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주도권 위해 남북대화 시급
뉴스로=이재봉 칼럼니스트
문재인 정부 출범에 기대가 크다. 평화와 통일이 한 발짝이라도 앞서 정착되고 하루라도 앞당겨질 것 같다. 꽉 막힌 남북관계가 뚫릴 것 같고 잔뜩 꼬인 한중관계가 풀릴 것 같다.
세 가지 걸림돌을 넘어야 한다. 미국의 간섭과 북한의 어깃장 그리고 남한 극우보수 세력의 반발이다. 미국은 남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하자 바로 다음날 "적절한 환경 아래에서" 대화하라고 딴죽을 건다.
북한은 남한에 새 정부가 들어서 대화를 강조하는 데도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고약하게 나온다. 남한의 극우보수 세력은 미국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나라가 금세 결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와 한미동맹 강화만 외친다.
우리는 미국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함한 최첨단 전력을 남한에 들여오는 것을 '훈련'이라고 강변한다.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거나 침공할 수 있다는 위협은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이에 맞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시험하면 '도발'이라고 비난하며 제재와 압박만 강조한다. 참 편향적이다.
속된 말로 남한은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지만 북한의 주적은 미국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보에 대한 불안 때문일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남한은 1980년대 말 냉전이 끝나자 러시아와 중국을 친구로 만들었다. 북한보다 경제력이 40~50배 더 크고 국방비를 10~20배 더 쓴다. 미국 첨단무기를 가장 많이 사들여온다. 미국의 핵우산도 받고 있다.
미국은 수만 명의 주한미군을 유지하며 북한을 겨냥해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수시로 벌인다. 여차하면 북한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하며 수시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정교하게 다듬는다.
이에 반해 북한은 냉전이 끝난 지 거의 30년이 지나도록 미국이나 일본과 수교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나 중국의 핵우산을 받지 않는다. 러시아 군이나 중국 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지도 않는다. 이런 터에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고 미국의 위협을 견딜 수 있을까.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할수록 대화를 지속하는 게 바람직하다. 협상은 전쟁 중에도 필요하다. 제재와 압박은 반발과 도발을 불러오기 쉽지만 대화하며 긴장을 완화하고 협상하며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및 독일에까지 보낼 특사를 임명했다. 북한 특사는? 언급조차 없다. 가장 급하고 필요한 특사 아닐까.
미국이 내미는 "적절한 환경"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게 아니라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여건을 조성하면 된다. 남북 사이에 대화가 단절될수록 한반도 문제는 주변 강대국들에게 넘겨지고 우리는 주도권(主導權)을 잃기 마련이다.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면 미국에 종속되고 중국에 휘둘리며 일본에 우롱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군비 증강에 매달릴 필요도 없어진다.
극우보수뿐만 아니라 온건진보 쪽에서도 북핵에 대처하려면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한미 군사동맹 강화로 북핵을 무력화하고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을 불러올 수 있을까?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할수록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더 매달리고 한중관계는 더 멀어지기 마련이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수단의 하나인데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게 남한 대외정책의 가장 크고 유일한 목표처럼 돼버린 느낌마저 든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막으려면 미국의 위협을 없애거나 줄여주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하고, 그 때문에 북한을 위협하며 이른바 '도발'을 부추기곤 한다. 북한이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자고 줄기차게 요구해도 미국은 이를 거부하며 한사코 정전협정을 고수하는 배경이다.
냉전 종식 이후 주한미군의 역할이 바뀌고 미국의 목표도 변했다. 남한은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정착하며 통일을 이루는 게 목표지만,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주한미군을 유지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며 패권을 지키는 게 목표다. 남한과 미국의 국익이 크게 달라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국익의 극대화를 위해 미국에 대한 의존과 종속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우선 사드를 미국에 되돌려주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박근혜 탄핵 이후 도둑처럼 들여다 놓고 남한에 비용까지 대라는 것은 지나친 횡포요 극도의 억지다.
사드를 굳이 배치하려면 중국의 보복에 따른 남한의 손실을 미국이 보전하라는 식으로 협상하기 바란다. 한중교역 규모는 한미교역의 두 배를 넘고, 남한이 중국에서 얻는 무역흑자는 전체 무역흑자의 80~90% 정도다.
나아가 전시작전권(戰時作戰權)을 찾아오고 주한미군 철수에 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냉전 종식 이후 주한미군의 역할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것이다. 남한이 철수해달라고 애원해도 미국이 버틸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유지하려면 오히려 모든 비용을 부담하라고 남한이 큰소리 칠 수 있는 배경이다. 남한이 사드 배치 비용을 부담하고 주한미군 분담금을 증액하라고 터무니없이 억지 부려도 제대로 대처하기 바란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아울러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미국은 남한에서 대규모 군사훈련과 북한에 대한 위협을 중단하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춰야 한다.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도 맺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이 미국과의 군사동맹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주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이끌어야 한다. 북한 특사를 통해 남북 대화의 물꼬부터 트기 바란다.
글 이재봉 원광대 교수/한중정치외교연구소장
* 본 칼럼은 프레시안과 인터넷 월간지 <통일경제> 2017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칼럼 '이재봉의 평화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