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9일 새역사 이루자
뉴스로=소곤이 칼럼니스트
“형같은 사람은 정치하면 안돼요..”
오래전, 잘 알고지내던 사회 후배 하나가 한 말이다. 내가 정치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웬 뜬금포냐 싶었다. 그 후배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결국은 정치인이 됐다.
나보고 정치하지 말라는건 좋게 말해 ’형처럼 점잖은(?) 사람은 더러운 정치판에 어울리지 않는다, 들어와도 견딜 수 없다’는 뜻이었다.
기자 일을 한지 30년. 기자 노릇하다 정치인이 된 이들을 많이 봤다. 기자가 정치인 양성소도 아닌데 왜 그렇게 변신하는 이들이 많을까. 기자를 천직(天職)으로 받아들였던 난 그런 사람들을 경멸하곤 했다.
물론 처음부터 정치를 염두에 둔게 아니라면 도맷금으로 넘길 생각은 없다. 부당하게 기자직에서 해고돼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젊었을땐 기자가 할 일 따로 있고 정치인이 할 일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넘의 나라가 이렇게 망가진데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팔할이다. 정치인들에 정치를 맡겼더니 하는 꼬라지가 개판이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우리 생활이, 우리 사회가, 우리 나라가 잘못 돌아간다면 그냥 보고 있어야 하나? 물론 대의정치니까 시민이 투표로 심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앞서 후배가 “정치판은 더러우니 형은 정치 할 생각도 말라”고 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치꾼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능력있고 양심적인 사람들, 무서운 경쟁자가 될 사람들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구정물을 뿌린다고 말이다. ‘여기 들어올테면 들어와봐,.대신 온갖 꼴 당할거 각오하고’..‘이 동네는 말이지, 보통 멘탈 아니면 견딜수 없어..그래도 해볼텨?’..뭐 이런 식 아닌가.
과거 총리를 지낸 고건이나 정운찬 등 유력 대권후보로 거론되던 이들이 함부로 대선판에 들어오지 않은(못한) 것도 대체로 점잖은 성품에 사술(詐術)과 협잡(挾雜)이 판치는 정치판을 견디기 힘들었기때문이다. 정운찬이 mb정권에서 국무총리에 지명됐을 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있는 것 없는 것 탈탈 털어댔다. 결국 총리는 됐으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모멸감에 가족과 부둥켜 안고 눈물 흘렸다는 얘기도 들렸다.
반기문도 그렇다. 처음부터 그가 정치판의 마타도어와 비난의 융단폭격을 절대 견디지 못할거라고 봤다. 이 한몸 조국의 제단에 받치겠다는 비장한 출사표도 믿지 않았다. (절대 비웃는게 아니다. 뉴욕에서 기자하며 사무총장 10년 세월을 지켜봤고 때로는 사적인 자리에도 초대되기도 했던 터, 소탈하며 점잖은 성정을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반기문이 가진 약점이나 아킬레스건은 다른 후보들에 비하면 특별히 도드라질게 없다. 털어서 먼지 안날 사람 없고 약점 없는 사람도 없다. 그를 향한 비난은 대부분 사실관계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 기왕 들어왔으면 다부지게 대선판에 달려들어야 하는데 일단 x물 퍼붓고 보는 정치꾼들 술수를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대선 포기선언을 하면서 반사이익(反射利益)을 거두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충남지사 안희정, 국민의당 후보 안철수가 대표적이다. 반기문을 향하던 보수와 중도보수의 표가 분산되버린 것이다.
안희정이 민주당경선에서 미끄러지면서 안철수의 지지율이 한때 상승했다. 중도보수가 또다른 대안으로 안철수에게 옮겨간 것이다. 이처럼 지지율이란건 흐름이 있고 내외부 변수에 따라 살아있는 생물처럼 춤을 춘다.
반기문의 낙마로 새누리의 후예 자유한국당에서도 수혜자가 나타났다. 경남도지사 홍준표다. 반기문이 여권의 유력 후보로 거론될 때 감히 거론조차 힘들었지만 여권 유력주자가 사라지는 진공상태에서 일약 대선후보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홍준표의 저급한 막말과 무대포 행보, 꼼수 릴레이는 대한민국의 대선 후보로 나와 있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한다.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돼지흥분제 사건은 경악(驚愕) 그 자체였다. 대체 인간이 얼마나 얼굴이 두꺼우면 자서전에 버젓이 쓰고 “이제 그만 좀 용서하라”고 큰소리 치며 얼굴 쳐들고 유세를 다닐 수 있는지 기함할 정도다. 박근혜가 ‘유체이탈화법’의 초절정고수라면 홍준표는 가히 ‘유체이탈행보’의 진경산수(眞景山水)다.
홍준표를 볼때마다 반기문 생각이 떠오른다. 돼지흥분제 홍준표도 활보하며 대통령이 되겠다는데 반기문은 그에 비하면 티끌밖에 안되는 허물로 대선레이스를 포기하다니 얼마나 바보같은가. 속으로 조금만 버텨보는건데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실제로 반기문의 맷집이 어지간했다면 지금쯤 문재인과 1, 2위를 다투고 있었을 것이다. 초반 빠졌던 지지율도 ‘반문재인 정서’가 작용해 보수(실제로는 수구) 결집이 되면서 금세 원상회복 되었을 것이다.
지금 홍준표의 지지율을 보라. ‘20% 가깝다, 안철수 제쳤다’는 일부 여론조사가 발표되기도 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만큼 나도 홍준표 지지율을 5%까지는 이해할 용의가 있다. 현대 국가에 어디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최악의 국정대농단, 박근혜게이트에도 불구하고 탄핵 반대자들이 5%까지 남았듯이 말이다. 그런데 20프로 가깝다니, 명색이 전문기관의 여론조사인데 그정도가 나온다면 정말 다른 나라 사람들 보기 쪽팔린다. 아직도 진실을 바로 못보는 우매한 시민들이 저렇게 많은게 사실이라면 이 모두가 정치협잡꾼들의 농간때문이다. 참된 정치인들이 등떠밀려 나가고 참신한 인물들이 감히 들어올 엄두를 못내는 대한민국의 오염된 정치판 말이다.
지난 1월 오바마 대통령은 고별 연설에서 “여러분이 정치인들에게 실망했다면 가만히 있지 말라. 직접 정치인이 되어 지지자들과 함께 선거에 나가라”고 외쳤다. 그렇다 정치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공익을 팔아 사익을 추구하는 불량감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신들이 만든 정당 후보 지지율이 안오른다고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후보 품에 안긴 최악의 철새들을 보라. 바로 이런 자들이 우리의 정치판을 오염시킨 것이다. 근사한 포마드향을 풍기며 입바른 소리 하는 척 하다가, 이익이 충돌할땐 대의도 명분도 쓰레기통에 쳐넣는 작태에 많은 시민들은 손가락질하며 경멸했다. 그러나 이자들은 순간만 넘기면 우매한 시민들이 곧 잊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깨끗하고 양심적인 진짜배기 정치인들이 오지 못하도록 여의도 정치판을 하수구로 만들어 코 막고 진저리 치며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광장(廣場)의 문을 닫아선 안되는 이유다. 모든 시민이 직접 정치를 할 수 없지만 광장의 정치로 참된 정치인들을 양성하고 밀어줄 수 있다. 세비만 낭비하는 여의도 금뱃지는 절반이하로 줄이자. 대신 광장의 정치라는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가동하자. 무보수 명예직인 시민의 대표들이 ‘상원’을 맡고 의원들은 ‘하원’이 되어 국민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여 나라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해보자. 정치에 대한 환멸과 불신을 씻어내고 깨끗한 사람, 양심적인 사람, 능력있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모여 적폐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대한민국을 깨끗이 씻기우자. 그리고 마침내 위대한 출발점이 2017년 5월 9일이 되도록 하자.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소곤이의 세상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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