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대 왕들이 사랑했던 콩피에뉴는 끝없이 펼쳐지는 숲이 있고 파리에서도 80Km 정도의 거리로 쉽게 오갈 수 있어 파리 사람들이 자주 찾는 휴식처이다. 제 1차 세계대전 말에는 프랑스군 총사령부가 들어섰고, 제 1. 2차 세계 대전의 정전협정이 이곳에서 있었다. 현재는 광활하게 펼쳐진 콩피에뉴 숲이 파리사람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프랑스 역대 왕들이 사랑했던 콩피에뉴는 끝없이 펼쳐지는 숲이 있고 파리에서도 80Km 정도의 거리로 쉽게 오갈 수 있어 파리 사람들이 자주 찾는 휴식처이다.
콩피에뉴는 9세기에 왕립수도원이 들어서고, 샤를 5세가 궁전을 세우면서 도시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콩피에뉴 숲이 파리에서 멀지 않으면서 깊고 넓어 왕과 왕족들이 사냥터로 자주 애용하는 장소로, 궁이 들어서고, 귀족의 별장들이 지어지면서 도시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백년전쟁 시에는 1430년에 잔 다르크가 콩피에뉴에서 부르고뉴 주민에게 체포되어 영국군에게 넘겨졌고, 샤를 7세가 잔 다르크의 몸값을 지불하지 않아 1년 후에 루앙에서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년 전쟁이 끝난 후 1456년에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의 마녀 혐의를 풀어주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고, 콩피에뉴의 시청사 앞에는 잔 다르크를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졌다. 지금은 그녀가 체포되었던 5월 23일에 맞추어 매년 잔 다르크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제 1차 세계대전 말에는 프랑스군 총사령부가 들어섰고, 제 1. 2차 세계 대전의 정전협정이 이곳에서 있었다. 현재는 콩피에뉴 숲이 파리사람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콩피에뉴 궁 (château de Compiègne)
메로빙 왕조 시대부터 궁이 있던 자리에 샤를 5세가 새로이 건축을 하고 후에 루이 15세가 개축을 한 곳으로, 왕과 왕족들이 사냥을 하러 와서 머물던 성이다.
콩피에뉴 궁은 주로 왕들의 사적인 공간으로 이용되던 곳으로, 루이 16세는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첫 대면을 이곳에서 하고 결혼을 했지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둘의 죽음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대혁명 후에 궁은 군사훈련학교와 공예학교로 쓰이다가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 다시 보수했다. 나폴레옹은 첫 아내 조세핀과 이혼하고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를 콩피에뉴 궁에서 맞이하여 결혼식을 올렸다. 특히 나폴레옹 3세는 매년 성에 들러 사냥을 즐기며, 유럽각국의 왕과 왕자를 초대해 파티를 열 정도로 이곳을 아끼고 사랑했다.
건물은 고전주의 양식 건물로 아름답고, 궁전 안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의 취향대로 화려하면서 우아하게 장식을 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방, 왕의 방, 무도의 방 등으로 나뉘어 있고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 중이다.
방마다 실내 장식이 아름답고 타피스리 컬렉션, 18세기의 가구들이 시선을 끈다. 또한 성에는 제 2 제정시대의 박물관과 자동차 박물관이 있어, 성을 방문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정원은 영국식 정원으로 꾸며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살아있고 정원 모퉁이에 자리한 ‘장미의 정원’은 수십 종류의 장미가 피어나는 곳으로, 장미의 향이 6월의 봄을 빛나게 해준다.
앙투안 비브넬 박물관 (Musée Antoine Vivenel)은 18세기에 세워진 아름다운 건축물로 1839년에 대중에게 문을 연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박물관의 명칭은 개관 할 때 예술 애호가 앙투안 비브넬이 기증한 소장품들이 주를 이루어 붙여진 명칭이다. 박물관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의 희귀한 고고학 유물 등과 함께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의 장식품, 18~19세기 예술작품 등을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다양하게 소장하고 있는 고대에 만들어진 독특한 무늬와 아름다운 색감의 도자기들이 흥미롭다. 박물관을 둘러 본 후에는 정원을 둘러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의 안정감이 주는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가 나이테로 자라나는 콩피에뉴 숲
콩피에뉴 숲 (Forêt de Compiègne)은 1만5천 헥타르로 끝없이 펼쳐지는 숲으로, 퐁텐블로 숲(Forét de Fontainebleau)과 함께 왕과 귀족들의 사냥터로 인기 있던 곳으로 많은 왕들이 찾아왔다.
숲은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수목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길을 따라 난 산책로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찾아 콩피에뉴 주민뿐만 아니라 파리 사람들이 많이 찾는 숲이다.
콩피에뉴 숲은 휴식처이지만 이면 속에는 세계 1.2차 대전의 증인으로 아픔을 기억하는 숲이기도 하다. 1918년 11월 11일,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1차 세계대전 정전협정이 숲에 세워져 있던 기차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의 승자는 프랑스였고, 기념으로 기차는 파리에서 보존 중이었다.
이어 제 2차 세계대전의 정전협정이 1940년 6월 21일에 같은 장소에서 체결되었다. 이유는 히틀러가 첫 협정 때 서명했던 객차가 파리에 보존 중이던 것을 콩피에뉴 숲으로 옮겨와 똑같은 장소에서 오전 5시에 문서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히틀러 성격의 단편을 엿보는 일화로, 히틀러는 제 1차 세계대전의 협정의 굴욕을 되돌려 주기위해서 독일의 승리를 확인하는 장소로 선택했던 것이다.
지금은 이 협정의 장소를 ‘휴전광장’이라 부르고 전시관과 종전기념비등이 들어서있어 전쟁이 없는 평화를 기원한다.
찾아가는 방법 : 파리 북역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