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복권소설 절찬연재
뉴스로=이계선 작가
설복에 실패한 최세창은 돌아가 전투준비를 지시했다. 공격에 앞서 전화로 적전(敵前)을 분열시켰다. 같은 특전사라서 이편저편 서로 잘 아는 친구와 동료 사이였다. 최세창의 부하들은 설득전화를 걸었다.
“이미 싸움은 끊났네. 국방부와 육본도 무너졌어. 이쪽으로 오면 모든걸 불문에 부쳐준다네”
장교들도 사병들도 정병주사령관 곁을 떠나갔다. 참모장도 참모들도 안 보였다. 정병주곁에는 오직 한사람이 남아있었다. 비서실장 김오랑소령이었다.
김해농고를 나온 김오랑은 육사25기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운동에도 남달랐다. 정의감이 있는데다 활달하여 친구도 많았다. 그는 하나회의 스카웃 제의를 뿌리쳤다. 문무를 겸한 장차 참모총장감이라고 동기들도 아꼈다.
대위로 월남전에 참전한 김오랑은 유능한 중대장이었다. 밤에는 베트콩과 싸우고 낮에는 잠자면서 쉬는 게 월남전의 낮과 밤이었다. 그러나 김오랑은 낮에 부하들을 데리고 지형정찰을 나갔다.
“숲이 우거지고 골이 깊은 이곳으로 적들이 야간공격을 해오겠구나. 오늘 밤 어둡기 전에 이곳에 군사를 매복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야간기습을 하던 베트콩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김오랑은 월남인들의 시장을 다니면서 월남인들의 풍습과 기질을 살폈다. 베트콩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심리전을 펼치니 싸우지 않고 이기곤 했다.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된 고 김오랑 중령
김오랑은 포연이 자욱한 정글에서도 펜팔을 보내는 낭만을 즐겼다. 그때 펜팔로 사귄 아가씨가 부인 백영옥이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오랑은 특전사 장교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들까지 낳아 행복했다. 같은 아파트 이웃에 박종규중령이 살았다. 박종규도 대단했다. 육사 24기를 나온 박종규는 미국에서 “특수전교육”을 받은 전통 특전사맨 이었다. 그는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특전사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대대장이었다. 박종규중령은 특전사대대장, 김오랑소령은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특전사 엘리트들이었다. 두 집은 형제처럼 지냈다. 며칠 전에도 김오랑부부는 박종규부부의 초청을 받아 저녁식사를 즐기고 왔다. 그런데 박종규는 하나회였다. 그날 밤 박종규는 정병주사령관 체포의 선봉을 맡고 있었다. 박종규는 베레모들을 이끌고 사령관실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때 안에서 정병주와 김오랑이 대화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소령, 전두환이 이기는걸 보고 모두가 내 곁을 떠나버렸네. 자네는 왜 안가나?”
“사령관님이 이렇게 꿋꿋하게 서 계신데 제가 사령관님을 버리고 어디로 갑니까?”
그때 김오랑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박종규부대가 쳐들어가니 빨리 몸을 피해 나오라는 친구의 목소리였다.
“고맙네. 난 정병주사령관님곁에서 죽을테니 자네는 전두환곁에 붙어서 천년만년 부귀영화를 누리게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면서 박종규가 뛰어들었다.
“아니, 너는 박종규가 아니냐?”
정병주는 맨 앞에서 총을 들고 달려드는 부하 박종규중령을 보고 절망했다.
그때 김오랑이 공포를 발사하면서 소리쳤다.
“탕탕”
“사령관님을 해하지 마시오”
그러자 박종규는 연발로 나가는 M16 소총을 내리갈겼다.
“탕탕탕탕“
김오랑이 쓰러지자 정병주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김오랑은 여섯발을 맞고 혼절했다. 정병주는 왼팔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정병주사령관을 서빙고로 모셔라”
박종규는 피가 철철 흐르는 정병주를 짚차에 싣고 서빙고로 달렸다. 힐끗 보니 김오랑이 참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이다. 병원으로 옮기면 살릴수 있을까? 그러나 모른 체 하고 지나갔다. 아무도 김오랑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사령관정병주소장은 끌려갔다. 그렇게 김오랑소령은 죽었다. 그렇게 특전사는 끝나버렸다.
특전사의 비극을 전해들은 윤성민은 탄식했다.
“이를 어쩌면 좋소. 무력동원을 안하기로 신사협정을 맺어 우리는 인천에서 달려오는 9공수여단도 회군시켰어요. 그런데 저들은 김포에 있는 1공수여단을 끌어드려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해버렸으니! 그리고 특전사령부까지 점령해버렸으니. 저들이 노리는 마지막 목표는 여기 수경사령부요. 남은 육본측은 수경사령부뿐이니...”
육본지휘부는 수경사에 와 있었다. 참모총장대리를 보좌하느라고 따라왔던 장군들도 낙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새까만 후배 전두환에게 당한 분노가 전의를 불 태웠다. 그들은 문홍구중장 천주원소장 황의철소장 하소곤소장 안종훈소장 신정하소장이었다.
“전두환의 반란은 5.16보다도 치밀하고 계획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 장태완이 들어오면서 윤성민에게 따지듯 대들었다.
“이건 자업자득(自業自得)이 아니라 자승자박(自繩自縛)입니다. 전두환이 우리를 묶은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묶어버린 거예요. 신사협정은 속임수라고 내가 그렇게 설명했지만 윤장군이 전두환말을 믿더니 이렇게 됐어요. 그래도 난 공격하겠소. 탱크4대를 앞세우고 100명 수경사병력을 이끌고 경복궁으로 쳐 들어가겠소”
말을 마친 장태완이 출병을 하러 나가는데 비서실장 김수택중령이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다.
“사령관님, 늦었습니다. 제가 출동준비를 점검하러 연병장으로 나가보니 우리병사들에게 ‘장태완을 사살하라’는 무전신호가 계속오고 있었습니다. 대세는 기울어졌습니다. 대다수 장군들은 대세를 따라 전두환쪽에 붙어버렸습니다. 수경사 헌병대장 조홍대령의 명령을 받은 신윤수중령이 헌병대를 이끌고 사령관님을 체포하러 오고 있습니다. 위험하니 우선 사령부안으로 몸을 피하십시오”
장태완은 탄식했다.
“우리가 졌다. 깨끗이 졌다. 그러나 억울하다. 내 제안대로 따랐으면 역도들을 일망타진하는 건데 호랑이가 여우에게 속아서 대세를 그르친게 분하고 원통하구나. 전두환도 죽일 놈이지만 호언장담하다가 중간에 돌아선 배신자들이 더 나쁜놈들이다. 아! 이 통분함을 어찌할거나!”
이때 노재현장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장군, 나 노재현장관이야. 국방장관으로 명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무장을 해제하고 일체의 군사활동을 중지하라”
장태완은 폭팔했다.
“야, 이새끼 노재현. 네가 국방장관이냐. 국방장관이면 하극상을 일으킨 전두환 반역도당을 응징해야 하는 거 아니냐? 노재현, 넌 국방장관이 아니라 반역도들에게 투항한 배신자야. 넌 명령을 내릴 자격이 없어!”
한편 신윤희중령은 헌병대를 이끌고 상관인 장태완소장을 체포하러 왔다. 대세가 기울어져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다. 구둣발로 사령관실문 박차고 총뿌리를 겨누고 들어갔다. 장태완은 보이지 않았다. 사령관실을 육본사령실로 내주고 옆의 손님접대실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윤성민중장을 비롯 육본장군들이 가득했다. 총을 겨누고 들이닥치자 하손곤소장이 본능적으로 권총에 손이 갔다. 이를 본 침입자들이 먼저 발사했다.
“탕”
하소곤소장이 총을 맞고 쓰러졌다. 이때 문홍구중장이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총질이야”
중장의 위엄 있는 목소리에 중령의 기가 꺾였다.
“미안합니다. 우리는 그저 장사령관을 모셔오라는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그때 옆방문이 열리면서 장태완이 나타났다.
“나 장태완이 여기 있다. 스스로 무장해제를 했으니 곧바로 서빙고분실로가자”
12.12가 전두환측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진압군측은 총 한방 제대로 못 쏘아보고 두 손을 들어버린 셈이다. 그때가 1979년 12월 13일 새벽 4시30분.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