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내가 "하이네"를 만난것이 중학교 때인가 한다
전쟁이 스러져간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영등포 시장모퉁이의
한 노점(露店)에 곰팡내 나는 헌책들이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팔던 시절이다
내가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이광수의 <나의 고백>이었다. 누렇게 바랜 표지부터
너덜 했고, 바로 그 틈새에 손바닥만한 낯선 <하이네 시집>이 보여서 집어들었다
이 두가지 책을 거의 거저다시피 손에 쥐고 돌아 와서 단숨에 <나의 고백>을
일고 혼미(昏迷) 했던 기억이다. 그가 친일파 인지 아닌지 별로 관심이 없다가
<나의 고백>을 보고서야 걱정도 팔자라던가, 고약한 걱정거리가 되었던 기억이다
그런데 <하이네 시집> 은 어땠나
하이네가 누군지도 몰랐고 몇구절 보다가 던져버린 기억이다
고작해야 <방인근의 벌레먹은 장미>와 <마도의 향불> 그리고 <김래성의 청춘 극장>
에 이어서 <이광수의 사랑>으로 넘어 가던 수준의 시절이었다
학교 수업시간에 책상 밑에 놓고 몰래 보다 선생에게 들켜 혼이 났던 기억도 있다
<하이네 시집>을 던저 버렸던 시절이 잠깐 지나간 것은 역시 <방인근의 벌레먹은 장미>
의 공이 크다. 지금도 홀로 웃으며 사춘기가 나에게도 있었구나 실소를 하게 한다
당시에 책방이라고는 영등포구청 옆에 하나 둘 정도 밖에 없긴 했지만, 단골 손님이
되었을 정도로 독서광이 되어 버린 것이 향수되어 눈을 감게 한다
그 시절 중학교 때 읽고 또 읽었던 책들을 지금도 쉽게 기억 되는 것만도 상당 했는데
그후 어느때 부터인가 건방을 떨면서 책 읽기를 소홀이 하고 방황 했던 어제가 그립다
교복 속에 가방과 모자를 감추고 담배 한갑 사들고 명동의 <청동다방>에 숨어들던 때가
있었다. <空超 吳相淳 오상순> 시인을 만나서 노트를 드리내밀던 것이다
지금도 그 노트를 한 친구가 보관 하고 있다는 소식을 얼마전에 들은 바가 있는 옛날 얘기이다
생각과 뜻이 엉망으로 뒤죽박죽 되는가 했더니 한참 세월이 갔나 보다
뒤 돌아보기에도 아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망녕인가 치매 증세인가 모를 일이다
망구(望九)의 5월의 아침에 오늘은 골프도 포기 하고 <벌레 먹은 장미>나 불러 세워 보자
마침 <하이네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에 가난 했던 소년의 어제를 본다
오늘
5월 초하루 아침
커피향이 유난하다
꽃봉오리가 터지고
새들이 노래한 곳으로
불러 대고 있다
벌레먹은 장미
그래서 더 아름다운것은
뜨거운 심장이 터지는 소리
먼 옛날 소년의 이야기
누렇게 바랜 책장에
사랑의 숨소리가 들린다
5월의 숨소리
소년의 가슴에 피고
헐고 찟기운 세월을 보낸다
5월의 사랑 처럼
5월의 고백 처럼
소년의 어제 처럼
2017.5.1.
워싱턴의 신필영
*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Im wunderschonen Monat Mai
- Heinrich Heine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
(하인리히 하이네·독일 시인, 1797-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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