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예기치 않게 급전이 필요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은행대출은 시간이 걸리고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할 지인도 없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결국 전당포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는 한국처럼 민간인이 운영하는 전당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금융기관 크레디 뮈니시팔(Crédit Municipal)이 전당포 업무를 독점적으로 대행하고 있다. 사회복지사업, 신용금융을 겸한 물건저당 대출전문 시립은행이다. 이곳에서 보통 1시간 이내에 물품을 담보로 급전을 차용할 수 있다. 손목시계를 담보로 급전을 빌린 후 24시간 만에 채무를 갚는 사례도 없지 않다. 

프랑스 유력 금융전문지 르 르브뉘(Le Revenu) 11월호에 따르면, 크레디 뮈니시팔 파리 본점에는 저당 잡은 담보물만 1,300만 개에 이른다. 루브르박물관 소장품의 3배가 넘는 숫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당포 업무는 2008년 금융, 경제위기 이후 활기찬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금융전문지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2008년과 2013년 사이에 물품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채무자 수가 2배 이상 늘어났다. 파리본점의 경우, 현재 총 이용거래액은 1억9,500만 유로이며, 채무자는 8만863명으로 이들 중 85%가 여성이다.  



▶ 서민들의 애환을 상징하는 전당포



전당포는 형태가 어떠하든,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찾아가 돈을 빌리는 사채업에서 유래된다. 서울 뒷골목가의 옛 전당포들도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뼈저린 애환이 담겨진 곳이다. 높은 이자율과 인색함으로 인하여 민간인 전당포업자들을 악덕 고리대금업자와 결부시키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 상인]에서도 잘 나타난 부분이다. 베니스의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기한 내에 돈을 못 갚을 때, 살 1파운드를 떼어가겠다는 조건으로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준다. 담보물로서 인간의 살을 저당 잡았다는 점에서 고리대금업자의 잔혹성마저 고발하고 있다. 

‘베니스 상인’ 이야기가 뒷받침하듯, 전당포 역사는 15세기 이태리에서 유래한다. 불어로 전당포를 뜻하는 몽드피에테(Mont-de-Piété)도 이태리에서 비롯된 말이다. 단지 이태리어가 잘못 번역되어 사용된 표현으로, Piété 라는 단어를 Pitié(동정, 자비)로 이해하면 된다. 바로 몽드피에테(전당포)가 크레디 뮈니시팔의 전신이다. 

프랑스에서 전당포의 첫 출현은 1610년 아비뇽. 1612년 교황 바오로 5세는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을 합법화시켰다. 점차 문제가 많아지자 1804년 나폴레옹 1세는 민간인 사이의 사채업을 금지시켰고, 몽드피에테만이 공영 전당포로서 낮은 이자율로 서민들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독점화시켰다. 

이렇듯 크레디 뮈니시팔은 부당한 세금과 악덕사채업자들의 횡포에서 허덕이는 서민들의 민생고를 완화시키고자 생겨난 금융기관이다. 파리 4구 프랑부르주아(rue des Francs-Bourgeois) 거리 55번가에 위치한 크레디 뮈니시팔 본점도 1637년에 탄생된 몽드피에테가 모체이다.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전당포’로 출범된, 파리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은행으로 간주되고 있다. 현재 평일 영업시간은 다른 일반은행과 같으며 토요일도 9시부터 17시까지 근무하고 있다. 

파리본점 이외에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지방의 크레디 뮈니시팔 건물들 중에는 건축학적으로 예술미를 자랑하며, 9월 3번째 주말에 실시되는 ‘유럽문화유산의 날’에 일반인들에게 문을 개방하는 곳도 있다.               



▶ 프랑스의 전당포, 크레디 뮈니시팔



크레디 뮈니시팔에는 담보물의 진품여부와 시장가격을 추정하는 상기직원이 있으며, 경매감정평가요원, 보석감정사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과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즉석에서 돋보기, 끌, 송곳을 이용하여 담보물을 감정하고 성분과 종류, 상태, 진품여부 등을 검증한다. 담보물의 감정평가로 추정된 시장가격에서 50~70%에 해당되는 금액을 대출해준다.   

담보물은 금.은 보석제품, 그림, 조각품, 악기, 만화책, 우표, 고서적, 가구류와 괘종시계, 고가의 골동품 등 다양다색하다. 이 담보대상 품목리스트에서 2008년에는 고급포도주, 2009년 명품의상, 2013년에는 자전거도 포함시켰다. 반면 컴퓨터나 노트북, TV 등은 저당품목에서 제외된다. 

일반적으로 담보물 85% 가량은 목걸이, 팔찌, 반지 등 금, 보석 장신구가 차지하며, 15% 가량은 은제품이나 예술작품이라고 한다. 이들 저당된 귀중품들은 시립은행의 철통같은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된다.

귀중품이 담보물로 저당되면 평균 6개월에서 1년 사이로 환불시기를 계약하며, 매월 이자가 첨가된다. 채무자는 계약기간 내에 언제든지 원금을 환불할 수 있으며, 차용 기간만큼 이자도 가산된다. 

이자율은 각 지역 크레디 뮈니시팔과 차용금액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파리의 경우 2015년 10월 1일자에 정해진 기준을 따르고 있다. 300유로 미만은 4%, 301~1,000유로 미만은 7.8% 이자율이 적용되고 있다. 금융전문지 르 르브뉘 11월호 부록에 따르면, 파리 4구 시립은행 본점을 찾는 이용자들의 평균 채무액은 1,000유로이다.

채무자들 90% 정도는 6개월 내지 1년 사이에 원금과 이자를 환불하고 담보물을 되찾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계약기간 내에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차용기간은 연장될 수 있다. 차용기간을 연장하지도 않은 채 채무불이행 시, 담보물은 시립은행의 소유권으로 넘어가고 경매를 통해 처분된다. 담보물들의 경매낙찰가격이 원금과 이자를 합친 금액보다 많을 경우 그 차액은 채무자에게로 돌아가며, 그 반대일 경우 시립은행이 적자를 고스란히 부담한다. 



▶ 구비서류와 원칙사항들



급전을 차용하러 크레디 뮈니시팔을 찾아갈 때 담보물과 함께 신분증을 제출해야한다. 거주지 증명서도 필요하다. 3개월 이내 발급된 집세영수증 혹은 전기세 등 고지서를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가의 귀중품을 담보로 설정할 경우 영수증이나 진품인정서가 요구된다. 귀중품이 채무자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원칙상 남성은 여자용 귀중품을, 여성은 남성용 물품을 담보로 저당 잡을 수 없다. 

전반적으로 차용 한도 액수는 몇 십 유로부터 1백만 유로까지 가능하다.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현금거래 상한선이 1천 유로라는 점도 상기해둘 필요성이 있다. 2015년 9월 1일자부터 현금거래 상한선이 기존의 3천 유로에서 1천 유로로 낮춰졌다. 부정불법거래, 돈세탁, 특히 테러범들에게 스며드는 돈줄 흐름을 막기 위한 프랑스의 대국적인 정책이다.

따라서 크레디 뮈니시팔에서 급전을 차용할 때도 현금대출 한도액은 1천 유로이며, 그 이상의 금액은 수표지불이나 은행구좌를 통해 입금된다는 점을 참고로 알아두자. 채무금 반환 시에도 마찬가지이다. 수표나 신용카드로 환불이 가능하며 현찰 지불 시 1천 유로를 넘길 수 없다.



프랑스의 전당포, 크레디 뮈니시팔은 18개 주요도시에 본점을 두고 있으며 주변 고장에 42개 지점을 신설했다.

거주지에서 가까운 크레디 뮈니시팔 위치는 공식사이트(www.pretsurgage.fr)를 통해 조회할 수 있다.

☞ 사이트 상단메뉴에서 Crédit Municipal 선택 후 Liste des caisses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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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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