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부인까지...
뉴스로=이계선 작가
12.12가 끝나고 50일이 가까웠다. 세상은 전두환이 판치고 있었다. 전두환은 육본측의 장군과 고급 지휘관 22명의 옷을 벗긴다. 이건영 하소곤 장태완 정병주 문홍구 김진기는 강제 예편 당한다. 육본측의 총사령관 윤성민은 옷을 벗기는커녕 대장으로 참모총장으로 국방장관으로 승승장구한다. 정승화는 10년형을 받는다.
선봉장 장태완은 서빙고호텔에 있었다. 사람들은 악명 높은 보안사 서빙고분실을 서빙고 호텔이라고 불렀다. 패전지장이 된 장태완은 가족면회도 금지된 이곳에서 고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40일이 지난 어느날 서빙고 호텔로 전두환이 찾아왔다. 승자와 패자는 마주 앉았다.
“장선배, 건강은 어떠십니까?”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건강이야 아무려면 어떻소?”
“우리는 우리 요구대로만 들어준다면 정승화총장을 예편시킨 후 국방부장관으로 모실계획이었습니다. 장선배는 중장으로 승진시켜 6군단장으로 보내 드리려고 했었지요”
(대통령도 국방부장관도 아닌 일개 육군소장이 제멋대로 대장들을 임명하겠다니? 저들은 오래전부터 쿠데타를 계획하여 온 게 틀림없구나)
“난 서울지구 계엄분소장으로서 사명을 감당했을 뿐이오. 비록 패전지장이 됐지만 역사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소이다”
“장선배, 이젠 집으로 돌아가서 편히 쉬십시오”
전두환이 돌아가자 보안사대원이 전역지원서를 들고 왔다. 장태완은 싸인을 해줬다. 그러자 굳게 닫혀있던 보안사 철문이 열렸다. 장태완은 초라하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이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내고 있었다. 포로수용소를 다룬 전쟁영화를 만들 듯 말이다. 그 날 밤 9시 TV뉴스시간에 묘한 장면이 나왔다. 흔히 땡전뉴스라고 불리는 9시 프라임타임뉴스는 이렇게 시작됐다.
“땡! 아홉시 (땡전)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두환 국보위위원장께서는....”
9시를 알리는 “땡”소리가 나면 먼저 전두환이 등장한다. 그래서 “땡.전.뉴스”다. 이날 전두환소식에 이어 등장한 뉴스는 장태완의 출옥장면 이었다. 그건 감옥에서 해방된 출옥의 기쁨을 알리려는게 아니었다. 전쟁에서 진 패전지장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경상북도 칠곡 시골에서 술 취한 노인이 이 광경을 보다가 부르짖었다.
“아! 나라에 간신배가 득세하면 충신들이 핍박과 고난을 당하게 되는 걸 어쩌란 말이냐!”
노인은 옆에 있는 목침을 들어 TV를 향하여 집어던졌다. 와장창! 소리가 나면서 TV가 박살나 버렸다. 노인은 장태완장군의 아버지였다.
50일전에도 그랬다. 12.12에 아들 장태완이 역도들에게 붙잡혀 가는 TV장면을 본 것이다. 그때 노인은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내 아들이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승리한 역적들이 충신을 살려둘 리가 있겠느냐?”
그때부터 노인은 곡기를 끊고 막걸리만 마시며 살았다. 장태완이 감옥에서 나와 보니 아버지는 여전이 술만 마시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헌병들이 감시하는 연금 상태였다. 4개월 동안 곡기를 끊고 술만 마시던 아버지는 1980년 4월에 끝내 숨을 거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장태완은 진달래가 붉게 핀 왜관 낙동강변 동산에 아버지의 시신을 묻고 통곡했다.
“아버지, 쿠데타가 없는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저는 극악무도한 저 역도들의 죄악을 밝혀내고 명예를 회복 한 후에 아버지 곁으로 가겠습니다”
아버지를 여윈 장태완부부는 아들딸만 바라보고 살았다. 이화여대에 다니는 딸 장현리는 요조숙녀형의 재원이었다. 고등학생인 아들 장성호는 우울한 가정 분위기를 잘 이겨 내면서 묵묵히 공부했다. 성호는 1982년 서울대 자연계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두남매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애교를 부리면서 집안 분위기를 리드해나갔다. 애비의 아픔을 이해해주면서 공부하는 자녀들이 고맙기만 했다.
그해 겨울 성호는 머리를 식히러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열흘이 가고 한달이 다가와도 겨울여행을 떠난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여행을 떠난 성호는 경북 왜관 낙동강 강변에 있는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갔다. 무덤을 껴안고 밤새워 통곡했다. 날이 밝았는데도 일어 날줄을 몰랐다. 자살한 것이다. 장태완이 찾아가 보니 성호는 입을 열고 눈을 뜬 채로 죽어있었다. 얼마나 원통했으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을까?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더니 성호의 시신에서 이런 말이 들려오는 듯 듯했다.
‘아버지, 제가 죽어서라도 이 눈으로 아버지를 망하게 한 악인들의 심판을 볼 거예요. 죽어 귀신이 돼서라도 입을 열어 저들의 죄악을 하늘에 고발할겁니다’
장태완은 죽은 아들의 눈을 감겨주려고 손으로 쓰다듬었다. 입도 그랬다. 꿈쩍도 안했다. 눈 코 입 귀를 비롯하여 구멍마다 얼음으로 가득 메꿔져있었기 때문이다. 근 한 달 동안 냉동실의 동태처럼 성호의 시신은 꽁꽁 얼어버린 것이다.
아들의 시신을 싣고 서울로 올라오는 차안에서 장태완은 시신을 껴안았다. 눈과 눈이, 얼굴과 얼굴이, 입과 입이, 몸과 몸이 맞닿도록 꼭 껴안았다. 구약성경의 복수의 법칙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이다. 상대가 내 눈을 멀게 했으면 상대의 눈을 멀게하여 복수한다. 내 이를 부러트렸으면 나도 상대의 이를 부러트려 앙갚음을 한다.
신약성경의 사랑의 법칙도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이다. 내 눈을 빼어 상대의 눈을 고쳐준다. 내 간을 잘라 간암화자에게 주어 이식수술로 살려낸다. 구약시절 엘리야의 치유기도가 그랬다. 자기와 죽은 아이의 눈과 눈, 입과 입, 배와 배가 서로 맞닿게 껴안고 기도하여 죽은 아이를 살려냈다. 그게 안수기도의 원리다. 하나 되는 사랑의 원리다.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 앉고 통곡하던 장태완은 혓바닥으로 시신의 구멍을 막고 있는 얼음덩이를 핥기 시작했다. 어미소가 갓 태어난 송아지새끼를 혓바닥으로 핥아 내듯 말이다. 아버지의 뜨거운 혓바닥이 아들의 눈을 덮고 있는 얼음덩이를 녹여냈다. 녹아내린 얼음물이 아들의 눈물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성호야, 이제는 눈을 감고 편히 자거라”
장태완은 뜨거운 손바닥으로 아들의 눈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시신이 눈을 감았다. 입과 귀 코를 막고 있는 얼음덩이를 모두 녹여냈다. 아버지의 정성에 녹아 내린듯 아들의 시신은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자는 모습으로 평안해 보였다.
“잘 가거라 내 아들 성호야. 너는 내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장태완은 이렇게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눈물을 닦았다. 그 후부터 장태완은 더 이상 슬퍼하지 만은 안했다. 전두환의 제의를 받아들여 한국증권전산회사의 회장자리에 앉는다. 새정치국민회의의 전국구국회의원이 된다. 김대중정부시절에는 재향군인회회장직을 연임한다.
장태완은 정병주와 달리 성격이 호방하고 막힘이 없다. 그래서 정병주가 2살 위인데도 장태완이 선배처럼 보인다. 정병주는 전두환이라면 뱀처럼 멀리하지만 장태완은 경우에 따라서는 적과도 손을 잡는다. 정병주는 야당정치도 거절하는 외골수 군인인데 장태완은 적과도 협상한다. 그래도 장태완의 중심은 정의와 양심이다. 장태완은 정병주와 손잡고 평생 12.12 바로 잡기운동을 벌려왔다. 동서양의 쿠데타관련문헌을 수집하여 쿠데타방지연구에 정성을 바쳤다. 정성이 헛되지 않았다. 김영삼정부는 전두환과 하나회에 철퇴를 내려 감옥으로 보냈다.
2008년 8월 장태완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죽음의 나라로 떠난다. 폐암수술의 후유증이 찾아온 것이다. 향년 79세. 시아버지와 아들에 이어 남편마저 보낸 부인 이병호여사는 혼자가 됐다. 딸은 시집가 미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목덜미가 희고 부드러운 이병호여사는 처녀시절부터 하얀 목련화였다. 남편이 죽자 그녀는 하얀 드레스만 입었다. 그건 상복이기도 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더 외로워 보였다. 그녀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2010년 7월 그녀는 그녀가 사는 대치동 10층 아파트의 창문을 열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하늘나라의 하얀 천사가 곱게 핀 백목련가지를 꺾어 땅으로 집어던지듯. 그녀는 그렇게 자살했다. 미국에서 사는 딸 현리부부가 달려와 보니 어머니가 남긴 유서가 있었다.
“사랑하는 딸 현리야. 네가 있어서 행복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 외로워서 견딜수가 없구나. 엄마는 아버지 곁으로 간다. 그곳에 가면 네 동생 성호와 할아버지도 만나게 되겠지? 현리야, 너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으니 부디 오래오래 살아다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