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의 안전불감증이 주범
뉴스로=노창현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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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경남 양산시 아파트 외벽 보수작업을 하던 김모씨가 아파트 주민이 작업 밧줄을 자르는 바람에 떨어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소공포증을 잊기 위해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옥상으로 올라가 홧김에 밧줄을 끊어 버린 것이다. 가해자 서모씨의 어이없는 범행에 한 40대 가장이 5명의 자녀와 아내와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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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ABC-TV 등 미 언론은 고 이헌준(19 폴 리) 군 가족이 LA 위티어 통합교육구 버스 회사인 ‘퓨필 트랜스포테이션 코퍼레이티브와 2,350만 달러(약 2600억원)의 배상에 합의했다고 일제히 전했다. 자폐증(自閉症)을 앓고 있던 이 군은 지난 2015년 9월 스쿨버스에서 운전기사의 부주의로 방치돼 사망했다.
며칠 상관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착잡한 소회(所懷)를 남기게 합니다. 내용과 성격은 다르지만 사건이후 정부나 사회의 대처방식은 사뭇 다르기때문입니다.
미국의 이군은 당시 캘리포니아 시에라 에듀케이션센터 특수반 학생이었습니다. 화씨 95도(섭씨 32도)까지 올라간 날 아무도 없는 스쿨버스에서 뒤늦게 발견돼 병원에 후송됐으나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당시 운전기사 아르만도 라미레스(37)는 직장동료인 유부녀와 불륜행각에 정신이 팔려 이 군이 버스에 방치했다는 어이없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라미레스는 6개월후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고 캘리포니아 주 교도소에서 복역(服役)하고 있습니다.
주목되는 것은 이군 사건을 계기로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폴 리 스쿨버스 아동 안전경보 의무법(SB1072)’을 제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날 이후 모든 스쿨 버스 운전기사는 운행 종료 후 반드시 버스 안을 살피고 버스 맨 뒷좌석에 있는 알람을 의무적으로 누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국서 일어난 밧줄절단 사건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런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는지 분노를 금치 못했습니다. 더구나 피해자 김씨가 생후 27개월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5남매를 두고 아내와 칠순노모까지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이후 네이버 카페에서 김씨 유족을 돕자는 모금운동이 벌어졌고 많은 네티즌들이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수많은 매체들이 다루고 유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습니다. 서씨의 미친 짓을 비난하고 피해자를 애도하며 졸지에 가장을 잃은 유족을 동정(同情)했습니다. 그러나 그것까지였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함께 정부의 미흡한 제도와 용역업체의 안전불감증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작업은 네 사람이 하고 있었습니다. 밧줄에 위태롭게 매달린 세 사람이 음악을 들은 것도 까마득한 높이의 공포를 잊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새벽부터 술을 먹고 잠이 든 서씨가 음악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했고 다른 세사람은 음악을 껐지만 다른 쪽에 있던 김씨는 미처 그것을 알지 못해 계속 음악을 틀었습니다. 화가 난 서씨는 옥상에 올라가 공업용 커터칼로 밧줄을 자르다 음악소리가 다른쪽에서 들리자 그쪽으로 가서 또다른 밧줄을 잘라버린 것입니다.
경찰 조사결과 처음에 손댔던 밧줄도 절반쯤 잘린 상태였다니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해 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고층 아파트에서 밧줄 하나에 목숨을 건 채 위험천만한 작업을 하는데 어떻게 옥상이 개방된 상태였고, 지키는 사람 하나 없느냐는 것입니다.
서씨는 조울증(躁鬱症) 진단을 받은 적이 있고 분노조절장애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작업을 할 때 옥상 폐쇄와 적어도 한 사람이 비상상황에 대비해 지키는 것을 의무화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때문입니다.
제도적 규정이 없다해도 업체가 개방된 옥상에 경비원 한사람을 배치하는 것은 상식에 속합니다. 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안전불감증을 얘기해야 합니까.
미국의 스쿨버스는 어린이 보호를 위한 규정이 충분히 있음에도 이군 사건을 계기로 제도적 보완을 했습니다. 운전사가 버스가 빈것을 확인하고 알람 벨을 누르는 것을 의무화함으로써 이중의 안전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선 어린 아동을 혼자 둘 수 없도록 법제화함으로써 아동의 안전사고나 범죄를 제도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선 아이들이 혼자서, 혹은 또래끼리 놀거나 돌아다니는 것을 흔하게 봅니다. 아동에 대한 범죄나 사고가 빈발(頻發)하는 이유입니다.
각종 공사장의 엄격한 안전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방된 옥상에 누군가 올라가 커터칼로 밧줄을 자르는 잔혹한 일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나마 이 사고도 처음엔 작업자의 밧줄 조작 실수로 추락한 것으로 알았지만 잘린 흔적이 있고 남겨진 족적을 근거로 경찰이 서씨의 범행을 밝혀 낼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를 추모하고 유족에 대한 온정이 답지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듯 잊혀지고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안전규정을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피해자를 기리고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김씨의 부인은 아빠의 죽음을 모르는 27개월 된 막내딸이 “아빠가 언제 오느냐?”고 물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합니다.
김씨의 둘째딸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 하늘로 보낸 편지
아빠 하늘에서도 우리 가족하고 나 잘 지켜봐 줄 거지?
나랑 언니가 아빠 역할 도맡아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만큼은 못하겠지만, 엄마도 우리가 잘 책임질게.
아빠 여기서는 너무 고생하면서 살았으니까
올라가서는 편하게 아프지 말고 있어!
아빠 우리 독수리 오남매들 땜에 고생 많이 했지.
고마운 아빠 얼굴, 목소리 꼭 기억할게.
그리고 내가 팔 못 주물러주고 아빠 보내서 정말 미안해.
다음에 보면 내가 팔 백만 번 주물러 드릴게요.
아빠. 사랑해요. 진짜 많이 사랑해요.
- 둘째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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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아이들이라 생각하고 5명의 자녀가 성장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따뜻한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