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 기사회생..김재규복권소설
뉴스로=이계선 작가
이후락이 평양을 다녀오자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통일의 기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후락의 인기가 천정을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박정희는 심기가 불편했다.
(김일성은 나보다 한수 위 로구나. 나는 그가 보낸 밀사를 죽여버렸다. 그런데 그
는 죽이기는 커녕 극진히 대우해주고 선물까지 주어 살려 보내다니!)
무사 귀환한 이후락은 스타가 됐다. 수경사령관 윤필용이 이후락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환영파티를 마련했다. 술기운이 거나하게 차오르자 윤필용이 주정을 부렸다.
“형님, 이제 형님이 대통령이 돼야 해요. 각하는 너무 늙고 노쇠해버렸어요. 54살이면 늙은것도 아닌데 젊은 여자들을 끼고 너무 주색에 빠져 지내다 보니 폭삭 늙어 버렸어요. 12년이나 해 먹었으니 이제는 은퇴하여 물러날 때가 됐습니다. 그대신 형님이 대통령이 될 차례입니다. 그 옛날 신라 김춘추가 그랬지요. 적국 고구려에 올라가 평양성에서 연개소문을 만나고 돌아와서 신라왕이 됐어요. 형님도 적국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무사 귀환했으니 대통령이 돼야지요”
취중 횡설수설이었다. 이 말이 어떻게 신범식의 귀에 들어갔다.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문공부장관을 지낸 신범식은 서울신문 사장으로 있었다. 한직으로 밀려난 신범식은 박정희의 골프파트너가 되어 박정희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박정희와 코스를 돌던 신범식은 괜히 입이 간지러웠다. 무심코 흘리는 말을 했다.
“각하께서 이후락에게 대통령자리를 물려주신다면서요?”
“뭐가 어째?”
박정희는 깜짝 놀란다. 자초지종을 들은 박정희는 골프채를 내던지고 청와대로 돌아왔다. 보안사령관 강창성을 불러 윤필용수사를 지시했다. 전임 김재규보안사령관 시절부터 보안사와 수경사는 앙숙이었다. 강창성은 벼르고 기다리던 칼을 뽑아 들었다. 윤필용을 수사하다 보니 하나회가 불거졌다. 물속에서 몰래 잠수하던 하나회였다. 윤필용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면위로 모습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각하, 윤필용이 수경사권력을 믿고 오만방자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윤필용에게는 수경사 말고 하나회라는 거대한 사조직이 있습니다. 윤필용은 하나회와 손을 잡고 군 인사권을 좌지우지하여오고 있었습니다. 하나회의 실체가 이번에 들어났습니다. 하나회는 후원회와 회원제로 구성돼 있습니다. 후원회는 윤필용소장 황영시중장 차지철중장 유학성중장입니다. 회원은 소장급으로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손영길 정호영 박준병, 준장급으로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대령급으로는 장세동 허화평 허삼수 김진영....”
“그만”
박정희는 명단발표를 중단시켰다. 박정희도 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삼별초가 하나회인데 모를리가 없었다.
강창성이 눈에 불을 키고 윤필용을 수사했지만 정부전복 쿠데타계획은 아니었다. 취중 실언에 불과했다. 그래도 박정희는 이참에 윤필용의 군복을 벗기고 싶었다. 윤필용소장과 손영길준장을 잘랐다. 죄목이 엉뚱했다. 반란죄가 아니라 부정축재로 몰아 15년형을 선고했다. 감옥에 넣었다가 얼마 있다가 슬며시 빼줬지만.
강창성은 이참에 하나회를 뿌리 뽑자고 진언했다. 박정희도 솔깃했다. 그러자 전두환을 비롯한 소장들이 영남선배 서종철참모총장과 박종규경호실장을 찾아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영남출신 장군들과 회동한 서종철과 박종규는 박정희에게 호소했다.
“각하, 하나회를 뿌리 뽑는 건 영남군맥을 도태하려는 강창성의 계략에 넘어가고 마는 꼴이 됩니다. 하나회는 80%이상이 영남인맥입니다. 하나회를 잘라 내면 지금 각하를 떠받들고 있는 영남군맥의 씨를 말리게 되고 맙니다. 각하의 발등을 찍는 악수(惡手)가 됩니다. 각하 그리하지 마십시오”
모든 독재자가 그렇듯이 귀가 얇고 의심이 많은 박정희다. 그는 깜짝 놀란다. 수사의 방향을 얼른 180도로 바꿔버린다. 강창성을 잘라버린다. 휘발유를 팔아먹었다는 죄목을 뒤집어 씌워 강창성소장을 구속하고 옷을 벗겨 버린다. 그리고 서울외곽 9사단장실에서 퇴역 당할까봐 벌벌 떨고 있는 전두환준장을 서울로 불렀다.
1950년의 전두환 www.ko.wikipedia.org
(이런 판국에 전두환을 살려주어 중용하면 목숨걸고 충성하겠지!)
하나회가 만천하에 들통 나 목이 잘리는 줄 알고 설설 기어 들어온 전두환에게 뜻밖의 낭보가 떨어진다.
“전두환 준장을 보안사령관에 임명한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파격은 계속된다. 전두환에게 별을 하나 더 달아준다. 그리고 수경사가 누렸던 정치권력을 보안사에게 넘겨준다. 그것뿐이 아니다. 박정희는 희한한 법령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유고를 당하여 죽으면 보안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수사를 받는다. 이는 대통령령이다”
본인도 모르게 몇 년 후에 일어날 10.26의 최후를 준비한 꼴이 되고 말았다. 전두환소장의 보안사령관취임으로 하나회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승승장구한다. 소장들은 서울 외곽사단장을 차지했다. 준장들은 서울시내 공수단과 수경사 경비단장을 독식해버렸다. 전군의 정보망과 보안시설은 하나회회원들이 장악했다.
하나회를 척결하려다 역공을 맞은 강창성은 퇴역후에도 하나회의 미움을 받는다. 전두환이 집권하자 깡패로 몰려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기도 했다. 야당 국회의원이 되어 전두환 노태우를 국회청문회에 세운 건 훗날일이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