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놓은 진압군..장태완만 고군분투

 

뉴스로=이계선 작가

 

 

한편 경복궁 반란군측은 공포에 휩싸여 버렸다. 육본측이 이렇게 재빨리 반격해올줄은 몰랐다. 자기들이 최규하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내지 못해 허둥거리는 사이에 번개처럼 반격작전계획을 완료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항복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항복이냐 버티기냐? 뾰족한 수가 없어서 침울해 있는데 젊은 중령이 소리치면서 일어섰다.

 

“묘수가 있습니다. 전두환장군이 윤성민총장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신사협정을 맺는겁니다. 피차 서울시내로 병력을 출동시켜 싸우는 일은 하지말자. 내란으로 많이 죽는다. 김일성이 처내려온다. 그리고 화해를 모색해보자고 하는 겁니다. 저들의 요구를 다 들어 줄 것처럼 하면서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노태우사단 박준병사단을 서울로 진입시켜 시내요소를 장악합니다. 그리고 경비단 공수여단 병력을 동원하여 전광석화로 육본을 점령합니다. 서울시내에 최대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는 장태완수경사령관과 정병주특전사령관은 우리 하나회측에 속한 부하들이 체포토록 합니다.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작전이 쉽습니다. 믿었던 부하들에게 체포당해야 충격이 큽니다. 좀 잔인하지만 기죽이기 효과는 그만입니다. 30경비단장은 헌병대를 보내어 장태완수경사령관을 체포하는 겁니다. 3공수여단장은 정병주특전사령관을 체포하구요. 군대를 출동하지 않기로 한 신사협정에 속은 육본이 서울시내 진입을 안 해줬기에 우리가 이기는 건 손바닥 뒤집기처럼 아주 간단 할 것입니다“

 

장내는 감탄했다.

 

“과연 자네는 하나회의 장자방이야. 나는 육본측과 전화로 지연작전을 벌리겠소. 노태우장군은 그 사이에 빨리 서울 외곽 하나회사단들을 서울로 진입하도록 하시오.”

 

 

다음해 3월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중장 자진 진급 신고를 하는 전두환. 왼쪽 안경 쓴 사람은 대장 진급 신고를 마친 백석주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jpg

1980년 3월 최규한대통령권한대행에게 중장 자진진급 신고를 하는 전두환

 

 

전두환은 심호흡을 가다듬은 후에 육본으로 전화를 걸었다. 참모총장대리 윤성민이 전화를 받자 전두환은 울먹였다.

 

“형님 살려주이소. 제가 10.26사건을 수사하다가 의문점을 발견했습니다. 정승화총장님을 잠깐 모셔다가 말씀 듣고 다시 모셔다 드리려고 했습니다. 우리 애들이 젊은 혈기에 그만 실수하여 정승화총장님에게 큰 무례를 범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형님께서 군사를 일으켜 저희들을 반란군으로 처단하시려 든다면 큰 비극이 옵니다. 서울시내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저희들 쪽의 젊은 장군들이 가만히 앉아서 당하느니 일어나 서서 싸우다 죽자고 흥분하고 있어요. 사상초유의 내란으로 이기는 편이나 지는 편이나 쌍방간에 엄청난 사상자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면 어부지리를 노린 김일성이 쳐내려와 3시간 안에 대한민국은 망하고 맙니다. 형님! 제가 형님과 육본측이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노재현장관 요구대로 정승화총장을 원상회복시켜 돌려 보내드리겠습니다. 형님이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으니 무력대결만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오늘밤 양쪽 병력이 서울시내로 진입하는 일만은 막아야 합니다. 형님과 제가 신사협정을 맺읍시다. 사나이 대 사나이, 장군 대 장군으로 윤성민과 전두환의 이름을 걸고 신사협정을 맺는 겁니다. 오늘밤 절대로 서울시내로 군사진입을 하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겁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정승화총장을 원상회복시켜준다는데 굳이 피바람을 일으킬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러면 정승화총장님을 30분 안으로 이쪽으로 돌려 보내드리게. 그러면 자네와 신사협정을 맺겠네”

 

“형님,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승화총장님은 기왕 오셨으니 편안하게 모시다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형식적인 조사 끝내고 아침 일찍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한 신사협정이 있는데 뭘 걱정 하십니까?“

 

전두환과 통화를 끝낸 윤성민은 장군들에게 내용을 설명했다.

 

“싸우지 않고 정승화참모총장을 원상회복토록 하겠다니 잘된 일이오”

 

국방장관노재현은 반기는 표정이었다.

 

“내란을 피하게 됐으니 다행이군요“

 

다른 장군들도 좋아했다. 1군사령관 이건영도 전화를 받고 좋아했다.

 

“내란이 일어나면 3시간 안으로 김일성이 쳐 내려 올 텐데, 잘 됐소”

 

“윤성민과 전두환의 신사협정을 믿읍시다. 쌍방은 절대로 오늘밤 서울시내로 외곽부대를 출동시키지 않는다는 약정을 지킵시다”

 

이때 장태완이 분연히 일어섰다.

 

“전두환의 속임수에 우리가 말려들고 있는 겁니다. 우리들은 불과 2시간 전에 모여 상황을 의논하고 있지만 저들은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을 실행하고 있을 뿐 입니다. 오늘밤 신사협정도 미리 짜놓은 작전의 일환일 뿐입니다. 쌍방이 군대를 서울로 진입하면 중과부적으로 저들이 질게 뻔합니다. 우리가 신사협정을 믿고 외곽부대의 서울출동을 취소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 저들은 밤 고양이처럼 야금야금 서울로 달려오고 있을 겁니다. 노태우의 9사단, 박준병의 30사단 그리고 이순길의 1군기계화사단이 이미 부대를 출발하여 박석고개를 넘고 있을 겁니다. 우리도 움직여야 합니다. 3군사령부의 사단병력을 지금 빨리 서울로 진입시켜야 합니다.”

 

정병주특전사령관도 거들었다.

 

“장장군의 말이 맞습니다. 정승화총장을 납치하려고 우리를 연희동 요정으로 유인할때도 그렇고 저들은 언제나 기만술을 쓰고 있어요. 우리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저들은 외곽부대를 서울로 진입시켜 서울을 점령할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늦어 속수무책으로 우리 모두 사로잡히는 포로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나는 특전사령관으로 윤흥주장군이 이끄는 특전사 9공수여단에게 출동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손길남 수도기계화사단으로 하여금 탱크를 끌고 보안사를 포위하도록 해야합니다”

 

육본 작전참모장 하소곤소장 헌병사령관 김진기준장도 적극진압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나머지 장군들은 천하태평이었다. 반란군 전두환측은 일사분란으로 기민했다. 오래전부터 계획한데다 반란이라서 절차가 필요 없었다. 육본측은 명령계통을 밟아 절차를 따지고 수속을 거쳐야 했다. 게다가 처음에는 진압의지가 강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맥이 풀렸다. 슬슬 빠져나가 전두환측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참모총장대리인 윤성민중장이나 국방장관노재현은 슬슬 핑계만 대기에 급급했다.

 

화가 난 장태완은 하나회의 본거지 30경비단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경사 예하부대인 30경비단은 장세동대령이 단장이다. 장세동은 하나회핵심이다. 상관의 전화를 받은 장세동은 겁이 났다. 장태완소장보다 계급이 높은 유학성중장에게 전화를 건냈다. 장태완의 카랑카랑한 금속성목소리가 유학성의 귀청을 때렸다.

 

“유선배님. 왜 남의부대에 와 계십니까? 수경사 소속인 30경비단은 수경사령관인 내 부대입니다. 정승화참모총장님을 지금 돌려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신문사에 연락하여 아무일이 없던걸로 해놓겠습니다”

 

“장장군, 자네도 알만할 텐데 왜 그러나? 내 옆에 자네와 친한 황영시중장이 있으니 잘 대화해 보게”

 

말문이 막혀버린 유학성은 황영시에게 전화기를 건네줬다.

 

“장장군, 나 황영시중장이야. 평화적으로 화해하려는데 왜 그래?”

 

“평화적 해결? 거짓말로 상대를 속여 놓고 뒷통수 치는 당신들 수법이 평화적 해결이오? 황영시중장, 별을 세 개나 단 중장이면 속이지 말고 장군답게 떳떳하십시오. 당신이 민주주의 신봉자 강원용목사교회의 장로로서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소? 술을 대접한다고 우리를 연희동으로 유인하고서 총장을 납치해갔소. 외곽병력을 서울로 진출시키지 말자고 전두환 윤성민 신사협정을 해놓고 몰래 병력을 끌어드리고 있는 당신들의 음모와 술수를 내 모를 줄 아오. 야, 황영시, 거짓말을 일삼는 네가 크리스챤장군이냐. 넌 더러운 위선자야. 야! 이 새끼들아 난 안 속는다. 전화 끊고 기다려라. 내 이제 수도기계화 사단의 탱크를 몰고 가서 너희들의 대갈통을 모두 까부셔 버리고 말테다“

 

화가 난 장태완은 전화로 이건영을 찾았다.

 

“형님, 왜 그리 약해지셨습니까? 다된 밥에 재를 뿌리십니까?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우리 모두 전두환에게 죽습니다”

 

“여보게 장장군, 우리가 서로 대결하다가 2시간안에 김일성이 쳐들어오면 어쩌나?”

“평양에 있는 김일성이 홍길동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무슨 수로 두시간 안에 서울까지 올수 있습니까? 형님이 일어나 총성을 한번 울리면 천하의 장군들이 따라옵니다. 두시간 안에 김일성이 오는게 아니라 두시간 안에 전두환의 반란이 끝나버리고 맙니다”

 

그래도 육본 주력부대는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밤이 지나고 내일 아침이오면 해가 떠 오른다. 그리고 정승화총장이 돌아온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걱정인가?)

 

그런데 그 시간 반란군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노태우소장이 사단장으로 있는 9사단 36연대가 거침없이 서울로 달려왔다. 벽제검문소를 만났지만 무사통과 했다. 정보와 보안을 장악한 하나회 장교들이 초소마다나타나 길을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9사단은 청와대 중앙청 세종로를 장악해버렸다. 이상규준장의 1기갑여단은 탱크부대를 이끌고 세종로에 나타났다. 박희모소장이 이끄는 30사단은 망우리를 넘어와 고려대 일대를 장악했다.

 

반란군측이 물밀 듯이 밀려와 서울을 점령하는 동안 진압군측은 손을 놓고 있었다. 피차 병력출동을 하지 않는다는 윤성민 전두환의 신사협정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전사령관 정병주장군의 출동명령을 받은 윤흥기준장의 9공수여단만이 경인고속도로를 달려오고 있었다. 4개의 공수여단 중에서도 9공수여단은 최강을 자랑하는 정예부대다. 그런데 인천을 떠나 영등포에 이르자 윤성민 참모총장대리로부터 회군명령이 떨어졌다.

 

“9공수여단은 인천으로 회군하라. 양측은 서울 출병을 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윤흥기는 한강을 눈앞에 두고 돌아간다. 이를 “눈물의 회군”이라한다.

 

거짓으로 상대를 속이고 무혈입성에 성공한 전두환은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이젠 마지막 작전이 남아있을 뿐이오. 박희도준장은 1공수여단을 이끌고 육본과 국방부를 점령하시오. 거기 남아있는 장군들을 모두 체포하되 노재현을 잡아와서 대통령재가를 청원하도록 하시오. 최세창준장은 3공수여단을 끌고 가서 정병주특전사령관을 체포하시오. 조홍대령은 헌병대를 끌고 가서 장태완수경사령관을 체포하시오. 그러면 상황 끝이오. 육본측은 우리의 계략에 말려들어가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있소이다. 장태완 정병주 하소곤 김진기 이외는 겁쟁이 화전파들이오. 일거에 들이친다면 손바닥 뒤집듯 쉽게 끝날거요”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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