 목을 베어버렸다. 항우의 머리가 덩그러니 땅에 떨어졌다. 그러자 마지막 부하도 칼을 들어 자신의 목을 베었다. 장군의 뒤를 따랐다. 항우의 머리를 들고 유방에게 가서 황금을 받지 않은 것이다. 영웅의 죽음답다. 항우는 이렇게 비참하게 죽었다. 그런데 여기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와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항우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우미인의 사면초가(四面楚歌)
흑인해방의 영웅 링컨은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다가 암살당했다. 한편의 드라마 처럼. 핵무기를 배에 실어 쿠바로 보내려는 후르시초프를 굴복시킨 케네디는 인기절정이었다. 그러나 텍사스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호텔로 가는 퍼레이드도중 총에 맞아 죽었다. 부귀영화가 덧없다는 듯...
시저는 친구 부르터스가 칼을 빼들고 달려오자 전의를 상실하고 만다.
“오, 부르터스! 자네마저도...”
칼을 던져 버린 시저는 친구 부르터스의 칼을 맞고 죽는다. 영웅들은 특이한 생애만큼 죽음도 특이하다. 박정희의 죽음도 영웅의 죽음이었다.
미녀들을 끼고 술을 마시다 총을 맞고 죽은 박정희는 남자답다. 친구 김재규의 총에 죽어서 더 비극적이다. 총을 맞고 죽어가는 박정희의 마지막 자세는 차라리 아름다운 영웅의 모습이었다. 용감무쌍을 자랑하던 차지철은 김재규의 총을 맞고 화장실로 도망갔다. 박정희는 죽음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가슴에 총을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꼿꼿하게 앉아 자리를 지켰다. 비록 술자리이지만 대통령 자리를. 화장실에서 기어 나온 차지철은 “김부장 김부장...”애걸 하면서 목숨을 구걸했지만 박정희는 돌부처처럼 꿈쩍도 안 했다. 의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가슴에 총을 맞으면 마취 없이 가슴을 째고 심장 수술을 하는 고통이라고 한다. 어느 누구도 참지 못하고 단발마의 고통을 호소하게 마련이란다. 그러나 박정희는 눈빛하나 흔들리지 않고 명상하는 자세였다. 차지철을 찾아내어 쏴 죽인 김재규가 박정희의 복부에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시중하던 여인들이 달려와 부축하자 그가 남긴 마지막 말.
“나는 괜찮아!”
그리고 그는 쓰러져 죽었다. 영웅답다. 시저보다도 더 영웅답다. 영웅들의 죽음은 비극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고 난 후에도 영웅들을 더 잊지 못한다.
박정희와 로맨스를 엮었던 배우 문일봉의 증언.
“그분이 그렇게 돌아가신 게 차라리 잘 된것 같아요. 그분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있으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재직중에 있었던 독재와 인권유린을 트집 잡아 시끄럽게 굴겠지요. 그러면 불같은 그분의 성격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충돌과 갈등이 있겠지요. 궁정동에서 갑자기 변을 당하신 게 차라리 잘 된 것 같아요. 엄청난 충격이라서 반대자들도 할 말을 못하게 됐으니까요”
문일봉의 증언도 들어둘 만하다.
상도동의 책사 김덕룡이 입을 열었다.
“김상현의원의 말이 맞습니다. 뜻하지 않은 대통령의 서거로 정국은 지금 묘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김재규부장이 민주화의 물꼬를 터 준건 고마운 일입니다. 살신성인이지요. 그런데 잘못 건드렸다가는 국민감정이 엉뚱한 곳으로 폭팔할런지 모릅니다. 더구나 18년간 박정권을 지탱해주던 군부는 수면 아래로 잠복하여 정세를 관망하고 있어요. 그들은 총칼을 갖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는 야당의 약점을 보이면 안 됩니다. 야당의 약점은 분열과 정국불안조성 빌미제공입니다. 우리는 양김의 협조아래 하늘이 내려준 민주화의 기회를 지혜롭게 잘 이끌고 가야합니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