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전두환
뉴스로=이계선 작가
정승화 부인 신윤경은 정신이 몽롱했다. 꿈이 아닌 걸 확인하자 전화를 찾았다. 침입자들이 전화선을 끊어놓아 없었다. 다행히 비밀직통전화가 남아있었다. 직통전화로 노재현국방장관을 불렀다. 노재현은 도망 다니느라 전화를 받을수 없었다. 참모차장 윤성민중장과 겨우 연락이 닿았다.
“차장님 큰일 났습니다. 총장님이 괴한에게 납치당했습니다. 대령같기도 하고 헌병같기도 한데 불과 10분사이라서 잘 모르겠어요. 우리 총장님을 구해주세요”
“사모님 걱정마세요. 얼른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참모차장 윤성민중장은 "진도개 하나“를 발령하고 초소마다 검색령을 내렸다. 뒤따라 정승화총장이 합수부측에 납치당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윤성민은 육본장군들을 불러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런데 서울지역 계엄분소장인 장태완장군과 정병주특전사령과 김진기헌병감이 안 보였다. 이들은 서울시내 병력을 움직이는 실세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간, 세 장군들은 연희동 비밀요정으로 유인당하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잔을 돌리는데 김진기헌병감앞으로 마담이 다가왔다. 마담은 김진기의 귀에 대고 부관의 전화를 받으라며 속삭였다. 밖으로 나가 부관의 전화를 받던 김진기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 뭐라고! 총장 공관에서 총격? 그래, 총장님은 어떻게 됐나?"
총장 공관에서 총격사고가 일어났다는 김진기의 말에 장태완과 정병주는 술이 확 깨어버렸다. 벌떡 일어섰다. 때는 계엄 상황이고 자신들이 바로 계엄사의 가장 중요한 대비병력 지휘관 아닌가?
세장군의 머리에는 똑같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전에 없던 보안사의 술자리초대가 이상했다. 전두환이 안 온것도 이상했다. 거기에 총장 공관 총격사고라고….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이건 분명이 전두환이 파놓은 함정이야. 범증이 유방을 잡으려고 홍문의 연회를 배설해놓고 유방을 불러 유인했었지. 전두환이 정승화총장을 잡으려고 서울시내 병권을 쥐고 있는 우리들을 불러 수족을 묶어놓고 정승화총장을 납치해간거야”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세 사람은 황급히 부대로 향했다. 짐작한 대로였다.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그들은 참모들에게 출동준비를 지시했다. 그리고 육본으로 달려갔다. 그때가 12월 12일 밤8시 30분 이었다. 육본 총장실은 별들로 가득했다.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유병현대장, 합동참모의장 김종환대장 육군참모차장 윤성민중장, 합동참모본부장 문홍구중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하소곤소장,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 안종훈소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천주원소장, 국방부소속 이범진소장이 와있었다. 모두 육군본부 수뇌부들 이었다. 도망 다니던 노재현국방장관도 와 있었다.
뒤이어 서울시내 사령부의 장군들이 나타났다.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소장, 수경사 참모장 김기택준장, 수경사 야포단장 구명회대령, 특전사령관 정병주소장, 특전사 부사령관 이순길준장. 수도기계화사단장 손길남소장.
경기도지역에 있는 3군사령관 이건영중장, 26기계화사단장 배정도소장과는 전화로 연락했다. 육본작전참모장 하소곤소장이 건의했다.
“전두환과 하나회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정승화참모총장을 납치하고 육본을 장악하여 유신시대로 복귀하려는 쿠데타입니다. 참모총장이 유고를 당한 상태입니다. 법에 따라 윤성민참모차장이 총장대리가 되어 계엄사령관직을 맡으셔야 합니다”
모두가 찬동하자 윤성민이 일어났다.
“나는 참모총장대리로 전군에 군령을 하달하겠습니다. ‘내 명령을 따르라. 내 육성으로 내리는 명령 없이는 절대로 병력을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할 것입니다. 서울지역 계엄분소장은 장태완장군입니다. 아무래도 서울시내 부대사령관인 수경사 장태완장군 특전사정병주장군 헌병사 김진기장군께서 앞장서 주셔야겠습니다. 장장군께서 반란군을 진압할 복안을 말씀해 주시지요”
장태완이 일어나 시원시원하게 입을 열었다.
“반란군은 아주 치사하고 간교하게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술잔치로 우리를 불러들인 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정승화총장을 납치해갔어요. 앞으로도 그들은 거짓과 기만술로 나올 것입니다. 육본측이 민첩하고 과감하게 천군만마(千軍萬馬)를 동원하여 일시에 궤멸하는 초토화 작전으로 나간다면 2시간 안에 저들 반란군을 일망타진할수 있습니다.
장태완장군
첫째 윤성민참모차장은 3군사령관 이건영중장에게 연락하여 경기도 일원에 있는 충정부대병력을 서울로 출병토록 협조를 받아야합니다. 한시간 안에 출동준비를 완료토록 하고 한시간 안에 서울로 진입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울러 2군사령관 진종채중장, 1군사령관 김학원중장에게도 연락하여 반란군들을 독안에 든 쥐로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수도기계화사단은 탱크를 몰고 경복궁 보안사를 포위하고 항복을 종용해야 합니다. 아울러 삼청동 공관으로 달려가 저들의 인질로 잡혀있는 최규하대통령을 구출해야합니다.
셋째 무력충돌을 피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전두환에게 통첩합니다. ‘정승화총장을 원상으로 회복시키고 돌려 보내드려라. 그러면 없던 일로 하겠다. 그러나 너희들이 최후통첩을 듣지 않는다면 한 시간 안으로 수만 대군이 서울로 진입하여 너희들을 토벌할 것이다‘
과감하고 민첩하게 나가야 합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오늘밤을 넘기면 우리가 저들의 흉계에 빠져 결국 지고 맙니다“
“짝짝짝짝, 시저의 작전처럼 시원시원하오. 과연 천하의 장포스 답구려”
모두가 장태완의 진압작전안을 흡족해 했다.
윤성민총장대리는 참모장 하소곤소장을 불러 세부지시를 하달했다. 그리고 이건 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성민의 전화를 받은 3군사령관 이건영은 대찬성이었다.
“윤장군 걱정마. 내가 전화 끝내는 즉시 3군사령부내에 있는 경기도 일원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서울로 진격토록 할테니까. 이참에 군의 독버섯인 하나회를 뿌리 뽑아 버리자구”
그러잖아도 김재규문제로 이건영은 전두환과 앙앙불락이었다.
(이참에 전두환만 제거하면 김재규선배를 살려 낼수도 있다. 적극 나서야지)
이건영은 손수 전화통을 붙잡고 경기도 일원 사단장들에게 출동명령을 내렸다.
“전두환보안사령관이 하나회를 무장 동원하여 정승화참모총장을 납치해갔다. 최규하대통령은 삼청동공관에서 전두환 황영시 유학성일당에게 인질로 잡혀 연금상태다. 이는 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하극상이요 반란이요 쿠데타다. 영예로운 대한민국의 60만 대군을 하나회의 사병으로 전락시키려는 수작이다. 역도들을 토벌하여 조국을 구출하자. 경기도 일원의 부대들은 즉시 출동준비를 완료하고 명령이 내리면 출동 하도록 하라”
지침을 하달한지 30분이 안 돼 속속 보고가 올라왔다.
“3군사령관님, 저희사단은 완전무장을 끝내고 출동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기계화사단은 탱크점검을 끝내고 포탄을 넉넉히 적재해 놓고 있습니다”
“저희 포부대는 전차에 야포를 적재해놓고 출동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6사단장 배정도소장도 수도기계화사단장 손길남소장도 출동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회를 토벌하자고 하자 사방에서 벌떼처럼 일어나 호응했다. 장교들은 하나같이 하나회를 미워했다. 하나회를 박정희의 십상시(十常侍)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한말 한나라 명제때 열명의 내시(십상시)가 국정을 농락하고 있었다. 저들은 아첨으로 황제의 귀와 눈을 가린 후 멋대로 권력을 주물렀다. 하나회가 그랬다. 하나회는 박정희의 근위병이요 친위대였다. 박정희에게 아첨하여 환심을 산 후 군의 진급과 보직을 맘대로 주물렀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하나회계열이 아니면 진급이 힘들었다. 그래서 하나회를 십상시처럼 미워했다.
십상시를 몰아내는 개혁을 시작하면서 삼국지가 시작된다. 황후의 친정오빠 대장군 하진이 십상시들을 죽여 버리겠다고 칼을 뽑았다. 큰 칼로 돼지를 잡던 하진은 좀 미련했다. 십상시들의 꾀에 속아 되래 자기목이 잘리는 수모를 당했다. 하나회가 그랬다. 강창성보안사령관이 하나회를 척결하려다가 되래 옷을 벗고 군문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하진의 부장 원소가 칼을 빼들고 일어나 십상시를 몰살시킨다.
하나회가 십상시의 흉내를 내고 있다. 하나회를 척결하려는 육군참모총장정승화를 꾀로 속여서 납치해갔다. 대장군 하진처럼. 그러자 정승화의 양팔 장태완과 정병주가 앞장서서 하나회를 척결하려고 칼을 빼어 든 것이다. 육본이 모두 들고 일어났다.
하나회를 토벌하자!
박정희의 십상시같은 하나회. 박정희가 죽었으니 쥐구멍으로 도망가야 마땅한 하나회. 그런데 되래 전두환이 박정희가 되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하나회를 토벌하자! 정치군인 집단인 하나회를 없애버리자! 원소가 보낸 십상시토벌격문을 읽고 전국의 제후들은 일지군마를 이끌고 장안으로 달려왔다. 윤성민 총장대리의 명령을 받은 수도권의 장군들은 근왕병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너도나도 하나회토벌작전에 합류했다.
출동완료를 보고 받은 육본은 사기가 충천했다. 단국대로 피했다가 한미연합사로 도망 다니던 노재현국방장관도 힘이 생겨 육본으로 달려왔다. 용기백배한 그는 전화로 전두환을 불렀다. 전화를 받은 전두환은 좀 얼떨떨했다. 찾을 때는 그렇게 꼭꼭 숨어라 하더니!
“장관님 어디계십니까? 우리들은 삼청동 공관에서 장관님 오시기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습니다. 빨리 오셔서 대통령에게 참모총장 연행청원을 해 주십시오”
“어디 있느냐고? 난 지금 육본에서 전군 지휘관회의를 주재하고 있소. 가긴 가지만 내가 아니라 군대가 갈 거요. 당신들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전 육군이 토벌하러 갈 테니 기다리시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번 기회를 주겠소. 지금당장 정승화총장을 원상회복시켜 돌려보내면 그간 일을 없었던 일로 해 주겠소”
전두환은 기가 질렸다. 우선 일보 후퇴하고 보자.
“장관님 잘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전세는 반전돼 버렸다. 하나회측은 사색이 됐다. 아! 이제는 모든게 끝나버렸구나. 노태우는 후일 당시 절박한 상황을 이렇게 회고 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수도기계화사단 탱크를 몰고 와서 경복궁 30경비단을 포격하겠다고 협박했을 때 우린 다 끝난 걸로 생각했다. 나는 자결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육본진압군측은 자신만만했다. 반란군은 이제 독안에 든 쥐다. 장태완은 이건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건영은 전화기에 대고 파이팅을 외쳤다.
“장태완 파이팅! 아주 잘 했어. 박대통령뒤에 숨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하나회놈들을 이참에 발본색원 깨끗이 쓸어버리자구. 서울 외곽지역 병력동원은 내가 책임 질테니 장장군은 서울쪽 일이나 잘 하소”
“형님 감사합니다. 형님이 있어서 대한국군은 만세반석 만만세입니다”
육본측은 본부를 수경사로 옮겼다. 반란군이 공격해오면 수경사가 방어하기에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때가 밤 10시 30분경 이었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