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복권소설’ 연재

 

뉴스로=이계선 작가

 

 

5사단장 시절부터 윤필용을 알게 된 박정희는 가는 곳마다 그를 심복으로 데리고 다녔다. 윤필용은 20년간 박정희를 그림자처럼 보좌한 최측근이다. 이후락정보부장 박종규경호실장 김재규보안사령관 윤필용수경사령관은 권력 4인방이었다. 원래 청와대권력의 축으로는 대통령비서실장이 1번이었다. 그런데 비서실장 김정렴은 민간인이라서 그런지 권력에 욕심이 없었다. 10년 가까이 최장수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도 한번도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권력4인방은 1:1로 유대를 맺어 힘을 보탰다. 이후락정보부장이 윤필용수경사령관과 손을 잡자 박종규경호실장은 김재규보안사령관과 손을 잡았다. 4인방 중 윤필용의 무용이 볼만했다.

 

육사 8기중 제일먼저 별을 딴 윤필용은 지략과 배짱이 대단했다. 청와대에 불려가 대통령과 마주하면 별을 네개씩 단 대장들도 오금이 저려 쩔쩔맸다. 그러나 별 두 개짜리 윤필용은 대통령과 맞담배를 피면서 할 말을 다하곤 했다. 박정희는 국방부장관과 참모총장을 지명할 때 윤필용의 의견을 물었다. 장군진급명단도 육본에서 짜는 게 아니었다. 수경사에서 윤필용소장이 참모장 손영길준장과 의논하여 명단을 올려 보내면 그대로 통과됐다. 새해가 되면 육군참모총장과 대장들이 수경사로 찾아와 윤필용소장에게 세배를 드리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경사를 필동육본이라 불렀다. 필동육본이 후암동육본보다 힘이 더 셌다.

 

윤필용이 안하무인으로 나가자 보안사령관 김재규가 약점잡기에 나섰다. 수경사사령관실에 몰래 도청장치를 한 것이다. 이를 눈치 챈 윤필용은 발끈했다. 헌병대를 풀어 도청장치를 뜯어버리고 김재규의 불법행각을 만천하에 폭로해버렸다. 박정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김재규를 3군단장으로 쫒아버린다. 그리고 강창성을 보안사령관으로 불러들인다. 그 후부터 윤필용의 독주는 하늘을 찔렀다. 윤필용의 참모장 손영길준장도 덕분에 잘 나갔다. 주군을 모시고 육본의 장성인사를 맘껏 주물렀기 때문이다. 손영길은 육사 11기로 하나회회원인데 전두환을 제치고 먼저 소장이 됐다.

 

윤필용은 박정희를 신처럼 받들었다. 자기집 대청마루에 박정희사진을 걸어놓고 신주 모시듯 했다. 밖에서 들어오면 맨 먼저 사진에 대고 거수경례를 했다. 사실을 전해들은 박정희는 어쩐지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무서운 놈이로구나. 저런 놈이 마음만 먹으면 날 밀어내고 권력을 찬탈하겠지. 암, 윤필용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쿠데타로 권력을 움켜쥔 박정희는 군대를 제일 무서워했다. 똑똑한 놈들은 자기처럼 야심을 불태우고 있을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하들이 쿠데타를 일으킬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부하들 중에 쿠데타를 일으킬 만한 인물이 윤필용밖에 없었다. 윤필용은 자기만큼 똑똑한 놈이니까.

 

(윤필용이 맘만 먹으면 정권찬탈은 식은죽 먹기지. 난 겨우 200명 병력으로 5.16쿠데타를 일으켰다. 수경사령관 윤필용은 경복궁경비단 현저동경비단에다 필동사령부 본부병력을 합치면 수천명이 넘는다)

 

 

윤필용.jpg

윤필용(왼쪽사진)은 박정희를 신처럼 받들었다 <유투브>

 

1군단을 시찰하던 어느 날 박정희는 육사8기 장군들과 술을 마셨다. 윤필용은 육사 8기였다. 박정희는 취중에 실언(失言)인지 취언(醉言)인지 횡설수설했다.

 

“너희들, 내가 윤필용만 사랑하면서 끼고 돈다고 섭섭하게 생각 마. 이놈들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놈아가 누군지 알아? 윤필용이야 윤필용”

 

“?....”

 

박정희는 윤필용을 제거할 구실을 찾는 눈치였다.

 

1972년 4월. 서울 남산에도 평양 모란봉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봄이 오는 길목을 연게 이후락이었다. 박정희대통령은 이후락정보부장에게 김일성을 만나보고 오라고 밀사로 보낸다. 이후락은 고민한다. 10년전 황태성사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1961년 김일성은 황태성을 밀사로 내려 보냈다. 박정희를 만나 남북통일 문제를 의논하고 돌아오라는 칙사역할 이었다. 황태성은 박정희의 젊은 날의 멘토였다.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박정희는 셋째형 박상희를 제일 좋아했다. 황태성은 박상희의 친구다. 경기고보를 나온 황태성은 박상희와 짝을 이룬 경북지역의 엘리트 공산주의자였다. 형을 따라다니다 황태성을 알게 된 박정희는 황태성을 멘토로 모셨다. 초등학교교사를 그만두고 만주 일본육사로 갈 때도 황태성의 조언을 들었다. 황태성의 추천을 받아 남로당에 가입했다. 형제요 은사같은 황태성이다. 6.25를 만나 박상희는 국군에게 사살당하고 황태성은 월북한다. 박상희는 죽어서 김종필의 장인이 되고 황태성은 북한에서 장관을 지낸다. 황태성은 박정희의 젊은 날의 우상이었던 것이다.

 

당시는 남북간에 연락망이라는 게 없었다. 그래서 황태성은 간첩처럼 잠입으로 내려와야 했다. 몰래 내려온 황태성은 여관에 몸을 숨긴채 박정희에게 연락했다.

 

‘평화사절로 내려온 젊은 시절의 멘토를 박정희는 반갑게 만나주겠지‘

 

박정희는 황태성을 모른체 했다. 만나주기는커녕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켜버렸다. 김일성은 이를 갈았다.

 

“적장이 보낸 사절단을 첩자로 몰아 사형시키다니. 세계전사에 없는 비굴하고 야비한 짓이다. 어디 두고 보자!“

 

그런데 이번에는 박정희가 이후락을 평양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후락은 몸서리를 쳤다.

 

‘김일성이가 나를 만나줄까? 황태성의 원한을 갚아주겠다고 간첩으로 몰아 죽일 것 아닌가?’

 

이후락은 고민했다. 그래도 가야한다. 황태성과 반대전략을 짰다. 정공법을 쓰기로 했다. 몸을 숨기지 않았다. 드러내놓고 판문점 북측사무소 문을 두두렸다.

 

“난 대한민국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오. 김일성주석을 만나러 평양으로 가는길이니 길 안내 좀 해 주시오”

 

깜짝 놀란 그들은 평양 주석궁으로 보고했다. 김일성은 이를 갈았다.

 

“10년전에 죽은 황태성의 원수를 갚아줄 기회가 왔구나. 오냐, 그 자를 주석궁으로 불러드려라”

 

이후락이 호랑이굴속으로 들어서자 김일성이 성난 호랑이처럼 펄펄뛰었다.

 

“공안부장, 당장 저놈을 끌고나가 10년전 황태성동지가 당했던 것처럼 처형하시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 했소”

 

이후락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내 김일성주석을 산천을 울리는 백두산호랑이로 알고 찾아왔소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벌벌 떠는 생쥐새끼로군요. 내 이럴줄 알고 청산가리를 준비해 왔소. 북조선의 손에 죽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어서도 대한민국의 시체로 남겠소”

 

말을 마친 이후락이 청산가리를 빼어들었다. 김일성이 달려들어 뺏었다.

 

“박정희대통령은 참으로 복이 많은 분이오. 이후락정보부장 같이 유능하고 용기있는 참모를 갖고 있으니 말 이외다”

 

그리고 김일성은 이후락을 포옹했다. 김일성의 포옹인사는 아무에게나 하는게 아니다. 쏘련의 후르시초프, 중공의 모택동, 그리고 캄보디아의 국왕 시하누크 같은 특별국빈에게 하는 최대 환영인사다. 그걸 한국의 대통령도 아닌 장관급인 정보부장에게 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김일성은 입이 찢어지게 찬사를 늘어놨다.

 

“불원천리하고 평양까지 찾아온 이부장이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수야 없지요. 내,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공동성명을 선물 하겠소”

 

이후락은 개선장군으로 돌아왔다. 3개월 후 역사적인 남북 “7.4공동선언”이 발표된다. 이후락이 이끌어낸 “7.4공동선언”은 김대중의 “6.15공동선언” 노무현의 “6.15공동선언”의 모체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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