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직무 스트레스로 심리적, 정서적 탈진상태에 이르는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 조만간 프랑스에서 직업병으로 공식 인정될 방침이다. 지난 5월 28일 국회는 번아웃 증후군으로 병명이 확정된 근로자의 병가휴가와 의료보험처리에 관련된 법안마련에 착수했다.
번아웃은 근로자가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심신이 무기력해지면서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불능상태로, 마치 불타버린 성냥개비와 같다하여 생겨난 표현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보고에 따르면, 번아웃 증세를 지닌 프랑스인은 320만 명으로 집계된다.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경각심이 본격적으로 이슈화되어 국회의 입법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한 것은 지난 3월 24일 150명을 태운 에어버스 A320 추락사고가 계기가 된다.
28세 부조종사 안드레아스 루비츠가 프랑스 알프스산맥지대에 여객기를 고의로 추락시킨 정황이 밝혀졌을 때 세상은 경악했다. 문제의 부조종사가 심한 조울증을 앓았으며 추락 전날까지 정신과치료를 받았고, 2009년 조종사 교육을 받을 당시 번아웃 증후군으로 6개월 휴가신청을 냈던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150명의 생명을 앗아간 여객기 추락원인을 부조종사의 번아웃 증후군으로 지목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번아웃 증후군을 직업병으로 인정하여 환자를 보호 관리하고 사회전반에 미칠 영향력을 최소화시켜야한다는 여론이 생겨났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75%가 찬성입장을 표명했다.
▶ 번아웃 증후군 증세
최근 연구보고에 의하면 CEO 3명 중 1명이 번아웃 증세를 지닌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70%가 심신의 탈진현상을 호소하며, 50%는 주말에도 자택에서 업무처리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보통 1주일에 50시간 이상의 업무에서 번아웃 주의보가 내려진다. 그러나 번아웃은 암과 같은 질병처럼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정확하게 악화증세를 규정짓지 못한다. 누구나 저녁에 일터에서 돌아오면 심신이 피곤하고 탈진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 개인에 따라 증세를 주관적으로 판단해야하며, 정신분석학자 내지 심리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측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번아웃 증세가 심각해지면 일상생활에서 먼저 변화가 찾아든다. 옷차림이나 외모에 무관심해지며,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여가활동이 줄어들고 사회적으로 고립한다. 정서적으로 삶의 즐거움을 상실한 채 세상만사가 귀찮아지고 무의미해지면서 우울증, 무기력, 피해망상, 걱정근심에 빠져든다. 쉽사리 짜증내거나 신경질내고 화내는 등 감정기복도 심해진다. 신체적 현상은 심장병으로부터 위경련, 소화불량, 두통, 알레르기, 근육경련, 현기증, 불면증세 등을 동반한다. 여기에서 번아웃 증세는 조울증과 혼동되기도 한다.
직무와 관련되어 전근이나 업무변경, 신임상사의 부임 등 새로운 근로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력함을 느끼는 경우. 거래처손님, 동료, 상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고조되고 언어폭력마저 행사하는 경우.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빠져드는 경우. 일의 보상심리를 얻기 위해 동료들을 상대로 극도의 경쟁심을 품는 경우. 결코 끝마치지 못할 일거리를 앞에 두고 집요하게 매달리는 경우. 밤에도 업무를 생각하느라 잠을 못자는 경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업무를 처리하면서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는 경우. 스트레스에서 탈피하기 위해 알코올, 담배, 마약에 의존하는 경우 등, 여러 증상들이 동시에 나타나 지속된다면 일단 번아웃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쉽사리 노출된 증상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의 건강을 담당하는 의사, 간호사 혹은 조산원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번아웃에 쉽사리 노출되었다는 연구보고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에서 최근 10년 사이 노동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환자, 가족들과의 마찰, 갈등으로 병원근로자들의 직무 스트레스는 가중되고 있다는 추세이다. 병원종사자 70%가 토요일 근무, 64%가 일요일 근무, 33%가 야간근무가 요구되는 실정이다. 무거운 근무조건과 더불어 환자들을 정신적, 심리적 차원에서도 보살펴야하는 임무에 이중고를 호소하는 이들이 85%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의 직무 스트레스는 막중한 임무와 책임감, 동료, 상사, 고객들과의 갈등, 경쟁관계에서 기인된다. 일의 성취욕과 보상심리를 만끽하지 못한 채 직장상사나 기관에 이끌려 기계처럼 일하며 조직사회의 희생양이라는 불만감이 찾아들 때 번아웃에 더욱 쉽사리 빠져들 수밖에 없다. 가령 말단직 근로자들에게 주로 찾아드는 증세이다.
▶ 자살로 이어지는 정신질환
현대사회는 의학의 발달로 암과 같은 불치병은 치유되고 있지만,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개인의 고립감정과 고독감이 증폭되고 정신질환자들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번아웃도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느린 속도로 진행되며 각 개인에 따라 정도차이가 있다.
번아웃은 개인에 따라 몇 달 혹은 몇 년 지속되며 극심해질 경우 업무활동은 불가능해진다. 가령 의사는 환자를 방치해버리고, 상인은 단골손님에게도 귀찮다는 듯 아무 것이나 팔아치우며, 축산업자는 가축들을 내팽개쳐버린다. 번아웃은 심신에 구멍이 뚫린 듯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무의미함과 공허함이 느닷없이 찾아드는 현상으로 마치 고공하는 비행기에 구멍이 뚫려 추락하는 현상과도 비교된다.
번아웃 증후군이 장기간 지속되면 자살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터에서 자살하는 근무자들도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들의 30% 이상이 번아웃 증후군을 앓았다는 연구보고이다.
번아웃 증후군의 극단적인 상황은 바로 에어버스 A320 부조종사처럼 탑승객들의 소중한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기를 추락시켜버리는 경우이다. 정치, 종교적인 명분으로 테러를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들 못치 않게 사회전반에 미치는 결과가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
번아웃 증후군은 약물치료 등 정신과 치료로 개선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스트레스 요인에 강박관념을 갖지 말고 긍정적 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임상심리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더 나아가 극도로 중압감을 안겨주는 일거리 앞에서 차라리 냉정하게 손을 떼고 잠시나마 휴식을 섭취하라고 권고한다. 자신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만 해도 불타버린 성냥개비처럼 심신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는 상태로는 악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에서야 프랑스 국회가 번아웃 증후군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직업과 관련하여 번아웃을 위험한 질병으로 주목한 것은 1981년부터이다. 2014년 1월에도 국회에서 번아웃을 직업병으로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7월에는 상원이 이 정신질환이 현대사회에 끼치는 위험성을 인정했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잠 안자고 공부하는 수험생들에게도 번아웃 증후군은 얼마든지 찾아들 수 있다. 교황청도 사제들의 번아웃 신드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직업병이라고 하지만 일거리를 찾는 무직자들도 번아웃에 노출되어있다.
각 개인마다 자신의 한계선을 알고 노란 선을 넘지 않는 요령이 필요하다. 인간의 에너지는 배터리처럼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