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헌쯔맨 자서전을 읽고
죤 헌쯔맨씨는 닉슨 대통령시절에 백악관의 비서관으로 재직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지명자를 반대하는 한 연방하원의원이 있었는데 하루는 비서실장이었던 H.R. 홀더맨이 헌쯔맨을 불러서 그 하원의원이 소유했었던 공장에 스파이를 침입시켜서 그 하원의원이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비행을 캐 오라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헌쯔맨씨는 그런 명령을 거절을 했습니다. 물론 비서실장은 몹시 화를 냈고 곧 헌쯔맨씨는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그가 백악관을 떠난 몇개월 후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의 측근 비서관들이 다 의회의 청문회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지만 헌쯔맨은 불려가지 않았습니다.
전화 위복이라고 해야 할지 헌쯔맨씨는 회사를 채려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은 크게 성장을 했습니다. 회사의 간부들과 직원들에게는 철저한 정직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태국에 일본의 미쯔비시 회사와 합작으로 공장을 차렸습니다. 연말에 미쯔비시 회사로부터 $250,000의 청구서를 받았습니다. 그 청구서는 태국정부의 관리들에게 증여한 선물값 중 헌쯔맨 분이라고 하면서 청구를 해온 것입니다.
헌쯔맨씨는 당장 자기의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했고 미쯔비시사는 헌쯔맨씨의 지분을 시장가격보다 3백만 달러나 적게 주고 사갔습니다. 3백만 달러를 잃을 지언정 뇌물은 주지 않겠다는 헌쯔맨씨의 신조때문에 손해를 보면서 지분을 팔았습니다. 그후 머지 않아 아시아에 경제불황이 닥쳐와서 그 공장은 폐쇄되었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영국 런던에서 회사를 합병하는 협상을 했습니다. 협상을 하는 도중에 협상 상대의 부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헌쯔맨씨는 합병을 하는 회사를 2억달러쯤 적게 주고 매입할 수 있었지만 아내를 잃고 슬픔에 잠긴 상대에게 더이상 가격의 양보를 요구하지 않고 그대로 매입을 했습니다. “내가 2억달러의 이득을 보지 못했지만 좋은 친구를 얻게 되었다”고 그는 후에 회고를 했습니다.
헌쯔맨씨는 자기의 모교인 와튼경영대학에 막대한 기부를 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와튼 경영대학은 그에게 수업료를 면제하고 생활비까지 주는 장학금을 주었기 때문에 그 은공을 갚기 위해서이었습니다.
아이다호주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헌쯔맨씨는 어려웠던 과거를 잊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했고 자선단체에 막대한 기부금을 기부했습니다. 그가 속한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95세의 고령에 편안하게 세계를 여행하라고 젯트기를 기부했고 조종사와 승무원의 봉급도 헌쯔맨씨가 주고 있습니다.
한번은 그가 한 대학교의 졸업식에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가 단상에 오르게 되었을 때 행사가 너무 길어서 이미 한시간 반이 자나갔습니다, 청중들은 다 지루한 눈치이었습니다. 그는 단상에 올라가서 졸업생들에게 자기의 말을 따라서 복창을 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있는 가장 귀중한 봉사는………. 우리의 마음속을 깊이 짚어보고………….우리보다 불행한 사람을………..들어 올려주는 일이다………..” 이것이 그의 축사 전부이었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총장을 향하여 “저는 이자리에서 한 학생당 $5000씩 200명에게 장학금을 기부하겠습니다.” 고 말했습니다.
그는 졸업생들과 청중들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스를 받았지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졸업축하 연설을 한 그는 즐거운 마음를 갖고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헌쯔맨씨는 사재를 2억5천만 달러를 드려서 솔트레이크시티에 암 연구센타를 설립했습니다. 자신도 전립선 암을 극복했고 부모와 계모님까지 암으로 사망했는 데 암치료를 연구하는 센타를 설립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했습니다. 헌쯔멘씨는 참으로 멋진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