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타임스 편향보도 논란
뉴스로=노창현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미주한인들에겐 악몽같은 ‘사이구’가 돌아왔습니다. 1992년 4월 29일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폭동이 촉발된 날입니다. 엿새간의 유혈사태로 LA 다운타운은 파괴되었고 53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부상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오래 거주한 한인들은 이날을 ‘사이구’로 부르며 치를 떱니다. 왜일까요. 사이구 폭동으로 코리아타운의 90%가 파괴됐고 전체 피해액 7억1000만달러 중 한인의 피해가 3억5000만달러에 달했기때문입니다.
LA 한인타운은 다운타운의 주요 도로를 따라 길게 뻗어있는 상점들로 이뤄져 무법천지(無法天地)로 바뀌자 순식간에 약탈자의 훌륭한 먹이감이 되버렸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했던 저는 TV를 통해 전쟁터와 같은 화면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미국처럼 치안시스템이 잘 돼 있는 선진국에서 엿새간의 폭동이 방치됐는지 이해가 안갔기때문입니다. 훗날 어이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흥분한 흑인들이 한인타운을 공격하도록 당국이 사실상 방조(幇助)했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흑인폭동의 원인은 로드니 킹(Rodney King) 사건으로 비롯됐습니다. 폭동 1년전인 1991년 3월 2일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이 과속으로 달리다 경찰의 정지명령을 불응하고 달아났습니다. 결국 경찰의 추적에 잡혔지만 완강히 저항하다 4명의 백인경찰관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했는데 공교롭게 이 장면이 한 시민의 비디오카메라에 촬영돼 공개되면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2주뒤인 3월 16일 ‘두순자 사건’이 터집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품점에서 40대 한인업주(두순자)가 흑인소녀 라타샤 할린스(15 Latasha Harlins)가 2달러짜리 오렌지주스를 훔친 것으로 오인해 시비를 벌이다 폭행당하자 업소에 있는 권총으로 살해한 것입니다.
두 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가게 CC-TV에는 돌아선 흑인소녀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이 담겨 있었고 결국 검찰은 살인죄로 16년 형을 구형했습니다. 그러나 판사는 직업적 범죄(Career Criminal)가 아닌 충동살해죄로 5년의 보호감찰과 400시간의 사회봉사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해 11월이었습니다.
두씨의 관대한 처벌은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상대소녀로부터 안면 등을 무지막지하게 폭행당한 사실이 인정됐기 때문입니다. 정당방위는 아니지만 직전까지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폭행을 당했고 과거에 강도 등 범죄피해를 여러번 당한 사실을 상당부분 참작(參酌) 한 판결이었습니다. 그러나 뒤에서 무방비로 총을 맞아 10대 소녀가 사망했다는 점에서 가뜩이나 피해의식이 많은 흑인사회가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이었습니다.
이듬해 4월 로드니 킹 사건 재판에서 백인경찰관들이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흑인사회의 분노를 폭발케 한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로드니 킹이 청각장애인이 될만큼 폭행당했음에도 경찰의 손을 들어준 사법부를 규탄하는 과격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흑인들과 비슷한 처지의 히스패닉들까지 합세한 시위대는 사우스 센트럴 지역의 상가를 부수고 불지르며 약탈하는 등 무법천지가 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폭도를 적극적으로 제압하는 대신 이들이 비벌리힐즈 등 부촌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주요 길목을 철통처럼 막아놓았을뿐 진압을 하지 않았습니다. 폭도들의 ‘해방구(解放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 안에 있었던 것이 한인타운이었습니다.
물론 경찰이 한인타운을 공격하도록 유도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약탈자들은 자연스럽게 한인상가들로 향했습니다. 만일 상가의 주인이 백인 등 유럽 이민자들이었다면 경찰이 수수방관(袖手傍觀) 했을까요. 흑인사회가 두순자 사건으로 한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으니 어느 정도 분노가 풀릴 때까지 놔두자”는 추론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이구 폭동의 원인에 대해 주류언론은 로드니 킹 사건과 두순자 사건을 뭉뚱그리지만 그것은 ‘억지춘향’ 입니다. 두순자 사건은 폭동이 일어나기 6개월전에 이미 평결이 끝났습니다. 즉 화풀이 대상은 될지언정, 폭동을 촉발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로드니 킹 사건은 백인 공권력의 흑인 집단폭행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인종차별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순자 사건은 소수계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비극이고, 피의자가 흑인의 처지보다 나을게 없는 아시안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경찰과 미디어 등 주류사회는 백인들의 뿌리깊은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를 분산, 희석시키는데 한인타운을 효과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결국 한인들은 안팎곱사등이처럼 이중의 피해자인 것입니다.
엿새간의 대혼돈 속에서도 한인들은 똘똘 뭉쳤습니다. 당시 라디오코리아의 긴급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 소식을 청취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폭도들의 공격을 받는 곳에 무엇이든 대적할 무기를 들고 달려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젊은 한인들을 실어나른 한 여성의 이야기 등 많은 에피소드들이 감동적으로 전해집니다.
전쟁같은 엿새가 지나고 한인 업주들은 반평생을 일해 일군 가게가 잿더미가 됐거나 난장판이 된 것을 보고 굵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이구가 남긴 상흔(傷痕)은 아프고 쓰라렸지만 한인들은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났습니다. 비록 후발 이민자로서 불가피한 측면은 있었지만 타인종 이웃을 잘 보듬지 못했다는 자성론도 일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흑인과 히스패닉 등 타민족도 함께 해야 하는 이웃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돈독한 유대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정치인이 없어서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당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한인사회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도록 주류 정치인들을 후원하고 2세들의 공직 진출에도 관심을 쏟았습니다. 시민권을 획득해 미국의 주인이 되고,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등 정치력 신장운동에 눈뜬 것입니다.
4.29 폭동 25주년을 앞두고 LA 시청에서는 25일 시정부 지도자들과 커뮤니티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4.29 폭동의 의미와 과제를 되새기고 상호 화합을 다짐하는 포럼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엔 날 에릭 가세티 시장과 찰리 벡 LA 경찰국장, 데이빗 류 커런 프라이스 마퀴스 해리스-도슨 LA 시의원 등과 함께 데이빗 류 시의원과 로버트 박 가세티 시장실 보좌관, 스티브 강 세바스찬 리들리 가주 하원의원 보좌관 등 한인 정치인들도 참석해 커뮤니티 간 화합을 상징하는 선언서에 서명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때의 상처는 대부분 아물었습니다. 한인들의 주력 업종이었던 리커스토어와 그로서리 마켓, 가발가게 등은 타민족들에게 상당 부분 넘어갔습니다. 4.29가 뭔지 모르는 젊은 한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해결되야 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한인사회의 피해가 알려지면서 전 세계에서 1200만 달러의 성금이 답지한 것도 그렇습니다. 수많은 단체들이 동포들을 대변한다고 나서 듣기에도 민망한 성금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피해자가 아닌데도 피해자를 자처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약 2천명이 500~3천달러의 보상금을 받아갔으나 수백만달러의 용처(用處)를 알 수 없는 등 규명해야 할 일도 적지 않습니다.
LA타임스가 지난 25일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는 제목의 4.29 관련 기사를 통해 흑인 커뮤니티를 보듬었습니다. 그러나 최대 피해자인 한인사회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사속에 ‘두순자 사건’의 흑인소녀 라타샤 할린스 추모행사를 소개하며 ‘한국에서 태어난 업소주인(South Korean-born shopkeeper)’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는 사실을 부각시켰습니다.
이는 4.29 폭동의 원인을 흑인커뮤니티와 한인사회의 갈등으로 몰고 가는 대단히 위험한 접근 방식입니다.
한인들은 LA타임스의 기사가 형평성(衡平性)을 잃은 편파적인 기사라고 입을 모읍니다. 흑인 피해자와 흑인 커뮤니티의 입장을 다루면서 더 큰 피해를 당한 한인사회의 시각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은 은연중 폭동의 원인을 한인사회로 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4.29 폭동을 지나간 일, 아픈 기억으로만 간직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책임 인정과 보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범한인사회 차원에서 4.29 관련 기록물들을 보존 전시하고 폭동의 원인과 전개과정, 문제들을 후세에게 교육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이구’의 교훈을 간직하는 길이요, 그래여 소수계속의 소수계인 우리가 ‘제2의 사이구’를 겪지 않을테니까요.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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