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토한권력 삼킨것은..

 

뉴스로=이계선작가

 

 

10.26은 끝나버렸다. 12.12로 끝나 버렸다. 12.12는 10.26의 종지부였다. 12.12가 10.26의 진행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을 맞고 죽었다. 김재규는 전두환에게 잡혀버렸다. 김재규의 우군으로 생각했던 정승화는 전두환에게 납치당한 끝에 참모총장자리에서 쫓겨났다. 죽 쒀서 개 준다더니 김재규가 그 꼴이 됐다. 독재자 박정희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박정희가 죽으면서 토해놓은 권력을 옆에 있던 전두환이가 날름 통째로 삼켜버린 것이다. 10.26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그런데 사람들은 끝나버린 10.26을 자꾸만 들춰낸다. 명인전(名人戰)의 결승전 마지막 대국에서 돌을 던져버리고 진 바둑판을 다시 복기(復碁)하듯 말이다. 잘 나가다가 순간 패착으로 반점차이로 진 게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10.26의 아슬아슬했던 명장면들을 다시 클릭 해본다. 자꾸만 클릭하면 10.26이 다시 살아 날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10.26은 아슬아슬했다. 아까웠다. 아쉬웠다. 진자 이긴자 모두 그랬다.

 

차지철이 권총만 갖고 있었어도 박정희는 죽지 않았다. 김재규는 권총으로 차지철과 박정희를 차례로 저격했다. 왼팔에 총알을 맞은 차지철은 화장실로 도망쳤다. 가슴에 총알을 맞은 박정희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꼿꼿하게 앉아있었다.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데 불발이었다. 8연발 권총인데 불발이었다. 놀란 김재규는 권총을 집어던지고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갔다. 부하에게서 새 권총을 구하러 나간 것이다. 그사이 화장실에 숨어있던 차지철이 기어 나왔다.

 

그때 박선호에게서 권총을 얻어 들어오는 김재규와 맞닥뜨렸다. 차지철이 권총만 갖고 있었어도 먼저 쐈을 것이다. 그러나 차지철은 맨손이었다. 차지철은 의자를 집어던졌다. 김재규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더 빨랐다. 차지철은 심장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박정희도 총알세례를 받고 숨이 끊어졌다.

 

대통령 경호실장은 24시간 권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제껏 권총을 안차고 다닌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맨손이었다. 신기한일이다. 왜 그랬을까?

 

궁정동 연희장으로 가던 차지철은 자기사무실에 들렸다. 양복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서랍속에 넣었다. 비서가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각하를 모실때는 항상 권총을 소지하시던 실장님께서 오늘은 왜 주머니에 있는 권총을 빼놓고 가십니까?”

 

“오늘은 그러구 싶구먼”

 

아깝다. 그때 차지철이 평소하던 버릇대로 권총만 차고 있었어도 박정희는 안 죽는 건데.

 

아깝기는 김재규도 마찬가지다. 박정희를 죽이는데 성공한 김재규는 참모총장 정승화를 태우고 정보부로 가야했다. 그런데 육본으로 차를 몰았다. 싸움닭도 자기집 골목에서는 지는 법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자기집 남산 중앙정보부로 갈 것이지 왜 덜렁덜렁 남의 집 용산육군본부로 갔을까? 호랑이 굴로 기어들어가서 어쩌자는 것인가?

 

김재규는 남산으로 가야했다. 남산정보부로 가서 이렇게 해야했다. 인질로 잡은 참모총장 정승화로 하여금 정부각료와 서울지역 사령관들을 불러들이게 한다. 정보부병력으로 정보부건물을 철통같이 포위하여 침입자가 얼씬을 못 하게한다. 총검으로 무장한 정보부간부들이 사나운 눈초리로 각료들을 감시한다. 분위기를 장악한 김재규가 살기 띤 목소리로 10.26을 설명한다.

 

“여러분들은 이제 내가하는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오늘 저녁 궁정동 안가에서 술을 마시던 각하께서 부마사태를 논의하자고 했습니다. 난 이렇게 건의 했어요.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군중들이 격앙하여 데모수준을 넘어 항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각하! 온건책을 써야 합니다. 국회의원 제명당한 김영삼총재를 복권시키고 긴급조치를 철회해야합니다. 정보에 의하면 부마항쟁에 이어 서울에서 민주항쟁이 일어납니다.’라고 했어요.

 

그러자 차지철이 반대하고 나왔습니다. ‘각하,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처럼 밀어부쳐야 합니다. 크메르루즈는 시위군중들에게 탱크로 밀고 들어가면서 발포하여 3백만을 죽여버리자 잠잠해졌습니다. 한국은 2백만명만 죽여 버리면 야당도 학생들도 꼼짝 못하고 잠잠 할겁니다. 각하, 저에게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장 탱크로 야당새끼들과 데모대원들을 깔아뭉개어 깨끗이 쓸어버리겠습니다.’

 

그러자 각하도 맞장구쳤습니다.

 

‘좋아, 서울에서 유신반대 데모가 일어나면 이번에는 내가 그렇게 할꺼야. 4.19때는 최인규내무장관이 발포명령을 내려서 사형 당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발포명령을 내린다구. 대통령인 내가 발포명령을 내리면 설마 나를 사형 시키킬라구. 내일 아침 내가 그렇게 명령하지’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들 두 사람을 그냥 놔두면 나라가 망하겠구나. 우리나라에 6.25버금가는 비극이 오겠구나. 두 사람을 제거하고 대신 2백만명을 살려내자’.

 

이렇게 결심한 난 밖으로 나가 내사무실에서 권총을 갖고 들어와 거사를 했습니다. 내가 각하를 시해했어요. 각하와 차지철의 말대로 2백만명을 살려내려고 두명을 죽였습니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수 없습니다. 내가 칼을 뽑았으니 여러분들은 내말을 따라 줘야합니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혁명위원회를 구성하겠습니다. 내가 위원장을 맡고 계엄사령관 정승화총장은 부위원장을 맡을겁니다. 이건 회의가 아니라 혁명입니다. 따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혁명입니다“

 

김재규의 협박성 요구에 누가 반대하랴. 반대하면 차지철 꼴이 될 텐데. 독안에 든 쥐가 된 각료들은 울며겨자먹기로 김재규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10.26은 김재규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김재규는 육본으로 갔다. 육본을 지키고 있는 100명 넘는 무장헌병들은 자기부하가 아니었다. 무장한 자기편은 오직 세명뿐이었다. 김재규 박흥주 박선호만 권총을 차고 있을 뿐이었다.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헌병들에게 둘러싸여 독안에 든 세마리의 생쥐꼴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재규의 주장이 먹혀들어갈 리가 없다. 제대로 설명도 못하고 4시간동안 어설프게 우왕좌왕하다가 잡혀버리고 말았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걸 눈치 챈 최규하총리와 정승화참모총장이 헌병대에게 체포명령을 내린 것이다. 사람들이 탄식했다.

 

“아! 남산으로만 갔어도 10.26은 김재규의 승리로 끝나는 건데“

 

12.12도 마찬가지다.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박정희의 유지를 받들려는 유신잔당이었다. 정승화는 민주시대를 인정하는 참모총장이었다. 정승화는 민주화의 걸림돌인 전두환을 벽지로 귀양 보내려고 했다. 코너로 몰린 쥐가 고양이 꼬리를 물었다. 전두환은 정승화를 납치했다. 대통령권한대행 최규하는 정승화연행 재가를 거부했다. 윤성민 참모총장대리를 앞세운 전군이 서울로 진군하여 전두환과 하나회를 토벌하려고 벌떼처럼 일어났다. 다급해진 전두환은 윤성민과 신사협정을 맺는다. 양측 군대를 서울로 출병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몰래 서울로 출병한다. 전두환의 속임수에 넘어간 육본측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체포당하고 만다. 그때 전두환의 속임수를 간파한 장태완의 말만 들었어도 되는건데. 그러면 전두환과 하나회는 일망타진당하고 김재규는 살아나는 건데. 식자들은 탄식했다.

 

“이제는 끝나버렸습니다. 천하의 권력이 모두 전두환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10.26도 무효가 돼버렸어요. 김재규가 살아날 가망도 완전히 막혀버렸구요”

 

김대중과 김영삼을 비롯한 정치권은 그래도 낙관적이었다.

 

“12.12는 단순히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군내부의 갈등일 뿐입니다. 전두환이 정승화로부터 군의 주도권은 빼앗았지만 10.26으로 폭발 해버린 민주화의 열기는 누구도 못 누를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정치인들은 여론과 민심이 최대의 무기이지만 정치군인들은 모든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2.12가 끝나자 전두환세상이 돼버렸다.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정보부장을 겸직했다. 그 자리는 원래 김재규것이었다. 장태완이 총칼을 휘둘러 자신들을 거의 몰살시킬뻔 했던 수경사령관자리에 노태우를 앉혔다. 특전사의 아버지 정봉주가 천하를 벌벌떨게 했던 특전사사령관자리는 정호용에게 줬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은 대구출신의 육사동기 하나회다. 육군참모총장 계엄사령관에는 이희성을 앉혔다. 이희성은 대장이요 군 선배이지만 전두환의 하수인이었다. 전두환이 전군을 완전히 장악해 버린 것이다. 전두환의 무단정치에 최규하대통령은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김재규 구명은 서서히 물을 건너가고 있었다. 우군역활을 할수 있는 정승화대장이 몰락했다. 절대지지자 이건영중장 정병주소장도 정승화와 함께 강제예편을 당했다. 재판밖에 남은 게 없었다. 군부 지배아래에서는 재판은 사형시키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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