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가는 당나귀
뉴스로=이계선 작가
“노재현을 잡아 대통령집무실인 삼청동공관으로 끌고 와라“
하나회에 비상이 걸렸다. 노재현국방장관을 찾으러 한남동으로 달려갔다. 노재현은 없었다. 노재현이 살고 있는 국방장관 공관은 정승화총장이 사는 참모총장공관과 담 하나를 끼고 있었다. 12월 13일에 있는 군장성 이동을 하루 앞두고 노재현은 뒤숭숭했다. 심신이 피곤했다. 일찍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별안간 총소리가 났다. 참모총장 공관 쪽에서였다. 콩을 볶아대듯 총성이 요란했다.
(전두환이 난을 일으켰구나!)
겁이 난 노재현은 얼른 바지를 주어입고 담장을 기어올라 도망쳐 나왔다. 길 건너 단국대학교 안으로 숨어들어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니 하나회가 허탕 칠수 밖에. 도대체 참모총장공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콩을 볶듯 총소리가 진동했을까? 노재현은 궁금했다.
허삼수대령 우경운대령 성환옥대령은 보안사 헌병대를 이끌고 한남동으로 향했다. 육본헌병대장 이종민중령도 동행시켰다. 그들은 먼저 총장공관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보안사정보처장이 퇴근길에 총장님께 전해드릴 급한 보고가 있습니다. 타고 가는 차량과 번호판을 알려드립니다”
참모총장공관은 철옹성이었다. 50명의 해병대가 외곽을 수비하고 있었다. 안에는 헌병 10명이 지키고 있었다. 허삼수는 총격전을 대비하여 50명을 삼각지에 매복시켰다. 그들을 성환옥이 지휘토록 했다.
“공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달려와 우리를 도우시오”
허삼수가 탄 헌병차량과 미니버스가 총장공관에 도착했다. 해병대가 검문을 했다. 그들은 허삼수를 권정달로 착각하고 있었다. 권정달정보처장이 온다고 전화로 속였기 때문이다.
“참모총장님은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보고하러 오는 자리에 왜 그리 헌병이 많으십니까?”
검문장교는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대령이 둘인데다가 무장 헌병이 10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때 뒤에 있던 우경운 대령과 이종민중령이 나섰다. 잘 아는 얼굴들이다. 우경운은 전임 육본 헌병대장이었고 이종민은 현재 헌병대장이다. 직속상관인 것이다. 이종민이 말했다.
“야간 순시차 나왔소. 비상계엄중이라서 순찰병력을 많이 데리고 나왔지요”
“아, 그렇군요. 들어 가시지요“
안으로 들어가니 10명의 육본 헌병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이들은 이종민중령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손을 내리기도 전에 10명의 보안헌병들이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한사람씩 담당하여 가슴에 총구를 들이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장해제를 시켜버린 것이다. 허삼수와 우경운은 재빨리 응접실로 들어갔다.
그 시간 정승화부부는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보, 처남 신대진대령이 내일 별을 달지오. 오늘밤 병상에 있는 장모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자구”
넥타이를 매주고 있는 아내 신윤경에게 정승화가 말했다. 이때 아래층 응접실이 시끄러웠다. 넥타이를 매다말고 내려가 보니 우경운이 술에 취한 듯 대들었다.
“총장님 서운합니다. 이번에는 꼭 별을 다는 줄 알았는데 총장님께서 절 미끄러트렸더군요”
“이 사람아, 서운해말아. TO가 없어서 어쩔수 없었으니까. 내년 봄에도 기회가 있어. 그런데 옆에 있는 너희들은 뭐야?”
허삼수
그때 허삼수가 달려들 듯 다가왔다.
"총장각하! 녹음실이 있는 서빙고로 좀 가주셔야겠습니다. 김재규사건에 증언하실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최규하대통령에게 재가를 받고 왔습니다“
“이놈들아, 여기도 녹음기가 있으니 녹음하려면 여기서 해.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구? 그러면 먼저 나에게 연락 안할 리가 없을텐데, 내가 전화로 직접 대통령에게 확인해보지. 여 봐 부관, 전화기 가져와”
이재천소령이 전화기를 들고 달려왔다. 그때 우경운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왼팔을 맞은 이재천은 쓰러지면서 권총을 빼어 발사 했다.
“탕탕”
총소리에 놀란 침입자들은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우경운은 자기편이 쏜 총알을 허벅지에 맞고 쓰러졌다.
이때 맞은 총상으로 우경운은 평생 휘체어에 실려 다니는 휠체어 인생이 된다. 쿠데타친구들은 대장이 되고 장관이 되어 펄펄 날라 다니는데 말이다.
“사격중지!”
정승화가 소리쳤다.
그러자 와장창! 대형유리창이 부서져 나가는 소리가 나면서 40대의 상사가 자동소총을 쏘아대면서 뛰어들었다. 그는 개머리판으로 정승화의 어깨를 내려 친후 가슴에 총구를 찔러댔다.
“꼼짝 마라. 반항하면 쏜다”
그러자 정승화 양옆으로 허삼수와 건장한 헌병이 달려들어 찍어 눌렀다. 수사관들이 범인을 체포하는 식이었다. 젊은 대령들의 완력 앞에 늙은 대장은 독수리 앞에 병아리처럼 맥을 못 췄다. 그들은 정승화를 차에 싣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렇게 정승화참모총장은 납치당했다. 불과 10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해병대사령관 김정호중장이 초도 순시차 총장공관에 들렸다가 총소리를 들었다. 문을 박차고 공관 밖으로 뛰어나가다가 육본헌병감 황관영준장 한동성대위와 마주쳤다. 그들도 총소리를 듣고 공관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참모총장님에게 하극상 반란을 일으킨 것 같소. 빨리 해병대를 투입하여 공관을 점령하고 있는 그놈들을 제압하고 공관을 탈환해야 겠소”
김정호중장은 해병대사령관답게 용감하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10명의 해병대로 50명의 전두환측 헌병대를 몰아내고 공관을 탈환했다. 그러나 정승화총장은 보이지 않았다. 정승화는 보안사령관의 차에 실려 서빙고분실로 끌려가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끌려가는 당나귀처럼.
“아! 10분만 일찍 왔어도 비극을 막는 건데... 한 대위는 빨리 아군 적군 가리지 말고 부상자들을 데려가 살리시오. 놈들이 공관을 탈환하고 사로잡힌 동료들을 구하려고 군대를 몰고 올 것이오. 난 해병대를 더 증원하여 공관을 지키도록 하겠소”
이재천소령은 피를 흘리면서 육본에 전화보고를 하고 있었다. 한동성대위는 총을 맞고 사경을 헤매는 성환옥대령과 이재천소령 김인선대위와 사병들을 병원으로 옮겼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