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시청과 샤뜰레 번화가, 그리고 센강 사이를 연결짓는 요충지에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생 쟈크탑은, 세월의 풍파에도 꿈쩍하지 않고 파리 시내의 오랜 역사를 지켜 보아온 산증인이다.
하지만 개선문과 에펠탑, 노틀담 성당의 위세에 눌려 관광책자에서조차 이름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랜 파리지앙들에게도 그 이름이 생소하다.
파리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지만, 54m로 탑치고는 낮은 높이에 큰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소박하다거나 화려함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18세기 후로 주변의 성소 건물이 무너지며 혼자 남은 탓에 조금 쓸쓸해 보일 뿐인 것이다.
오늘날에는 벤치와 나무들로 가득한 작은 공원으로 둘러싸인 생 쟈크 탑, 올 여름에는 그가 누구인가, 어떤 역사를 겪어왔는가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난 해에 이어 올 해에도 파리시는 대중에게 탑의 문을 특별개방해, 지난 세월의 흔적들을 낱낱이 보여주고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파리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꿋꿋하게 견디며, 혼자 살아 남은 탑
12세기 초반에 생 쟈크 교회가 센 강의 북쪽 부근인 샤뜰레 지구에 들어서게 된다. 13세기에 센강 남부의 생 쟈크 교회와 이름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생쟈크 드 라 부쉬리(Saint Jacques de la Boucherie)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교회의 확장 공사가 15세기부터 시작되며 넓은 성소가 생긴 것은 물론 교회는 당시의 건축양식에 맞게 고딕 양식으로 새로 거듭난다.
탑의 기원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딕 양식이 이미 기울어 가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꽃양식을 그대로 반영한 종탑을 탄생 시켰다. 생 쟈크 탑은 종을 울리는 명확한 목표를 두고 지어져 주민들에게 예배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었다. 18세기가 되며 교회가 파괴되었으나 생 쟈크탑 만은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성스러운 교회가 있던 장소는 벼룩시장 등의 상업적인 장소로 전락하였고 탑의 종 또한 소멸되게 되었다.
상업의 중심지역으로 변모한 샤뜰레 동네
현재 상업의 중심이자 번화가의 상징인 샤뜰레 지구는 오스만 양식의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 서 있다. 생 쟈크 탑이야말로 중세시대의 파리를 상징하는 샤뜰레 지구의 드문 기념물이다. 생 자크 교회가 처음 들어서던 12세기에는 샤뜰레 인근은 정육점들로 가득 찬 구역이었다. 후에 교회 이름에 드 라 부쉬리가 붙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1648년에는 프랑스의 수학자 파스칼이 기압 실험을 했던 곳으로서 탑의 중심에 그의 기념비를 만나 볼 수 있다.
파리를 한 눈에... 특별한 전망
생 쟈크 탑은 54m 높이로 좁은 300개의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종은 남아 있지 않으나 가까이서 보지 않고는 정교함을 알 수 없는 후기 고딕양식의 조각상들을 올라가며 만나 볼 수 있다.
정상에 도착하여 만나는 파리의 전망은 또 한 번 새롭기만 하다. 건물 15층 정도의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높이에서 보는 파리는 우뚝 솟은 에펠탑과 몽빠르나스 타워에서 보는 전망과 확연히 다르다. 몽마르트에서도 그렇듯 대부분의 파리 전망대에서 보는 시내는 미니어처를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생 쟈크 탑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마치 새가 되어 파리 건물들의 지붕 위를 바로 날아가는 듯하다.
또한 모든 역사적 장소들의 중심에 우뚝 서 있어 에펠탑, 시청, 노틀담, 몽마르트르의 모든 상징적 건물들을 모두 한 자리에서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한위클리 / 계예훈 artechris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