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은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으로 유네스코가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루아르 계곡에 있는 여러 고성들 중 하나이다.
우람한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순백의 드레스로 치장한 고운 신부의 설렘으로 다가서는 슈농소 성이 동화 속의 나라에 들어오라는 듯 서 있다.
성은 강 위에 다리처럼 세워져, 석조 아치교가 건물 하단을 지탱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로 기다란 갤러리 건물과 장방형의 본채가 남북으로 연결되어 강을 가로지며 서 있는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다. 이렇게 자리한 성은 강물 위에 떠있는 셰르(Cher)강에 반영되어 한층 더 고아한 느낌으로, 물속의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진 나르시스를 보는 듯 아름답다.
슈농소 성의 주인은 6명의 여인들이 성주였기에 ‘여섯 여인의 성’으로 불리는데, 여성주 중에서도 앙리 2세의 왕비였던 카트린 드 메디치와 왕의 연인이었던 디안 드 프와티에의 사랑과 증오가 긴 매듭으로 얽혀있다.
디안 드 프와티에와 카트린 드 메디치의 악연
앙리 2세로부터 슈농소 성을 선물 받은 디안 드 푸아티에(Diane de Poitiers)는 ‘달의 여신 다이아나’로 비유될 정도의 절세미인이었다. 디안은 15세 때 39세 연상인 아네의 영주 루이 드 브레제(Louis de Brézé, seigneur d'Anet)와 결혼한다. 루이는 샤를 7세의 손자이다.
디안과 루이 사이에는 2명의 딸, 프랑수아즈 드 브레제(Françoise de Brézé)와 루이즈 드 브레제(Louise de Brézé)가 있다.
루이 드 브레제의 생존 시부터 디안은 클로드 드 프랑스(프랑수아 1세의 첫 왕비)의 시녀로 일하며 궁전을 출입했고 클로드가 죽은 후에는 루이즈 드 사부아(프랑수아 1세의 어머니)를 모셨고, 그 다음 엘레오노르 도트릿슈(프랑수아 1세의 2번째 왕비)의 시녀가 되었다. 그러다 디안은 프랑수아 1세의 명에 의해 12살이 된 앙리2세의 가정교사로 가깝게 지냈으며, 19살이 된 앙리 2세와 39살이 된 디안은 연인사이가 되어 디안은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서게 된다.
지적이며 정치적이었던 디안은 앙리 2세의 평생친구로, 연인으로 그의 인생에 영향력을 끼치며, 왕비에 버금가는 정치권력을 누리며, 1553년에는 왕비 다음 서열인 발렝티누아 공작부인(duchesse de Valentinois)의 작위를 받기도 한다.
앙리 2세는 디안을 위해서 아네 성(Château d'Anet)을 지었고, 왕실 소유의 아름다운 슈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도 디안에게 선물로 주며, 왕실보다 이곳에서 디안과 머무르며, 마상 창시합에서 창에 눈이 찔려 죽을 때까지 25년을 그녀와 함께했다.
반면 앙리 2세의 왕비인 카트린 드 메디치에게 디안은 삶의 고통이요, 시련이었다. 카트린 드 메디치는 이탈리아 메디치가문의 자손으로 1519년에 태어나 출생 직후 부모를 잃고 피렌체의 정치상황에 의해 수녀원에 감금되기도 하고 추방을 당하기도 하며 어린 시절부터 시련 속에서 살았다. 그녀가 프랑스에 오게 된 것은 이탈리아의 문화를 사랑하던 프랑수아 1세에 의해서이다. 프랑스에서의 카트린은 명문의 메디치 가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상인의 딸이라는 조롱을 들어야했고, 결혼 한지 10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해 편치 않은 시간에 앙리 2세와 디안의 관계로 이중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 10년 만에 그녀는 10명의 자식을 낳았고, 앙리 2세가 슈농소 성에 주로 머물 때 궁중에 머물며 자식들을 교육하며 지냈고, 그녀의 자식들은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 마고로 유명한 마그리트 드 발루아등이 프랑스 왕가를 계승하게 된다.
그녀의 오랜 삶은 고통은 1559년 앙리가 마상시합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자마자 그녀가 지배권을 장악하고, 디안이 왕을 만나는 것을 제한시키며 막을 내리게 된다. 앙리 2세가 부상으로 생사의 고통에 시달리는 10일 동안 왕을 간절히 보고싶어 한 디안을 못보게 하는 것으로 카트린은 바로 복수의 칼을 빼들었고, 왕이 디안에게 선물했던 물건들의 목록을 작성하게 해, 디안에게서 모든 것을 반환받았다. 또 왕이 죽었을 때에는 장례식에도 초청하지 않았다. 이어 디안을 슈농소 성에서 추방하고 초라한 쇼몽 성(Château de Chaumont)에 머물게 한 후 자신이 슈농소 성에서 살았다. 디안은 쇼몽에 잠시 머물다 아네에 있던 자신의 성에서 외부와 일체의 접촉 없이 조용하게 말년을 보내다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슈농소 성의 역사
슈농소 성은 1513년 샤를 8세, 루이 12세, 프랑수아 1세 때 재정관을 지낸 토마스 보이에(Thomas Bohier)와 그의 부인인 카드린 브리소네 (Katherine Briconnet)가 요새화한 마르케 가문의 옛 물방앗간 자리에 4개의 탑을 갖춘 단순한 장방형의 아성으로 지어졌고, 마르케 탑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세워졌다.
성의 건축은 토마스 보이에가 직무에 바빠 참여하지 못하고 그의 부인인 브리소네의 지휘하에 섬세하면서 우아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1521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보이에는 1524년에, 부인은 1526년에 세상을 떠나 이 성에서 오래 살지 못했다. 성에는 이들 부부의 이니셜인 토마스 보이에를 뜻하는 이니셜 ‘TB’와 카트린 브리소네의 이니셜인 ‘KB’가 성의 곳곳에 새겨져 성의 첫 주인을 기리고 있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인 앙투안 보이에 (Antoine Bohier)가 유산으로 물려받지만 공금횡령으로 거액의 벌금을 물게 되면서 빚더미에 앉게 되고, 결국 1535년에 성을 프랑수아 1세에게 양도하였다. 프랑수아 1세의 뒤를 이어 1547년 왕위에 오른 앙리 2세가 사랑하는 여인 디안 드 푸아티에게 사랑의 증표로 슈농소 성을 선물로 주었다. 디안은 이곳에 머물며 1556년-1559년 사이에 다리를 지었고, 그 후 앙리 2세가 세상을 떠나자 왕비인 카트린 드 메디가 살았다. 그녀는 두 연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새로이 손질을 하며, 다리 위로 웅장한 갤러리를 건축했다. 갤러리는 흑백 바둑판 위 바닥에 들보가 밖으로 노출되어 있다.
카트린은 죽을 때 이 성을 앙리 3세의 미망인 루이즈 드 로렌(Louise de Lorraine)에게 소유권을 넘겨주었고, 다시 앙리 4세가 그의 연인 가브리엘 데스트레(Gabrielle d'Estrées)에게 주었다. 이어 많은 예술가들과 계몽주의 사상가인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와 두터운 친분을 맺으며 후원하던 뒤팡(Dupin)부인이 18세기에 성주가 되었다.
슈농소 성은 민중에게도 존경을 받던 뒤팡 부인의 명성 덕택으로 프랑스 대혁명 때 피해를 입지 않았다. 성의 마지막 여주인은 플루즈(Pelouze) 부인으로 세월에 낡아가는 슈농소 성을 복원하고 관리를 해 지금의 슈농소 성으로 남게했다.
슈농소 성의 박물관에서는 옛 여주인들의 흔적과 성에 관련된 사람들을 밀랍 인형이 역사의 발자취를 쉽게 따라 갈수 있다.
슈농소 성안 탐색
성의 내부로 들어가면 르네상스 양식의 가구, 16~17세기의 타피스트리, 루벤스, 틴토레 등의 유명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디안 드 푸아티에의 방 (Chambre de Diane-de-Poitier)은 디안 드 푸아티에와 앙리2세가 사용하던 방으로 카트린 드 메디치가 복수를 하려한 듯 방에는 카트린 드 메디치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녹색의 방 (Cabinet Vert)은 카트린 드 메디치의 서재로 ‘녹색의 방’이라 불리는 이유는 16세기 브뤼셀에서 제작된 녹색의 타피스리 ‘쥐방울 꽃(Aristoloche)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쥐방울꽃‘은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조화가 아름다운 가운데 신대륙의 동물과 식물들이 담겨있다. 녹색의 방 옆에 딸린 독서실(La Librairie)은 카트린 드 메디치가 책을 읽던 곳으로 강과 정원이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다.
프랑스와 1세의 방은 슈농소 성의 방들 중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벽난로가 있고, 그 위에는 “만약 성이 완공된다면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S’il vient a point, me soviendra)“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다섯 왕비의 방 (Chambre des Cinq Reines)은 카드린 드 메디치의 두 딸과 세 며느리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방으로 사치스럽고 호사스러워 왕족 여인들의 향기가 나는 곳이며 판화의 방 (Cabinet d’Estampes)은 1560년부터 19세기까지의 슈농소 성에 관련된 판화나 스케치등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다.
성의 정원은 오른쪽은 디안 드 푸아티에 정원으로 방사성 대칭형으로 꾸며져 있고, 왼쪽으로는 카드린 드 메디치가 살기 시작하면서 만든 정원이다.
성과 정원을 둘러보고 다시 긴 가로수길을 빠져 나올 때,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겹쳐 울리듯 긴 여운이 남는 슈농소 성은 내일도 아름다운 자태로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다. 사람은 가도 역사속의 건축물은 인간사를 고스란히 쟁여놓고 아무렇지 않게 시치미를 뚝 떼면서 말이다.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